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도 없이 막연한 기다림에 슬픔이 있다.
속절없이 울어대는 마음의 속앓이에 남모를 사연이 있어 애가 탄다. 창자가 끊어지는 듯이 숨죽여 우는 것에 슬픔이 인다. 그래서 다시 골똘히 생각하여 나를 되새겨보게 된다.
나 자신은 무엇 때문에 아직도 이러한 상념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자책이 드는 것이었다. 살아오며 하나, 둘 흘러가는 죽음에 뜻 모를 상실을 느꼈으나, 살아 있는 이를 그리며 기다리는 것 만큼 사무치는 슬픔이 또 어디 있을까.
슬픔은 되려 아는 것이다. 슬픔을 안다는 것은 무서운 진실의 늪에서 자기 자신과 마주하였다는 것일 테지...
그래서 지독한 자기연민과 함께 스스로에 대한 증오심마저 이는 것이다. 나는 왜 그녀를 잡지 못할만치 부족하였나 나는 왜 그 정도밖에 되지 못하였는가
그 정도 밖에 안되었는가
어쩌면,
이는 내 마음 속에 내재되어 있던 오해된 즐거움인지도 모르겠다.
(브라우닝)
시름에 젖어 애꿎게 나를 탓하던 시절과
그녀에게 잘보이려 애쓰던 노력까지
결국에는 어둡고 검질긴 거리거리를 헤메이며 돌 한덩이, 나뭇잎 한조각에 크게 들썩이고 철렁대던 시절이
그토록 아련하게 그리워질 수가 없는 것이다.
우습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