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맛있는 토스트 BOOK 입니다 
"너희의 종교가 네 손바닥에 있는 뜨거운 석탄 조각과 같은 날이 올 것이다 ; 너희는 그것을 붙잡고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이슬람의 예언자는 7세기 초에 아라비아에서 신도들에게 이렇게 말하면서 미래를 예측하였다. 후에 제자들이 그에게 물었다. "무슬림이 거의 사라진다는 의미인가요?" 예언자는 대답했다. "아니다. 무슬림 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대해의 파도 위에 떠 있는 거품처럼 힘이 없게 될 것이다."
2001년 9월 11일 이후, 예언자의 이 예언은 사실로 드러나는 것 같았다. 이슬람은 그의 신도들에게 뜨거운 석탄 조각 같은 것이 되었다. 그러나 이전 어느 때보다도 신도 수는 증가했고, 역사상 처음으로 전 세계에 퍼져 있다. 무슬림 사회는 어느 곳이나 혼란 속에 있는 것처럼 보이고, 피고인석에 앉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며, 그들은 "테러리스트" "광신자" "극단주의자" 종교에 속한 것으로 비난받는다. 이슬람은 포위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2001년 9.11사건 이후, 조지 부시 대통령이 선언했던 "테러와의 전쟁"은 금세기 내내 이어질 위험이 있다. 즉, 많은 무슬림들은 그것을 이슬람에 대한 전쟁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므로 전 지구적.개인적 수준 모두에서,지금은 무슬림들에게 도전과 실망의 시기이다.
왜 이슬람이 중요한가
21세기는 이슬람의 세기가 될 것이다. 9.11사건은 그것을 보여 주었다. 네 기의 미국 여객기를 공중 납치한 납치범들은 수천 명의 무고한 사람들을 살해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무시무시한 행위는 21세기의 가장 거대한 패러독스 중의 하나를 창출했다. 이슬람은, 그 자체는 평화의 종교로 보이지만, 이제 살인과 파괴와 결합되고 있다. 오늘날의 이슬람을 생각해 보자. 55개 국가에 약 13억의 무슬림이 살고 있다. 당장 하나의 핵 보유 국가가 있고, 세계 무슬림의 약 1/3이 비무슬림 국가에서 살고 있다. 미국에 700만, 영국에 200만을 포함하여 약 2,500만 무슬림이 서구에 살고 있다. 무슬림 국가들은 미국 외교 정책에서 매우 중요한 국가들이다. 미국 외교 정책의 토대가 되는 9개 "중추 국가 pivotal states" 중 5개국이 무슬림 국가이다. 무슬림 세계는 가장 빠른 속도로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곳 중 하나이다. 그리고 무슬림은 다른 세계적 종교들과 충돌 과정 collision course 에 있는 하나의 세계 종교이다.
"왜 그들은 우리를 저주하는가?"
무슬림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또 다른 면이 있다. 팔레스타인, 카슈미르 또는 체첸에서 살해되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할 때, 무력감과 모욕감을 느낀다. 많은 사람들은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미국을 비난한다. 그들이 볼 때, 초강대국[미국]은 도덕적 파산자이고, 세계인들이 겪는 고통을 기꺼이 중지시키려고 하지 않으며, 자신들의 지나친 소비를 멈추려고 하지 않는다. 빈라덴에 의한 테러 사건 이후 조지 부시가 "왜 그들은 우리를 저주하는가?" 라고 묻기 훨씬 더 전부터 미국은 증오의 대상이었다.
2001년 9.11테러 사건은 이슬람에 관해 우리에게 몇 가지 의문을 던져 주었다. 코란은 폭력을 권장하는가? 무슬림들은 유대교도와 기독교인들을 증오하는가? 우리는 이슬람과 서구 사이의 마지막 십자군 전쟁을 시작하고 있는가? 왜 세계의 여러 종교들이 설파하는 평화와 동정의 메시지는 노여움과 저주의 소음 속에서 사라져 버렸는가? 지역 문화들은 지구 전체에 불어 닥친 개발에 직면하여 어떻게 그들의 정체성과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 명예를 상실했다고 인식하는 것은 집단 충성 또는 사회적 결속의 붕괴 때문인가? 우리는 원인과 결과를 규명할 수 있는가? 집단 충성은 미래 지향적인 인도주의적 동정심에 의해서 유연해겠는가?
