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ⅰ함께 있어서 기분 좋은 사람 ]
그녀는 금방 눈에 띄었다. 프라하 성의 작은 연회장, 그녀는 사람들을 헤치고 접근 금지선 바로 앞까지 다가갔다. 짧은 금발 머리에 목에는 자주색 스카프를 두른, 삼십대 초반의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그녀의 얼굴은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2000년 10월, 체코의 하벨 대통령은 달라이 라마를 비롯한 전 세계의 유명한 사상가들을 프라하로 초청해, 교육과 영적 가치에 대한 세미나를 열었다. 수많은 인터뷰 요청을 감당하기 위해 달라이 라마는 공동 기자 회견을 열었다. 그는 이제 막 대만 신문기자의 질문에 답한 참이었다. 다섯 명의 대만 기자들이 그 자리에 참석했고, 그들 모두는 달라이 라마가 중국과 대만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고 싶어했다.
그리고 나서 곧바로 그 금발 여성이 질문 마이크를 잡았다. 목에 매단 두 대의 무거운 카메라 때문에 그녀는 몸이 앞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그녀가 물었다.
"우린 지금 인터넷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많은 명상 기법들을 알고 있습니다. 전 당신이 텔리파티에 매우 능통해 있으리라고 확신합니다만……."
"텔라요?"
달라이 라마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해 약간 당황한 듯했다.
여자가 다시 말했다.
"텔리파티요."
마침내 달라이 라마도 이해했다.
"아, 텔레파시!"
"네,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 말입니다."
여자는 집요한 시선으로 달라이 라마를 쳐다보았다. 표정에 진지한 기색이 역력했다. 억양으로 보아 체코 인이거나 독일 출신인 듯했다.
"내가요?"
달라이 라마가 특유의 굵고 우렁찬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그 목소리가 화려한 연회장 안에 쩌렁쩌렁 울려퍼지자, 그곳에 모인 백 명 가까운 언론사 기자들과 카메라맨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아뇨. 전혀요!"
달라이 라마는 강조하듯 말했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나한테 그런 능력은 없습니다. 하지만 내게도 그런 힘이 있었으면 좋겠군요. 그랬다면 당신이 질문을 하기 전에 미리 알았을 것이고……, 그럼 질문을 못 알아듣는 일도 없을 테니까요!"
그렇게 말하고 나서 달라이 라마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표정이 풍부한 얼굴에 유쾌한 주름을 하나 가득 만들며, 그는 한참 동안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한 체코 기자는 너무 웃어서 눈물을 훔쳐낼 정도였다. 그렇게 해서 연회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잔뜩 긴장했던 달라이 라마와의 기자 회견이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금발 여자는 잠시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분명 달라이 라마의 대답에 실망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소동에 흔들리지 않기로 결심한 듯했다. 그녀는 계속 밀어붙였다.
"제 질문은 이것입니다. 당신은 가끔 이메일을 사용하시나요, 아니면 여전히 텔리파티를 쓰시나요?"
그녀는 분명 텔레파시가 달라이 라마가 숨기고 있는 비밀 무기 중 하나라고 확신하는 듯했다.
마침내 달라이 라마는 옆에 서 있는 비서실장 텐진 게셰 테통에게 고개를 돌려 도움을 청하는 몸짓을 보냈다. 그들은 잠시 티베트 어로 말을 주고받았다. 기다리는 동안 여자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마침내 텐진 게셰가 공손한 어조로 설명했다.
"달라이 라마께서 개인적으로 이메일을 사용하시지는 않지만, 티베트 망명 정부의 모든 사무실에는 이미 인터넷이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 어로 몇 마디 덧붙이자, 텐진 게셰가 이어서 말했다.
"컴퓨터에 관한 한, 달라이 라마께서는 전원을 켜기 위해 어떤 버튼을 눌러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애를 먹곤 하십니다."
비서실장은 대개 이런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법인데도 불구하고, 텐진 게셰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 가득 미소를 짓고 말았다.
