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인으로서 성공했다면, 득도한 것과 다름이 없다.
직업의 귀천을 가리던 고려시대도 조선시대도 아니고,
현대는 자본주의 시대이니 만큼 가장 빠른 길이 장사이고,
직장을 다니면서도 나는 언제나 내 장사를 해보리라 마음 먹었었지.
그런데,
너무 큰 문제가 나한테 있었다.
나는
나와 똑같지 않은 사람을 좋아 하지 않는 거였다.
좋아 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싫어하고, 경멸하기까지 하는데다가
안색이 금새 바뀌는 것을 감추지 못하는거다.
말하자면, 수양이 안된거지.
아버지가 말씀하시곤 했었다.
사람은,
가르치지 않아도 아는 사람
가르치면 비로소 아는 사람
가르쳐도 끝내 모르는 사람이 있다고
장사란,
가르침을 받아본 적이 없던가
가르침을 받았지만 끝내 모르쇠인 사람을 봐줘야 하는 직업
내가 수없이 사람들을 봐 오면서 느낀 것은,
지식 말고 상식.
이 놈의 상식적인 것을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단 말인가 하는 것이다.
이 정도를 들어본 적도 없단 말인가...
아니 이런 짓을 사람으로서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사람의 탈을 쓰고 이렇게 까지 해도 되는걸까...
가슴이 꽉 막히고, 어처구니가 없고,
상식에서 벗어난 정도를 넘어서 교활하기 까지 한,
소수이지만 근본적으로 나쁜 사람까지를
상인은 봐야 하고, 본 것을 소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내가 하지 않는 행동이나 사고방식들...
꽤 오래 봐 왔지만 아직까지도 적응이 안되고 깜짝 놀랄 일.
어처구니가 없어서 혀를 내두를 일.
기가 꽉 막힐 일들이 끝도 없이 속출하는 직업이 바로
수도 없이 많은 부류의 사람과 상대해야만 하는 '장사'인 것이다.
그래서 내려오는 말이 있지...
'장삿꾼과 선생의 * 은 개도 안먹는다.
아~ 글쎄, 내가 아침에 간과 쓸개를 집에다가 내놓고 나왔어야 하는데 깜빡 잊고 나간 날은 억지 부리는 사람들 때문에 얼굴이 파래져서 화를 내기도 한다.
엄마 닮아서 싸우지는 못하지만, 화가 난 마음을 숨기지도 못한다.
고객은 대부분(99.9999%) 자신들의 잘못으로 망가진 가구들을
제품에 하자가 있어서 라거나, 잘못 설치해줘서 생긴것 처럼 전화했다가, 잘못을 알아차리고 지적하면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고쳐 달라고 부탁하듯이 말한다.
자신들의 잘못을 늘 떠넘기려고 해보는거지.
못된 사람은 망가뜨려서 갖고 와서는 다른 제품으로 바꿔달라고 조르기도 한다.
방금 차에 실어줄때 멀쩡했던 것을
차에서 내리면서 망가뜨려 가지고는 전화한다.
-"집에 와서 보니까 다리에 상처가 있다"
-"그거 제가 닦았어요. 닦으면서 잘 살펴 봅니다.상처가 어디에
어떻게 나 있나요? 문제가 있었다면 바꿔 드려야지요"
그리고, 가서 보겠다고 하면, 아니라고 펄쩍 뛰면서 가져오겠다고 한다. 이 정도면 비교적 양심이 있는 사람이다.
한 시간, 두 시간씩 심사숙고 하고,
이 사람 저 사람 데리고 와서 보이고 일주일,이주일에 걸쳐서 보고는 좋다면서 선택한 물건을 배달 시킨다.
이럴때 대부분 버려야 할 가구들의 처분도 해달라고 한다.
알지? 버릴때 돈 들여야 하는것.
쓰레기들 다 치워 주고,
준비해 두었다가 못도 박아 달라고 이것저것 들고 나오는 것들을
손짓 하는대로 다 못도 박아 준다.
그러고는,
"갖다 놓고 보니 우리 집에 안 어울려요.
아무래도 반품 해야 될 것 같아요"
"너무 커요"
"너무 작아요"
"우리 남편한테 혼나서... 사정 좀 봐주세요"
"아들이 싫다 그래요"
"딸이 색깔이 안맞데요"
"친구가 이건 아니래요"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저럴 수가 있을까 싶은 장면을 노상 봐야 하는 것이 장사인 것을
일반인들이 겪어 보지 않고는 모르는 것이다.
구조적인 또는 유전적인 문제로 암에 걸리는 것 말고
잘 살다가 암에 걸렸다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암의 발생원인으로 가장 영향력이 있는 것이 스트레스라고 본다.
장사를 하면서,
어느 직업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장사가 잘 되면 잘 되는대로, 안 되면 안 되는대로...
