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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백마귀의 예언

장기영 |2007.07.07 20:34
조회 20 |추천 0

평소엔 구경조차 하기 힘든 까마귀 한마리가 왠일인지 자꾸만 내 머리위를 기웃거리며 까악- 까악-하고 천박한 울음소리를 쉴새없이 토해낸다.

 

무슨 징조인가 싶어 평소 친하게 지내던 이성 친구에게 그대로 털어놨더니 글쎄 그녀도 간밤에 까마귀와 조우했단다.

 

헌데 더욱 이상한 것은 왠 놈의 까마귀가 백조마냥 하얗더라는 것...

분명 울어대는 모양새는 영락없는 흉조의 상징, 까마귀인데 아무리 두 눈 씻고 노려봐도 날개 사이 겨드랑이까지 눈부시게 보하드란다.

 

하이얀 까마귀라...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기이한 자태는 귀신이 곡을 하지 않는 이상 만들어낼 수 없는 그것이었다. 갸우뚱 갸우뚱 애써 해석해보려 하지만 귓가엔 요란한 까마귀 소리만 세차게 울려퍼질 뿐이다.

 

상스러운 울음소리가 듣기 싫어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아 보지만 요상하게도 소리가 잦아들 생각을 앉고 계속해서 귓전을 맴돈다. 물론 친구도 똑같은 경험을 하고 있었다.

 

난데없이 우리 두사람 앞에 나타난 문제의 까마귀는 대체 무슨 의미일까?

제대로 잠을 청하지 못하고 몇날 몇일밤을 곰곰히 생각해 보아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에 정답이란 없는듯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깊은 밤 꿈자락에서 이번엔 두 놈이 한꺼번에 등장했다. 청록 빛깔 우르른 가지 굵은 나무위에 다정히 내려앉아 연신을 부리를 부벼대는 검은 놈과 흰 놈의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러 나도 모르게 입가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전혀 어울릴것 같지 않은 두 놈은 애틋한 눈길로 서로를 마주보며 핑크빛 털갈이에 한창이었다.

 

바로 다음 날, 뭔가 대단한 결심을 한 듯 친구가 내 코앞까지 바짝 다가섰다. 이번에도 꿈얘기나 할까 싶어 만났더니 예사롭지 않은 눈빛에 감히 말문을 열 수 없었다.

 

그리고는 대뜸 이렇게 묻는다.

 

"너, 나 어떻게 생각해?"

 

나는 잠시 당황했지만 이윽고 아무렇지 않은듯 둘도 없는 좋은 친구라 답했다.

 

그러저 다시 되묻는다.

 

"친구? 그럼 앞으로 여자는 어떼?"

 

꿈에도 예상치 못했던 질문이었다. 그녀는 대학시절부터 성격도 잘 막고 입맛도 비슷해 친하게 지내오던 말그대로 친구였지만 단 한번도 여자로 생각해 본적이 없는터였다.

 

그런 그녀가 이상하다. 오랜 시간 그녀에게 나란 놈은 친구가 아닌 남자였단걸 그제서야 깨달았다.

 

대답을 찾지 못하고 한참을 머뭇거리는 내 앞에 조심스레 얼굴을 들이밀던 그녀가

갑자기 내 입술에 입을 맞춘다. 바로 그 순간, 잠시 먹었던 까마귀 울음소리가 다시 귓전을 때리고 흑백의 잉꼬가 우리 두사람의 머리위를 휘휘날며 모양좋은 하트를 수놓는다.

 

나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감히 거부의 몸짓을 드러내지 못하고 그렇게 가만히 그녀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 두사람은 결국 낡은 우정전선을 단숨에 허물고 다정한 한쌍으로 거듭났다.

 

한참이 지난 뒤, 조용한 카페에 마주 앉아 찻잔을 기울이고 있을 때였다. 까맣게 잊고 있던 까마귀 얘기가 다시 도마위에 올랐다. 우리 두사람의 연을 까마귀가 맺어준 기이한 인연이라 굳게 믿고 있던 내게 그녀가 뜻밖의 사실을 털어놓는다.

 

자신은 까마귀를 본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저 내가 그렇게 말을 하기에 듣기 좋게 맞장구를 쳤던 것 뿐이란다. 하긴 아무리 꿈이라지만 훨훨나는 백까마귀는 조금 쌩뚱맞지 않은가?

 

이제사 까마귀를 봤고, 안봤고 하는 것 따위가 뭐 그리 대수겠는가? 어찌됐건 우리 두사람이 지금 이렇게 사랑하는데...

 

그래도 조금은 의문이다. 그렇담 내 꿈속에 나타난 하얗고 어여쁜 그 놈은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혹, 말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던 그녀의 속내를 눈치챈 한마리 까마귀가 빚어낸 은혜로운 사랑의 마법은 아니었을런지...

 

070707 PM08:24

Written by. J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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