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 어려서부터 "너는 이담에 커서 뭐가 되고 싶니?"라는 질문을 수없이 받으며 자라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는 보다 구체적으로 "뭘 전공할 건지는 생각해 봤니?"라는 질문을 받으며 커가는 우리들. 나이를 꽤나 먹었는지, 이제 나는 거꾸로 많은 후배, 동생들로부터 어떻게 진로를 정하게 되셨나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게 되었다.
'진로를 정한다'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답하는 것으로 나는 언제나 그에 대한 대답을 시작한다. 나이 열일곱, 열여덟, 혹은 스물둘이 된들, 감히 앞날의 진로를 결정할 방법은 없다는 것이 내 주장이다. 직업을 택하고 평생 살아갈 방향을 정한다는 것은 인터넷에서 업종을 알아보고, 적성검사로 내 취향을 판별하는 등의 자료 정리로 결론이 나오듯 단순한 일이 아니기에... 더구나 아직 사회 경험이 없고, 이제 간신히 '어린이' 딱찌를 떼어낸 청소년들은 아직 본인이 누구인가에 대해 깊이 사려해볼 기회조차도 갖지 못한 경우가 허다할텐데, 열몇살만 되면 이미 장래의 갈 길을 결정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게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나는 못마땅하다.
늦둥이여서일까, 나는 삼십살이 되어가도록 내가 무엇을 하고자하는지 알지 못했었다. 아무런 설정된 힌트도 암시도 없이, 단지, 내가 즐거워하는 분야를 줄창 이리저리 시도하는 것을 그치지 않고 있었을 뿐. 피아노도 치고, 지휘 렛슨도 하고, fashion 학원도 다니고, 음악 잡지에 글을 쓰며, 건축과 강의를 듣고, 인테리어 디자인 견습생도 하고, 사진작가 조수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그러면서 합창단 반주자와 가게 점원, 식당 웨이트리스를 하는 것으로 생활비를 벌어 생활했었다. 열이면 열, 주변 사람 모두가 다 답답해하며, "한 우물을 파야..." 라는 충고를 귀가 아프도록 해줬지만, 나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좋아하는 이 모든 것들을 포기하고 딱 하나만을 내 것으로 정해 일평생 그것을 하며 산다는 생각을 할래야 할 수가 없었다. 웨이트리스를 하면서도 틈만 나면 부엌에 들어가 chef를 졸라 요리를 배우며 요리법 공책을 그득히 채워가기도 했고, 옷 가게 점원으로 일하면서 가게 디스플레이를 밤새 뒤엎어버림으로써 이틑날 매상이 세 배로 뛰게 만들어 매니져를 깜짝 놀라게 했던 일들이 그 당시에는 맹랑하고 부당한 것 같이 보이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는 나의 열망에 부합한 행동이었음을 나 혼자만큼은 이해할 수 있었다.
멋모르는 아이처럼 여러 우물을 들쑤시며 젊은 시절을 소위 '낭비'한 내 앞날의 진로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절로 형태가 잡혀가고 있었던 것 같다. 예원 시절 때부터 음악과 미술을 그 어느 것도 선호하지 못해 둘 다 붙잡고 있었던 나,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탓에 사람들을 다양하게 만나 알고 사회적으로 활발하게 지내는 것을 소원했던 나, 봉건적 집안 분위기 속에 '입 다물고, 무릎 꿇고'가 몸에 배이도록 자란 나의 발표력과 자신감의 부족을 벗어나기 위해 극작가이신 오혜령 선생님을 본보기 삼아 열렬히 글 쓰기와 똑부러지게 말하기를 연습했던 나... 어찌 보면 나의 욕망들은 일제히 나의 컴플렉스를 벗어버리고 건강해지기 위한 한 줄기의 도전으로 해석된다. 아뭏든, 나의 다양한 관심사들을 그 어느 것도 포기하기 않고 꾸준히 추구하고 있었을 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진로는 서서히 스스로 그 형태를 발견해간 것 같다. 조금씩 그 폭이 좁아지면서, 내 관심사들이 종합적으로 활용되는 분야로 집중되어진 것은 열몇살 인영이의 위험천만한 결정이 아니라 세월 따라 절로 생겨진 길이었기에 가장 안전하고 확실했다고 생각된다.