달라이 라마가 좀더 설명을 하고 나섰다. 그는 자신의 손을 얼굴 가까이 대고서 쫙 펼친 손가락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 손가락들은 컴퓨터보다는 십자 드라이버 같은 연장을 사용 하는 데 훨씬 알맞습니다."
그는 이제 오른손을 목수의 영장처럼 만들어 보였다.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소리들이 최고조에 달했다. 달라이 라마는 자신의 말에 열중한 채, 손가락들을 움직여 보이며 말을 이었다.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일들을 하다 보니, 이제 최소한의 것들은 내 손으로 직접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컴퓨터에 있어서는 구제불능에 가깝지요."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둘째 손가락으로 서툴게 테이블을 서너번 두들겨 보였다.
회견이 끝나자, 기자들이 달라이 라마와 악수를 하기 위해 앞다퉈 몰려들었다. 금발 여성도 그 가운데 있었다. 달라이 라마는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얼굴에 바싹 얼굴을 들이대고는 느닷없이 둘째 손가락으로 그녀의 이마를 세게 눌렀다. 그녀는 놀라서 비명을 지르며, 재빨리 오른손으로 그의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은 아무 거리낌없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달라이 라마는 어렸을 때부터 장난기로 유명했다. 그것은 나이가 칠십을 넘은 지금도 여전했다. 그와 함께 많은 여행을 하면서, 나는 그가 주어진 어떤 상황에서도 즐겁고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것을 수없이 목격해 왔다.
최근 들어, 달라이 라마는 국제적인 아이콘이 되었다. 그가 티베트 인들의 정신적인 지도자라는 것, 가장 눈에 띄는 불교의 상징이라는 사실은 대중에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서구 세계에서 그는 어떤 면에서는 고행하는 슈퍼스타, 또 어떤 면에서는 귀여운 판다 곰처럼 인식되고 있다.
2003년 달라이 라마가 뉴욕을 방문했을 때, 비콘 극장에서 행한 4일 동안의 특별 강론은 완전히 표가 매진되었다. 극장 입구의 전광판은 이렇게 반짝이고 있었다.
'현재 공연-달라이 라마. 다음 공연-트위스트 시스터와 매운 참치'
강론이 끝난 다음 날, 달라이 라마는 맨하탄 한복판 센트럴 파크에서 공개 강연을 했다. 눈부신 하늘 아래, 동쪽 잔디밭은 그의 충실한 팬들, 영적인 구도자들, 그리고 단순히 호기심에서 온 사람들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거대한 무대가 세워지고, 무대 양쪽에는 두 대의 대형 모니터가 설치되었다. 잔디밭에 앉지 못한 사람들은 우거진 나무들 뒤편에서, 나뭇잎 사이로 간신히 내다보아야만 했다. 명실상부하게 그해 최대의 이벤트였고, 10만 명의 사람들이 운집했다. 배우 리처드기어가 주관한 이 행사는 그야말로 작은 우드스탁(1969년 뉴욕 근교의 베델 평원에서 개최된 록 페스티벌. 지미 헨드릭스, 존 바에즈 등 당시 최고의 가수들이 참가했음)이라고 할 수 있었다. 센트럴 파크에서 이 보다 더 많은 군중을 끌어 모은 사람은 빌 그레이엄 목사와 교황 뿐이었다.
그날 달라이 라마는 컨디션이 무척 좋아 보였다. 그의 바로 몇 발자국 뒤에 서 있던 나는, 구름처럼 모인 군중을 보며 그의 에너지가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평소처럼 겸허했고, 부드러운 유머와 진심 어린 웃음을 보여 주었다.
미리 써둔 연설 원고 없이 달라이 라마는 청중을 향해 곧바로 말했다.
"여러분 중일부는 달라이 라마에 대한 특별한 기대를 품고 이자리에 왔을 것입니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뭔가 흥미로운 정보나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런 건 전혀 없습니다! 난 그저 몇 가지 사소한 이야기 외에는 들려드릴 것이 없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주제로 힘있게 나아갔다.
