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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는 아들이 있습니다

김민규 |2007.07.06 10:56
조회 39 |추천 0

안녕하세요

 

저는

 

세상에서 가장 멋지신 아버지의

세상에서 가장 못난 아들입니다

 

전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때 이혼하셨습니다

이유는 밝힐 수 없지만 부부싸움이나 죽음같은 가슴아픈 이유는 아니에요

광주 운암동에있는 운암주공 3단지에 살았었구요

그리고 내가 8살이 되던 1998년의 새해부터 새어머니와 함께 살게됬죠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아빠가 밉지도 않았구요

나에게는 두명에 어머니가 있다는 사실... 난 행운아라고 생각했죠...자랑스러웠습니다

그래도 항상 친어머니가 보고싶은건 배아파 나를 낳아주신분이라 그런지 어쩔 수 없더라구요

친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본건 아마도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단 한끼의 식사를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배웅했습니다

초등학생인 나에겐 당시에 최고의 선물이였던 21만원짜리 기아저전거를 남기고 가셨어요

그 다음날 전 전날에 친어머니를 보내고 흘린 눈물보다 두배는 많은양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머니가 제가 그토록 갖고 싶어하던 21만원짜리 기아자전거를 사주셨는데

1층계단에 분명히 자물쇠로 묶어두었던게 사라져버렸더라구요...도둑맞았죠

눈물이 주룩주룩 흐르더라구요

어린나이였는데도 어머니가 사준 물건이여서 그랬나 마음이 어찌나 상했던지...

어떻게 그 귀중한게 단 하루만에 도둑맞아 버렸을까요...운이 너무없죠...?

계단에 앉아서 주체가 안되는 눈물을 닦고있을 때 아버지가 오셔서 달래주셨어요

그제서야 종이컵으로 두컵은 됬을법한 눈물을 그쳤죠

내가 13살이 될때까지는 주변의 가정처럼 평범했습니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어린내가 그 당시에 알았다면 무척이나 힘들고 외로운 삶이였을꺼에요 

내가 18살 지금의 2007년이 되기까지 아버지가 내게 숨겨오셨던 사실들을...

1년여간 살던 운암동에서 갑자기 이사를 가게 됬습니다...인천으로요

지하에 있는 원룸보다는 3평쯤 큰 집이였어요

저는 우리집이 사람들이 흔히 부러워하는 부자인줄 알았어요 어려서 그랬나...

아침 점심 저녁을 한번도 거른적이 없었고...찬밥을 먹어본적도 없었습니다

반찬도 6가지 이상은 올라왔구요

단 하루도 3끼 식사뒤에 영양제를 먹지않았던 적이 없었고

밥을 먹은뒤에는 새어머니께서 꼭 과일을 가져다 주셨어요 한번도 빠지지 않구요

300가지가 넘는 게임이 들어있었던 팩게임기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도 그리고 2007년까지도 전혀 몰랐어요

제게 따뜻한밥을 차려주시고 뒤에서 라면을 끓여드시던 아버지를요

몸이 아프셔서 병원을 가셔야 할 돈으로 제 키를 크게할 영양제를 사다 놓으셨던 아버지를요

제게 500원짜리 하나 쥐어주실 여력조차 없으실만큼 힘이 드셔서

밤마다 저를 재우시고 저 몰래 기원에 나가셔서 바둑내기 하신돈으로 제게 용돈을 주셨습니다

언제쯤이였나...

아버지가 늘 주시던 500원을 들고 집앞 놀이터에 앉아 놀고 있었는데...

교복을 입은 형들이와서 500원을 빼앗아 갔습니다

울면서 집에 들어갔죠

아버지는 곧장 집밖으로 달려나가셔서 그 형들을 잡아 혼내주셨어요

그 때 전 아버지가 세상에서 가장 멋진분으로 보였어요

아빠가 최고

저희 가족은 다른가족에 비해 이사를 많이 갔습니다 그 이유는 짐작은 가지만 자세히는 몰라요

이번에는 지하에 있는 집보다 더작은...

다른 분들께서는 도저히 믿지 않으시겠지만 물탱크를 개조해서 만든 아주 작은 방이였습니다

TV도 없었구요

어린 나는 그 방이 아늑하고 좋아보였어요

지금 나이였다면 아버지의 경제력과 위기 그리고 고통을 단번에 알아봤겠지만...