이러한 의문점들을 둘러싸고 있는 심각한 불확실성 때문에, 최근에 주어진 많은 답들이 인위적이거나 위선적이라고 놀랄 일은 아니다. 전문가들도 잘못 판단할 수 있다. 인류학이 우리에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하겠지만, 우리는 다른 학문 분야를 통해 해답을 찾을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인류학에 관해 쓴 것도 아니고, 빈 라덴에 관해 쓴 것도 아니다. 이 책은 빈 라덴과 그의 알-카에다 네트워크를 조직하도록 만든 세계, 그가 이러한 조직을 만드는 데 협조한 세계에 관한 것이다. 또한 빈 라덴의 행동으로 다른 세계 종교들과 대립하게 된 이슬람에 관한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지구를 조망하는 지도를 만들고, 앞에 놓여 있는 길, 그리고 위험 요소들을 지적하기 위한 연습이다.
이슬람이 잘못인가, 세계화가 잘못인가?
많은 학자들은 이슬람이 서구와 충돌 중에 있으며,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시대에 대해 본래부터 적대적이라고 믿고 있다. 나는 이슬람 사회가 -전통 종교의 영향을 받는 다른 세계 문화와 마찬가지로 - 현재 일어나고 있는 지구적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대응은 노여움, 몰이해, 폭력적 증오가 혼합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서구의 근대성에도 매혹적인 요소는 있고, 따라서 하나의 유혹이다. 이슬람과 근대성 간의 관계는 단순한 문명 충돌론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문명 충돌이라는 개념은-문명 출돌론에서는 무슬림들을 서구의 주요 반대자로 보고 있다-이슬람을 서구를 위협하는 약탈 문명으로 보는 낡은 관념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와 반대되는 관념은 문명의 대화이다.
무슬림들 가운데 팽배해 있는, 포위당해 있다는 느낌은 9.11 이후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다. 또한 무슬림들에게만 한정된 것도 아니다. 지난 십여 년 넘게, 서구로부터 밀려들어 온 정치적, 문화적, 기술적 변화의 속도와 범위는 전통 사회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어 왔다. 그들 사이에서는 너무 많은 변화가 너무 빠른 속도로 발생하고 있다는 느낌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세계화는 혼란과 절망을 만들어 냈다. 마하티르 박사는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나는 제3의 밀레니엄이 시작된 21세기에 무슬림들에 대하여 낙관적인 생각을 가지려고 매우 노력했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되기는 매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할 것 같다. 나는 아주 소수의 무슬림들만 현실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들은 약함이 강함으로 간주되고, 실패가 성공으로 간주되는 세계에서 살고 잇다."
명예의 문제
빈 라덴은 이슬람 세계를 혁명할 의도로 명예를 끌어들였다. 그는 서구의 지지를 받는 부패한 무슬림 통치자들을 비난했다. 특히 그는 무슬림들에게서 명예와 존엄성을 빼앗아 간 미국을 비난했다. 그는 이에 대한 해결책이 민간인을 포함한 목표물들을 폭력적으로 타격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빈 라덴의 첫 번째 가정-즉, 모든 지역의 무슬림들이 명예와 존엄성을 빼앗겼다고 느끼는 것-은 옳았다. 그의 두 번째 가정-즉, 무슬림들의 궁핍 상태에 대해 책임지고 비난받아야 할 근시안적이고 부패한 통치자들이 있다는 것-도 부분적으로 옳았다. 그러나 빈 라덴의 세 번째 가정-목표물들을 폭력적으로 타격하는 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었다. 코란에 따르면, 이슬람은 단 하나의 무고한 ]명도 빼앗는 것을 정당화시킬 수 없다.