"우리는 인간에 대한 애정을 키우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폭력과 전쟁에 반대하면서 다른 해결 방식도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비폭력적인 방식이 그것입니다. 인류를 하나의 전체로서, 한 생명으로서 바라보아야만 합니다. 오늘 날의 진실은, 전세계가 마치 한 몸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어딘가 먼 장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면, 그 영향은 반드시 여러분이 살고 있는 곳까지 미칩니다. 여러분의 이웃을 적으로 여겨 미워하고 파괴한다면, 그것은 결국 여러분 자신에 대한 미움과 파괴로 돌아옵니다. 우리의 미래는 전 지구의 평화에 달려 있습니다."
그는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 군중의 주의를 집중시켰다.
달라이 라마에 대한 경외감에 젖어 있는 듯이 보이는 한 티베트 사진작가는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저 분은 대필 원고가 전혀 필요 없어요. 저 분 자신이 곧 살아있는 지혜의 원천이거든요. 오늘날의 세계에 가장 필요한 지혜이지요."
달라이 라마는 왜 자신이 그토록 사람들을 끌어당기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그와 나눈 대화 중 하나에서, 나는 그에게 물었다.
"한 가지 바보 같은 질문이 있는데요."
그 티베트 지도자는 북인도 다람살라에 있는 그의 접견실 팔걸이 의자에 평소처럼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당신은 왜 그토록 인기가 좋은가요? 당신의 어떤 점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걸까요?"
달라이 라마는 내 질문에 심사숙고하면서 잠시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내가 예상했던 것처럼 그는 이 질문을 농담으로 털어 버리지 않았다.
그는 진지한 어조로 대답했다.
"내 자신이 특별히 뛰어난 면을 지니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마 몇가지 작은 장점들은 있겠지요. 나는 무엇보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때로는 나도 약간 흔들릴 때가 있지요.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절대로 누구의 탓도 하지 않고, 누구에 대해서도 나쁜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나는 또한 나 자신보다 다른 사람들을 더 많이 생각하려고 노력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보다 훨씬 중요한 존재들이라고 나는 여깁니다. 어쩌면 나의 이런 선한 마음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는 게 아닐까요.
처음엔 아마도 호기심 때문에 사람들이 내게 관심을 가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엔 아마……. 대게 나는 누구를 처음 만나도 그가 낯선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나는 언제나 생각합니다. 그 사람 역시 특별할 것이 없는 또 다른 인간 존재일 뿐이라고. 그 점에선 나 자신도 마찬가지이지요."
그는 손가락으로 뺨을 문지르며 말을 이었다.
"이 피부 아래에는 똑같은 본성, 똑같은 종류의 욕망과 감정이 숨겨져 있습니다. 나는 늘 다른 사람에게 행복한 느낌을 전달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나에 대해 긍정적인 것들을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나를 만나러 오지요. 그 평판을 따라서요. 어쩌면 그런 것일 수도 있습니다."
달라이 라마의 영어에는 흉내낼 수 없는 그만의 독특한 방식이 있었다. 처음 그와 함께 책을 쓰게 되었을 때, 나는 그가 하는 말을 이해하느라 무척 애를 먹었었다. 그의 말들은 어떤 때는 좌절감을 안겨줄 정도로 수수께끼 그 자체였다. 하지만 나는 차츰 그가 말하는 방식에 익숙해졌고, 이제는 그것이 가진 매력과 단순성에 완전히 매료될 정도가 되었다.
내가 말했다.
"때로 사람들은 당신을 만날 때, 당신이 하는 말을 듣지도 못한 채 그저 당신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감동하곤 합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달라이 라마는 대답했다.
"때때로 어떤 가수나 유명 배우가 나타나면 사람들이 거의 울부짖고, 펄쩍펄쩍 뛰고, 소리내어 우는 것을 봅니다. 그것과 비슷 하지요."
그는 의자에서 몸을 들썩이며 두 팔을 몇 차례 파닥거렸다.