아버지에게는 곁에있는 저를 바라보면서 얼마나 가슴아프고 힘이드셨을까...

아마도 제가 어려서 다행이셨을꺼에요...억지스레 지으시던 웃음까지도...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나는 그때가 너무나 선명합니다

아침마다 아버지가 꿀과 우유를넣어 직접 만들어주시던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크림빵과

저녁마다 만들어주시던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복숭아쥬스

그리고 뇌수방염에 걸려 갑작스레 5번이넘게 음식을 토하던 저를 업고 병원으로 달려가시던

아버지의 넓고 편안한 어깨와 등을 기억합니다

4일간을 병원에 입원했어요

그 이후로 지금까지는 한번도 병원에 입원하지 않고 별탈없이 건강합니다

2002년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해 까지도 아버지의 버거운 마음과 땅에 떨어질듯한 어깨를...

저는 보지못하고 지냈습니다

13살 초등학교를 마무리할 나이

나는 처음으로 가출이라는걸 했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찾아 광주 전체를 헤메시면서 저를 몇번이고 집에 데려다 놓으셨고

저는 저를 찾아 헤메시는 아버지를 피해 집을 수십번씩 나갔습니다

왜 그랬었는지는 저도 저를 잘 모르겠어요

그렇게 많은 잘못을 저질렀는데도 절 단 한대도 때리지않고 키우셨어요

모든일은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고...인간은 하나의 인격체로 하시면서...

제게 항상 어머니가 끓여주셨던 소고기무국처럼...따뜻한 말씀만으로 감싸주셨죠

술도 마시지 않으시는 다정한 아버지와 따뜻한 집이 있는데도...그저 집에 있기가 싫더라구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문제아 방향으로만 어울리다보니

담배라는것도 접하게됬고...5년이지난 지금도 피우고 있습니다...그후로 끈지 못했어요

전 법적으로는 특수절도라고 하는 죄명으로 재판이라는걸 받았어요 중학교 1학년때였죠

분류 심사원이라는 곳을 갔습니다

소년원에 보낼지 보호자의 품으로 돌려보낼지

범죄우려를 토대로 일정 기간동안의 생활을 지켜보며 시간을두고 결정하는 곳이죠

처음 가보는 곳이라 무섭기도하고 자유를 박탈당한다고 생각하니...참 많이 울었어요

그런데 10일도 채 못되서 아버지가 위탁이라는걸 하셔서 저를 빼내주셨죠

전 그때 아버지가 저를 빼주시지않고 그냥 거기에서 반성했어야 하나봐요...

그럼 지금의 불효자까지 오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나오고나서 1달도 되지못해서

철이 얼마나 없었던지...멍청하게 다시 가출을 했습니다 중학교도 나가지 않았구요

문제아 방향으로 전보다 더 깊게 어울렸고 10개월이라는 시간동안 집을 나가있었어요

믿기 어려우시겠죠...? 14살이라는 나이였으니까요

제가 나가있는동안 아버지는 거의 밥을 드시않으셨다고 새어머니께 들었어요

제 끼니를 걱정하시면서 매번 밤잠을 설치셨고

어머니와 동생의 외식도 거부하셨습니다...아들이 끼니를 거를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먹냐구요

극심한 방황탓에 아버지도 지치셨던지 절 찾지 않으시다가

한번은 제몰래 저와 함께 다니던 형에게 연락해서...

새벽에 피시방에서 잠들어있던 제 모습을 보시고 그 형에게 8만원을 주고 가셨습니다

지금은 내 품안에서 이미 통제가 어려운 아이니까...끼니라도 챙겨주라면서요

16살...정상 학생이라면 중학교를 마무리할 나이죠...

지나가는 학생들을 잡아서 돈을뺏고 어두운 곳으로 데려가 구타하고

가위로 차도 따보고 남의집 담도타고 별짓을 다했습니다

그렇게 비겁한 방법으로 번돈을 정신없이 쓰면서 황금같은 시간을 낭비하다보니

어느샌가 나는 또다시 14살에 서있었던 법원에 서있었습니다

다시 분류심사원으로 가게 됬습니다

"아 이제는 정말로 나는 끝이구나..."하고 생각했어요

아버지는 단 한번도 면회를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새어머니께서만 면회를 오셨어요

아버지도 이제 나를 포기하신건가...면회장에서 많이 울었는데...

