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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해피엔딩

이영주 |2007.08.24 02:04
조회 31 |추천 0
죽어도 해피 엔딩 감독 강경훈 출연 예지원(지원), 임원희(지원의 매니저 두찬) 개봉 2007 한국, 94분 평점

살인이 웃길 수도 있다는 걸 알려 준 두 번째 영화

 

영화 못 본 한이라도 풀려는 것인가, 주말까지 합치면 이번 주만 세 편째 영화를 본다.

뭐, 사실 한풀이는 아니고 이번 주에 영화 관련 글을 써야 하는데 별 달리 쓸만한 영화는 없고 어찌됐든 이번 주 안에는 어떤 영화로 할지 결판을 내야겠고, 거기다 그나마 꽤 보암직한 영화들이 눈에 띄고 해서 이래저래 무리하는 중이다.

은 여성 관련 매체에 글을 써야 하니 연애와 결혼이 소재인 이 영화가 괜찮지 않을까 해서 선택했으나 결과는 별로였고, 은 잘 만든 스릴러영화라는 세간의 평에 혹해서 보았고 그래서 꽤 흡족했으나 그 매체에 어울리는 글을 쓰기엔 별로 맞지 않는 글감 같아 대략 난감이었다. 은 나와 동갑내기 배우이자 한때 열광했던 올드미스 최미자 예지원이 주연이기에 선택한 영화였다. 이 영화마저도 아니면 어쩌지? 비장한 각오로 극장에 들어섰다.

 

참나... 비장이라니... 이 영화와 비장이 어디 어울리는 단어인가. "3분에 한 번씩 웃겨드립니다"라는 이 영화 홍보 문구가 보여주듯 이 영화는 심각 내지 비장 따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웃기려고 작정한 코미디영화다.

크리스마스 이브. 칸느영화제 여우주연상이 확실해 보이는 배우 예지원의 집에 남자들이 떼거지로 찾아든다. 열나 고급 외제차를 끌고 다니는 재미교포,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가 걸쭉한 그의 건달생활을 이야기해주는 조폭 형님, 젠틀해보이고 유식해보이려고 무진장 애쓰는 대학강사, 체구도 왜소한 데다가 성격마저 소심하기 짝이 없는 영화감독. 난데 없이 지원의 집에 들이닥친 그들의 목적은 단 하나. 최고의 여배우 예지원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

그러나 그놈들의 목적과는 하등 상관 없이 예지원의 의도와는 전혀 무관하게, 예지원의 집은 무시무시한 살인의 장소로 탈바꿈하고 예지원과 그의 매니지 임실장은 시체 수습에 여념이 없다.

거기다 크리스마스 대목을 맞아 산타클로스 분장을 하고 부잣집 털기에 여념이 없는 좀도둑과 그 도둑을 잡기 위해 잠복 중인 형사들, 조폭 형님의 똘마니들까지 예지원의 집을 무대삼아 종횡무진 살인의 향연에 동참하고 불청객이지만 방송국과 동료배우, 지인들까지 떼거지로 살인파티에 참여한다.

여기까지는 이미 예고편과 영화소개 프로그램에서 귀가 질리고 눈이 멀도록 소개한 내용이다.

그런데 그렇게 귀가 닳고 눈이 닳도록 소개한 예고편이 전부일지도 모르는 이 영화, 나름 재미있다. 그만큼 이 영화는 각각의 상황과 상황이 아귀 딱 맞게 떨어지면서 웃음을 유발하는 나름 탄탄한 각본을 지닌 코미디란 얘기다. 원작인 를 보지는 못해서 원작과의 비교는 불가능하지만, 꽤 잘 만든 코미디영화 웃기는 영화임엔 틀림없어 보인다.

 

이 영화를 보면서 대다수의 관객이 아마도 을 떠올렸을 것이다. 심지어 같은 감독이 만들었나, 하는 의구심까지 일 정도였다. 여주인공이 살인하는 영화, 살인하는 과정이 코믹한 영화, 살인한 주인공이 절대 처벌받지 않고 해피하게 엔딩하는 영화.

물론 두 영화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이 언어의 유희로 살인이라는 살벌한 상황을 코미디로 이끌었다면(이 영화의 숱한 명대사들을 떠올려 보라) 은 상황의 유희로 코미디를 만든다(이 영화는 명장면은 있어도 명대사는 없다 ㅋ). 언어의 코미디가 아니라 몸개그 분비물개그 토사물개그를 하는 것이다. 같은 핏줄 영화를 찾자면 나 정도가 있을 것이다. 한 마디로 B급개그를 일삼는다.

그러나 겉으로는 훨씬 더 고상하고 품격 있어 보이는 언어 코미디보다 몸개그 화장실개그로 만드는 코미디영화 은 훨씬 심각하다. 재미교포, 조폭, 지식인, 감독, 형사 등 일군의 등장인물들은 과장되게 그들의 가식을 드러내고 그들이 하나하나 죽어갈 때마다 그들의 가식도 죽어나간다. 무게를 한참 뺐는데도 나름 무게가 있다. 일종의 블랙코미디다.

 

생각해 보니 우리나라에 이런 류의 코미디영화는 없었던 것 같다. 화장실 유머를 그리 즐기지 못하는 비위가 약한 관객이어서 만큼 신나게 웃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에 이런 영화가 나온 건 참 잘된 일 같다.

끝으로 예지원이라는 여배우에 대한 기대는 여전히 진행 중일 수밖에 없다는 게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남는 아쉬움이기도 하고, 또 하나의 성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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