내가 말했다.
"그럼 당신은 자신이 마치 록스타 같다고 생각하나요."
"네, 그렇습니다."
달라이 라마는 사실을 말하듯 평범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나서 말했다.
"하만 다른 요소들도 있을 겁니다. 우리는 전생에 다른 삶들이 존재했었다는 것을 믿습니다. 따라서 어쩌면 카르마(업)에 따른 어떤 연결, 혹은 더 신비한 무엇인가가 있을 수도 있지요."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먼 곳을 응시했다. 나는 그가 자신이 가진 카리스마에 대해 좀더 근접한 설명을 생각해 내려고 노력 중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는 몸에 걸쳣던 숄을 벗어서 다시 어깨에 감았다.
마침내 그가 말했다.
"그 신비한 차원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이상한 꿈을 꾸며, 그 꿈이 그들에게 새로운 미래, 새로운 삶, 또는 다른 사람들과의 새로운 연결을 열어 줍니다."
그는 생각을 전개해 나가며 나를 가리켰다.
"당신의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어쨌거나 예기치 않은 뭔가가 당신을 이곳으로 데려왔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납치 사건이 그것이지요. 만일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당신은 이곳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나와의 이 모든 관계, 티베트 인들과의 관계들도 발전시킬 수 없엇겠지요. 따라서 나는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다 원인과 조건들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불교적인 관점에서 보면 많은 전생들에 카르마적인 연결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것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나에 대해 가깝게 느끼는 이유일 수도 있지요."
그렇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납치 사건. 1971년, 나는 대학을 졸업한 뒤 위트레흐트(네덜란드의 한 도시)에서 폭스바겐 캠핑카를 구해, 네덜란드에서 인도까지 가는 육로 여행에 나섰다. 터키와 이란을 가로지른 다음, 나는 반년을 아프가니스탄에서 보냈다. 당시 아프가니스탄은 기존 사회로부터 이탈한 젊은이들과 모험가가 되기를 꿈꾸는 이들의 피난처였다.
그 여행이 거의 끝나갈 무렵, 나는 두명의 젊은 여자-뉴욕에서 온 셰릴과 뮌헨에서 온 리타-와 함께 아프가니스탄 남자 세명에게 납치를 당했다. 그들은 권총 한 정을 휘두르며 우리를 위협해 심하게 녹슨 차에 태운 뒤, 힌두쿠시 산맥 고지대의 작은 마을로 데려갔다. 며칠 동안 붙잡혀 있던 우리는 그들의 차가 급커브에서 미끄러져 산비탈에 부딪친 틈을 타 가까스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곧이어 셰릴과 나는 인도 여행을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 그녀는 다람살라에서 망명 중인 달라이 라마에게 보내는 소개 편지를 지니고 있었다. 우리는 곧바로 그림 같은 티베트 정착촌을 향해 출발했다. 다람살라에 도착하고 며칠 지나서 접견 허락이 떨어졌다. 1972년 3월의 서늘하고 구름이 낮게 깔린 어느 봄날, 나는 모든 티베트 인들의 영적 지도자이자, 동시에 티베트 인들에게 현실 세계의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를 처음으로 만났다.
운명, 카르마. 무엇이라고 불러도 좋다. 그렇다, 달라이 라마의 말이 옳았다. 만일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 사건을 겪지 않았더라면 틀림없이 나는 달라이 라마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와 함께 책을 쓰고, 그가 가진 카리스마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건 둘째 치고라도.
달라이 라마는 자신이 가진, 사람을 끌어당기는 커다란 힘에 대한 내 질문에 여전히 심사숙고하면서 말을 이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내 웃음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그게 어떤 종류의 웃음인지, 어떤 종류의 미소인지 나는 모릅니다."
내가 말을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 웃음에 대해 한마디씩 하지요. 당신이 가진 장난스러움에 대해서도요. 당신은 70세가 다 됐지만, 여전히 장난을 좋아하고, 스스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달라이 라마가 말했다.