그렇다면 장사하는 사람들은 다 암으로 죽을까?
스트레스가 있다면(발병요인이 있다면),
그 스트레스는 푸는 방법도 있는 것이다.
반대급부가 무엇인가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 진다고 보는데
나에게는 몇 가지 즐겁게 사는 방법이 있다.
- 첫째, 음악이다.
내 생활에서는 음악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무엇이든 선뚯 사지 않는 내가 비교적 아끼지 않는 것이 듣는 것에 투자하는 거다.
천만원을 홋가하는 TV를 샀다는 사람을 가장 불쌍하게 본다.
차는 바싼 거 살만한 이유(안전)가 있지만,
뭐하겠다고 거기에 그 큰 금액을 쏟아 붓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백현동 골짜기에 밤늦게 걸어 들어갈 수 있었던 것도 내 귀에 꽂힌 이어폰을 통해서 베토벤교향곡 6번, 9번,토스카의 별은 빛나건만, 온갖 오페라의 아리아와 행진곡, 서곡 등등이 크게 들리지 않았다면 누가 따라 오는 것 같아서 못갔을거고,
결혼하고 나서는 정말로 시간이 아깝고 머무르기 싫었던 부엌에 음악이 없었다면 나는 늘 굶었을거고,
지금도 먼지를 닦으면서 음악이 귀를 통해서 들리지 않는다면 지루하고 무의미해서 걸레를 내팽겨 쳤을것이다.
음악은 모든 시름을 잊게 하고,
경직되는 사고를 완화시켜 주고,
부족함을 못느끼게 해준다.
-둘째, 자유로움이다
이상하게 생각할 지 모르겠다.
주말도 없이 매달려 있고,
시간이 없어서 취미 생활도 마음대로 못하고
친구도 제대로 만날 수 없다고 칭얼거리면서 자유라니? 웬 자유?
하겠지만
나는 10년간 직장을 수도 없이 옮겼다.
제도권 안에 얽매이는 것을 못견뎌 하는 야생적인 기질이 있다.
(결혼생활이 유지되는 것은 부처같은 남편 덕이다)
내가 필요하다고 아무리 붙잡아도 뛰쳐 나왔고,
다음 직장을 잡아 두지도 않고 사표부터 던지고,
실력도 없는 것이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들어오자마자 과장이라는 타이틀에 점심시간에 당구장에서 늦게 들어와서 내가 다 알아서 해주기를 바라는 꼴을 못봐주고,
배알이 꼴리면 누구한테든 원고를 집어 던지곤 해대니 어떻게 한 직장에서 오래 있었겠는가.
교학사 실장은 내가 그만두겠다고 하니까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을 못했었다... (후회할껄~) 나는 후회하지 않았다.
-셋째, 일에 대한 즐거움이다
나는 직장을 다니면서도 지나치다 싶게 일에 매달렸었다.
그래서 나만큼 일을 못하거나,
일을 눈 앞에 두고 안하거나,
자신의 일에 열정이 없는 사람들을(곧 있으면 시집이나 갈텐데 하는 여자애들) 노골적으로 경멸했었다.
내가 가구와 수입 소품 품목에 뛰어들때 백지 상태였다.
색깔 구분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가구의 모습을 보고도 명칭 조차 모르는 맹물이였건만
지금은 삼십 년 이상 장사하고 수입했다는 사람들이 나를 붙잡고
이거 수입하려는데 어떻겠는가
카다록을 들고 와서는 여기서 될만한 것을 골라달라.
디자인 좀 알려달라 는 등 많이 심각하게 물어온다.
언제나 어디서나 어떤 일을 하게 되든 최선을 다하는 자세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 앞서서
내게는 차고도 넘치는 충만한 사랑이 있다.
- 세상에서 이보다 더 깊고 큰 사랑의 샘을 지닌 사람이
있을까 싶은 나의 엄마
- 우애 깊어서 서로 아껴 주는 언니와 동생
- 너무도 순진하고 착해서 우리가 없을 땐 어떻게 살아나갈까
은근히 미래가 걱정되는 서현이와 수현이
- 내 앞에서 죽는 시늉까지도 하는 내 복에 넘치는 남편
- 친자매 같이 애틋하고, 부모와 전혀 다를바 없는 이모
- 비교적 잘 융화 되어 가는 시댁 식구들(뒤에서는 욕할지언정
앞에서는 무진장 아껴준다 ㅎㅎㅎ)
(이 대목에 오면 이모는 하느님의 사랑을 모르는 내가 안타깝겠다)
이쯤에서 마무리 해야겠다.
상인으로 산다는 건.
한 세상을 똑같이 살되,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산 경험을 하면서,
깊어지고 넓어지는 길을 걷는 것이라는거.
나보다 나은 사람 앞이든 못한 사람 앞이든 간에
자신을 낮추는 것이라는 것을 명심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