길이란 어느 날 갑자기 아스팔트를 깔아놓는다고 길 구실을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자주 드나드는 발길이 있을 때, 모르는 사이에 절로 트이는 게 길이 아니던가! 나는 내 아들에게도 종종 말해준다. 지금은 그저 열심히 이것저것 시도해보며 즐기라고. 그러다보면, 본인이 뭘 잘 하는지, 뭘 좋아하는지 깨닫게 되고, 그게 자신의 진로를 발견하게 되는 바른 방법이라고... 나는 그것을 능동적인게 아니라, 다분히 수동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능동적 수동의 과정이라고 본다.
앞날의 진로를 결정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있는 청소년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진로는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되어야 한다. 그릇된 욕망과 관심으로 섣불리 진로를 결정하는 것은 본인의 앞날의 행불행을 좌우하는 두려운 일임을 자각하길 바란다. 섣불리, 성급히 생각지 말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차곡차곡 깨달아가는 것만이 가장 완전한 진로 발견이라고 믿는다.
또한, 빨리 성공하고자 하는 성급한 마음에 갈 길을 서두르는 후배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인생에 있어서 낭비란 없다고 본다. 진심으로, 나는 시간을 낭비하기란 쉽지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웨이트리스를 했을 때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자존심 상하는 일들을 겪어가며 고생한다고 여겼었지만, 이제와 돌이켜보면, 내 기분을 접어두고 웃는 얼굴로 누구한테라도 상냥하고 활달하게 말해야 했던 연습은 낯가림이 심했던 나의 약점을 치유하고 프로듀서로서의 가장 중요한 특성의 하나인 communication skill을 개발시킨데 한 몫을 했다. 옷 가게에서 디스플레이를 한 것은 styling하는데 자부심을 갖게 해줬고, 건축과 인테리어 디자인을 공부한 것은 촬영 세트 디자인과 소품 준비에 눈썰미를 보태줬고, 피아니스트로서의 경험은 퍼포머로서의 내 client들을 이해하는 폭을 넓혀줬고, 그들의 음악적 특성을 파악해서 촬영 때 적절한 art direction으로 준비할 수 있게 해줬고, 지휘를 공부한 것은 나무와 숲을 함께 보는 능력을 길러줬고, 큰 프로덕션을 지휘할 때 필요한 통솔력을 개발해줬다. 하물며, 지나치게 엄한 가정환경 속에 자라면서 우울함 속에 긴 혼란기를 겪었던 것도, 전학했을 때의 힘겨웠던 적응기도, 일찍 세상을 떠나버린 첫사랑의 아픈 추억도 모두 한 인격체의 형성에 소중한 교훈인 인내와 사랑, 융통성과 challenge를 가르쳐준 나의 스승인 셈이기에, 지금 본인이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 떨어져있다고 좌절될 때가 사실은 내공을 키우고있는 가장 소중한 시간일 수도 있다는 점을 인식한다면, 과연 '성공'의 길을 성급히 달릴 이유가 있는 것일까? 아니, 서둘러 달리면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게는 되는 것일까? 한번쯤은 의문해보길 권하고 싶다.
좋은 경험은 물론, 인생의 나쁜 경험들조차도 유익할진대, 무엇이 두려운가? 단 한가지,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이 되어갈 것인지에 대한 지극한 관심만 잃지 않고 꾸준히 걷는다면, 길은 어느새 탄탄하게 펼쳐지게끔 되어있는 게 자연적 이치라고 나는 감히 말한다.
가족들을 포함한 나의 주변인들은 아직도 안정되지 못한 생활을 하는 나를 바라보며 간혹 염려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개인적 관점의 차이일 뿐이라고 나는 말한다. 쌩쌩 달리는 고속도로를 피해 천천히 골목길을 누비며 걸어온 늦둥이인 내가 어쩌면 나를 염려해주는 그들보다 더 행복한 길을 걸어왔는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