미국인 살해-그리고 유대인 살해-가 이슬람에서 정당화된다는 생각은 부분적으로 왜곡된 논리였다. 빈 라덴은 이러한 왜곡된 논리를 가지고 이슬람을 재해석했다. 스스로 말한 것과 같이, "그들은 우리에게서 우리의 부, 우리의 자원, 우리의 석유를 빼앗아 가고 있다. 우리의 종교가 공격받고 있다. 그들은 우리의 형제들을 살해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의 명예와 우리의 존엄성을 손상시키고 있고, 우리는 이러한 부정의에 대하여 감히 저항이라는 단 하나의 말을 사용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테러리스트로 불리고 있다"(Esposito 2002:24). "반게기 넘게, 팔레스타인 무슬림들은 도살당했고, 폭행을 당했으며, 그들의 명예와 재산을 빼앗겼다"라고 말했다.
지구적 패러다임을 향하여
9.11은 자신들의 생각과 행위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간에 자신들의 전 문명을 다른 문명들과의 대결로 끌어들이는 데 있어 결정권을 가진 소수 사람들의 능력을 확인해 주었다. 일단의 힌두교도들이 아요디야에 있는 모스크를 파괴하고, 무슬림들이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불상을 파괴하였을 때, 세계 언론은 그들의 종교가 극단주의자들의 행위와 관련된 것으로 보도했다.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단기적으로는 이슬람 문명과 서양 문명 및 다른 문명들 사이에 조화로운 관계가 형성될 전망은 불확실하고, 심지어 비관적으로까지 보인다. 좀 더 장기적으로는, 훨씬 더 많은 것들이 대화와 이해를 촉진하려는 사람들의 성공 여하에 달려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무슬림들과 비무슬림이 공동으로 노력하는 것이 가능할까? 무엇보다도 우리는 무엇이 잘못되고 있는지를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즉, 아싸비야가 붕괴되고 있는 사실에 직면해 있다는 것, 그리고 이것에 대한 이해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된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명예를 폭력과 동일시하는 것은 아싸비야 붕괴로 인한 하나의 직접적 결과이다. 필요한 것은 정의, 동정심.균형, 그리고 지식에 대한 개념과 실천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것은 명예를 유지하고자 하는 욕구로 꽉 차 있는 배타주의자들을 대결에서 수용으로, 갈등에서 합의로 전환시켜 줄 것이다.
무슬림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다가올 시기에 무슬림 세계를 위해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서구는 이를 어떻게 가장 잘 도울 수 있는가?
첫 번째 단계는 서로를 악마로 보는 것을 멈춰야 한다. 무슬림들은 그들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세계적 음모로 보는 것을 그만두어야 한다. 섹스와 폭력에 탐닉하면서 이슬람을 멸종시키기 위해 영구적으로 음모를 꾸미고 있는 거대악마 Great Satan 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서구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 한다.
무슬림 세계는 민주주의를 제도화하고 확실하게 성공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무슬림들은 자신들이 통치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자신들이 선거권을 빼앗긴 상태에 있다고 느끼고 있다.
우선해야 할 또 다른 일은 교육이다. 무슬림 사회는 다른 선진 사회와 동등한 위치에 올라서기 위해서 저렴한 양질의 교육에 접근할 수 있게 할 필요가 있다.
무슬림 교육은 이슬람의 관대하고 동정적인 성격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그럴 때에만 이슬람의 본 모습이 다시 나타날 것이다.
무슬림들은 한때 그들 사회의 특징이었던 관용을 재발견해야 한다. 교회, 버스 그리고 시장에서 보통 사람들을 납치하고, 강탈하고, 고문하고, 폭파시키는 행동에 대해 생각해 보자. 그 젊은 남자들-그리고 이제는 여자들-은 어디에서 그들의 영감을 얻는가? 왜 무슬림들은 가장 강력하고 사랑스러운 이슬람의 모습 중의 하나를 포기하려고 하는가? 왜 저항을(팔레스타인,이란,아프가니스탄,알제리,파키스탄,이집트에서와 같이) 항상 폭력으로 표현하는가? 왜 친절한 교사들과 이슬람의 신비론자들[예를 들면,수피즘]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는가?