1달이 지나고 다시 법원에 선 날

나는 인생의 낭떠러지로 가지않고 다시한번 세상으로나와 아버지의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빠가 서계셨어요

그 날 비가 참 많이 쏟아졌습니다

법원 문을 나서면서 아버지가 저를 꼭 껴안아주셨습니다...지금도 생생하죠

"네가 무엇을하던 그리고 아빠가 무엇을하던 네가 아빠의 아들이고 아빠가 네 아빠란다"

내 등을 일과 사업에 지친 그 까칠한 손으로 두드리시던 아버지...

내가 밉지도 않으셨을까...?

나는 세상에서 가장 나쁜 아들이라고 생각했죠

죽도록 흘리기 싫었던 야속한 눈물이라는게 비처럼 쏟아졌습니다

아빠가 해주신 말씀들...

"지금 내리는 비처럼 네 지난날을 모두 씻어버리렴"

"아들아 너는 아빠의 아들이니까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단다"

"자신감을 가져라 넌 할 수 있어"

"아빠는 네가 나의 아들이라는게 정말 자랑스럽구나"

"아빠는 괜찮단다 사랑하는 아들만 있으면 돼"

 

이후 이야기는 말씀드리지 않을래요

세상에서 가장 못된 아들인 저는 글적는 것조차 창피합니다

저같이 못난놈이 또 존재할까요

지금은 2007년이구요...저는 18살입니다

담배도 피우고

학교도 다니지않고

여전히 철이 없고 못났지만...

이제 아버지에게는

의지해도 될만한 든든한 아들이 있습니다

 

아버지...정말 미안합니다

제 옆에서 저를 한결같이 지켜주시던 아빠를 뒤로한채 상처만 드렸습니다

목재소에 가서 해야할 못질을 아버지 가슴에 했던 못난 아들을 용서해주세요

용돈을 주지 않는다고 짜증이나 부리던 생각없는 못난 아들을 용서해주세요

무너져가는 아빠 힘내라고 응원한번 못해드리고

축쳐져있는 아빠 어깨 가벼운 안마한번 못해드리고

점점 늘어가는 아빠 흰머리 볼때마다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 알고 계세요?

뵐때마다 낡아져가는 아빠 구두 볼때마다 아빠 옆자리가 가시 방석이에요

저 엄마보다 아빠가 더 좋아요

내게는 아빠가 세상에는 다시 없을 한분뿐인 아버지고

역사속의 어떤 인물보다도 멋지고 위대하신 남자입니다

가슴이 너무 쓰려요

아빠의 비참함을 이해하지 못한채

내일에 대한 불만과 아빠에 대한 원망만을 품었던 내가 한심스럽습니다

그동안 아빠는

담배를 못피시고 지갑을 털어서 내게 용돈을 주셔왔었습니다

나는 전혀 몰랐었습니다

뜻이 크신만큼 아빠는 내게 힘든 마음을 숨기고 계셨던건지

큰일을 하기 위해서는 큰 대가를 치뤄야 하는만큼

이번이 마지막 고비라며 나보고 견뎌주라던 말

그렇게 힘들고 아프시면서

왜 아들에게 말씀을 안하셨어요

제가 많이 못났지만 아들에게 말하시지 그러셨어요

나 지금 이 글 쓰는데 눈물이 주체가 안되요 며칠전에 산 바지 다 젖네요

아빠 죄송해요

제가 부축은 못해드릴망정 속상하게만해서 미안해요

밤마다 일과 사업에 시달려 사무실에서 혼자 주무시면서

얼마나 쓸쓸하셨어요

미안해요 아빠

지금도 전 철없는 아들인가봐요

아빠 외로움과 고통을 덜어드릴수 없어서 죄송해요

저 사실은 항상 아빠가 얼마나 보고싶었는지 몰라요

어릴때부터 쭉 절 혼자 키워오시느라 너무 힘드셨었죠...?

곧게 자라드리지 못하고

밉상으로 자라서 미안합니다

나는 아버지를 너무나 닮고 싶습니다

제게도 가까운 미래에 아들이 생긴다면 이렇게 키우고 싶습니다

이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

20살이되고 30살이되고 40살이되고 50살이되고...

저도 아버지를 닮은 아버지가 될께요

그리고 제 아들에게 손자에게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남자인 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줄래요

이제 힘들면 비틀거리지만 마시구...아들에게도 기대세요

지금 힘든 아빠 모든 일 다 잘될꺼에요

아버지에게는 아들이 있습니다

힘내세요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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