"우선, 티베트 사람들은 대개 쾌할한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많은 고난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항상 웃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내 가족들도 마찬가집니다. 걀로 쏜둡(달라이 라마의 둘째형)만 제외하고는 가족 모두가 그렇죠. 큰형 노르부는 언제나 장난칠 준비가 되어 있고, 늘 짓궂게 농담을 합니다. 세상을 떠난 내 바로 손윗형 롭상 삼텐은 매우 재미있고 지저분한 농담을 즐겨했지요. 그리고 나도 그렇습닏. 막내 동생 텐진 소걀, 여동생 젯순 페마, 또 돌아가신 큰누나도 다 심각하지 않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도 마찬가지였습닏. 아버지도 성격은 급하셨지만 마음만은 언제나 밝으셨지요.
내 자신의 경우, 나는 늘 평화로운 마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힘든 상황이나 가끔씩 들려오는 매우 비극적인 소식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은 그리 많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잠깐 동안은 슬픈 기분이 들지만, 그것이 오랫동안 지속되거나 내 마음을 괴롭히지는 않습니다. 몇 분이나 몇 시간 안에 그 감정은 사라져 버리지요. 그래서 나는 마음의 상태를 바다에 비유하기를 좋아합니다. 표면에서는 파도가 왔다갔다 하지만, 바다 속은 언제나 고요히 머물러 있습니다."
데스먼드 투투 대주교(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 분리 정책에 비폭력 투쟁으로 대항,1984년 노벨 평화상을 받음)가 말했듯이, 달라이 라마와 만난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그를 '진짜'라고 느끼게 된다. 왜 그런지 정확한 이유도 모른 채, 사람들은 그에게서 깊은 영향을 받고, 멀리서도 그의 진실한 인간성에 이끌린다.
어쩌면 달라이 라마의 강렬한 현존은 그가 지닌 깊은 영성의 샘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또한 누구나 입을 모아 말하는 그의 따뜻함은 단순히 그의 영적 깨달음의 표현이 아닐까?
대답은 쉽지 않다. 나는 거의 30년 넘게 달라이 라마를 알아 왔으며, 그 자신도 나를 '오랜 친구'라고 부른다. 지난 몇 해 동안 이 책을 공동 집필하면서, 나는 전에 없이 그와 가깝게 지낼 수 있었다. 가까운 거리에서 달라이 라마를 지켜보았고, 그의 수행원이 되어 전세계로의 여행에 동행했으며, 그의 사택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가진 놀라운 흡인력을 정확히 집어내기는커녕, 그것을 설명할 단어들조차 찾기 어렵다. 아마도 그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세기에 걸친 불교도로서의 수행, 그리고 주위 세상과 관계를 맺는 그만의 도극한 방식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삶에 대한 달라이 라마의 접근 방식은 많은 부분에 있어 몇 가지 근본적인 통찰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것들을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그는 몇 번에 걸쳐 내게 상호 의존과 공空의 개념에 대해 설명했다. 이 두 가지는 그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개념들이다. 나는 그가 하는 말을 주의 깊게 듣고 노트에 옮겨적었다. 내가 그 개념들을 이해하느라 무척 애를 먹었다는 사실을 고백해야만 하겠다.
하지만 그의 그림자가 되어 몇 시간이나 계속해서 그와 함께 있음으로써, 나는 그를 정의하는 몇 가지 특성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자비와 비폭력의 원리가 달라이 라마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의 근본을 이루고 있다. 또한 그는 갈등과 미움의 해결책으로서 한결같이 용서를 선택한다. 이것들이 그의 행동을 결정 짓는다.
나는 이 한 가지만은 확실하게 알고 있다. 어쨌든 달라이 라마 주위에 있으면 나는 기분이 좋아진다. 또한 다른 사람들도 그와 가까이 있으면 좋은 기분이 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그가 스스로 말한 대로 행동한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알아차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의 내면에서 보기 드물게 순수한 중심을 느낀다. 빛을 반사하는 거울처럼,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의 인간성을 발견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