무슬림 지도자들 또한 그들 나라의 사회적,인구학적 추세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무슬림들은 또 다른 중대한 국내 문제에 직면해 있다. 그들은 정의, 청렴, 관용 그리고 종교 의식에 대한 고집이 아닌 지식에 대한 추구-고전적 이슬람 문명-를 포함하는 이슬람의 이상을 재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서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서구는 세계적인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솔선해야 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지금 무슬림 세계와 상호 작용하는 서구 강대국들이 장기적인 전략을 보이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장기적인 명확성과 이해가 없다면, 그 관계는 어디까지나 어렵고 불만족스러운 것일 뿐이다.
서구는 먼저 무슬림들이 말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면서, 나아가서 이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무슬림 세계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 약간의 인내심과 이해심만 있다면, 무슬림 세계를 도우려는 일반적인 바람은 실현될 것이다.
서구는 언론 매체, 세미나, 회담, 회합을 통하여 이슬람을 적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러나 무슬림들의 어떠한 측면의 행동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통의 무슬림들에게 진지하게 전해야 한다. 서구는 무슬림들의 폭동이 서구에 반대하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부패와 정의의 결핍에 대항하는 운동의 이슬람식 표현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서구는 "핵무기" 하면 자동적으로 무슬림들을 떠올리는 것과, 모든 무슬림의 행동에 대해 "원리주의자"의 행위로 단정짓는 것을 중단할 필요가 있다. 서구는 이슬람이 존엄성을 가진 세계 종교라는 관점에서 보도해야한다.
민족적, 종교의 폭력은 인간 본성의 어둡고 추한 측면이다. 폭력을 억누르고 폭력과 싸우기 위해 우리는 가장 먼저 그것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우리의 시대, 우리의 본성, 우리의 열망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바라보는 것이어야 한다.
포위당한 이슬람 ISLAM UNDER SIEGE
아크바르 아흐메드 지음 | 정상률 옮김 | 울력
이 책의 지은이 아크바르 아흐메드(Akbar S. Ahmed)는 파키스탄 출신으로, 현재 아메리카 대학의 국제관계학과 교수이며 이븐할둔 석좌교수이다. 그는 파키스탄의 고위 공무원이었고, 세계 종교 간 대화를 주도적으로 이끈 인물들 중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또한 이슬람의 지도력 유형을 연구한 학자이기도 하고, 이슬람 국가의 세속화를 위해 노력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로 인해 파키스탄 정부의 눈 밖에 나면서 관직을 포기해야 했던 이력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런 그가 9.11 이후 이슬람 세계와 미국 및 서구 세계에서 점증하는 폭력성에 초점을 맞춰 그것의 이유와 그에 대한 해결책을 자신의 경험에 비춰 제시하고 있다.
아흐메드의 말대로, 이 책은 "빈 라덴과 그의 알-카에다 네트워크를 조직하게 만든 세계, 그가 이러한 조직을 만드는 데 협조한 세계에 관한 것이다. 또한 빈 라덴의 행동으로 다른 세계 종교들과 대립하게 된 이슬람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지구를 조망하는 지도를 만들고, 앞에 놓여 있는 길, 그리고 위험 요소들을 지적" 하는 연습을 통해 그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기도 하다.
1. 탈명예의 세계
이 책에서 지은이가 가장 강조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현재 탈명예 post-honor 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선한 행위와 숭고한 대의명분을 추구함으로써 전통 사회를 단단하게 결속시켜 주던 명예 개념은, 전 지구적인 변화 과정에서 변화되고 변질되어, 폭력 행위에 탐닉하는 것이 명예로운 것이라고 간주하게 되었다. 빈 라덴의 테러 활동도 바로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이슬람 사회에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어서 부시가 테러와의 전쟁을 천명하며 복수와 명예 회복을 부르짖었을 때에도 바로 이 변질된 명예 개념이 작동하고 있었다. 이러한 변질된 명예 개념은 현 세계를 지배하는 남성적 사회 행위의 결과이며, 이는 결국 갈등과 대립을 초래하며 폭력의 악순환을 야기하게 된다.
2. 배타주의와 포용주의
이 책의 지은이는 이슬람을 "원리주의자," "테러리스트," "극단주의자"로 보는 서구의 시각에 반대한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이슬람을 적으로, 절대적인 악으로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20세기 내내 세계를 "이슬람 대 서구" 라는 이분법적 대립물로 보며 이슬람 세계 내에서 갈등을 부추겨온 쿠틉과 빈 라덴 같은 이슬람 행동주의자들의 시각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이에 대해 지은이는 "배타주의"와 '포용주의"라는 개념을 제안하면서 이를 통해 현 세계를 바라볼 것을 주장한다. 실제로 세계는 타자의 존재를 부정하면서 폭력과 복수를 부추기는 배타주의가 존재하며, 문명 충돌론이나 빈 라덴과 부시 같은 인물들이 바로 그것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와 대척점에 문명(종교) 간의 대화를 주장하며 타자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통해 세계 평화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포용주의가 있다. 이 개념은 이슬람을 적으로 보지 않으면서도 현 세계의 문제점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3. 이슬람 국가의 세속화
이 책의 지은이는 이슬람 국가의 지도자(력) 유형을 네 가지로 구분하고 있는데, 성직자형 지도자, 군부 통치자들과 군주, 사회주의/공산주의 지도자, 그리고 민주적 지도자가 바로 그것이다. 그는 이슬람 세계의 배타성과 여성에 대한 차별, 그리고 폭력의 신봉 등이 종교와 지도자의 권위에 의존하는 이러한 지배 형태와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지은이는 헌법과 법률 체계에 기초한 세속 국가를 주창한 파키스탄의 건국자 진나를 통해 이슬람 국가들의 세속화와, 그리고 이를 통해 비이슬람 국가들과 공존할 수 있는 제도적 기틀을 마련할 것을 주장한다.
4. 문명(종교) 간의 대화
이 책의 지은이는 본국인 파키스탄 종교 원로들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종교 간의 대화를 주장하고 실천한 사람이다. 그에 의하면, 세계는 배타주의자들이 주목을 받고, 그로 인해 갈등과 대립이 심화되고 있다. 하지만 현 세계가 직면한 긴급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평화로운 세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문명 간의 대화와 이해 쪽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탈명예의 세계에서 인류의 생존 조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매우 풍부한 지식과 상상력을 가지고 9.11 이후 벌어지고 있는 갈등들을 분석한 후, 그 해결책들을 제시하고 있다. 필자가 강조한 것과 같이, 이 책을 통해 이슬람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조금이나마 해소되고, 평화와 연대성의 세계가 건설되기를 바라는 글을 엮자는 말하고 있다.
최근 실시간으로 아프가니스탄에 억류되어 있는 한국인들의 뉴스속보로 긴급함을 알리고 있어 그들의 관심과 행동에 관해 민감하고 섬세한 대응을 온 국민이 바라보고 있다. 그곳에 피랍되어 있는 인질은 말할나위 없지만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 그들의 가족과 국민들에 심정은 천길낭떠러지이다.
무엇보다 인질들의 안전이고 무사귀환이다. 그러기위해서는 그들이 요구사항과 인질들의 석방에 관한 대응에 관한 우리측의 협상에 귀추된다.
'적을 알고 나를 알자'라는 기본적인 방법에 원인분석과 그들의 성향을 알기 위해 이슬람 전문가들이 나서며 해설과 향후 관측을 알려주고 있다. 얼마전에 나온 이 책 '포위당한 이슬람'을 읽으며 무슬림 세계에서 무엇 what 이 잘못되고 있고, 왜 why 잘못되고 있으며, 어떻게 how 해야 하는가? 에 대해 잘 분석되어 있는 것이 놀랍다.
이 책은 이슬람을 비판하는 비판서도 서구의 응호론적인 글도 아니다. 저자는 극단적인 무슬림 테러리스트 및 테러리즘과 보편 종교로서의 이슬람을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서구와의 상호 이해와 관심을 기울여 세계인들이 모든 인류를 껴안는 것을 주장하는 것으로 결론을 짓는다.
인류의 가장 발달된 특성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아마도 도덕적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일 것입니다. 지금 억류되어 있는 한국인 23명은 의료를 돕기 위해 간 민간일 뿐입니다. 그들의 올바른 도덕적 선택을 바라며 아프가니스탄에 억류되어 있는 한국인들의 무사귀환을 바랍니다.
맛있는 토스트 BOOK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