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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장동식 |2007.08.24 16:33
조회 452 |추천 0

의문제기

이 고전문학으로서 사람들에게 많이 읽혀지는 소설이라는 것을 알고 이 책을 읽게 되었다. 하지만, 나의 문학적인 지식이 부족해서 그런지 읽는 내내,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 이유는 내가 소설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냥 보기에는 단순한 일탈정도의 이야기며 내가 느끼기에는 모든 인간들의 행동을 가식으로 보는 것 같은 부정적인 시각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에, 내가 생각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관점에서의 을 알아보고, 이 작품이 고전작품으로 널리 읽혀지고 유명한 여러 가지 측면에서의 이유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작품이라는 것은 그 자체에도 가치와 의의가 있지만, 작가와의 관계에 있어서의 작품, 시대적인 배경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작품도 중요하다고 배웠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논의를 해보겠다.

줄거리


주인공 홀든 콜필드는 저조한 성적으로 학교에서 퇴학당한다. 그는 크리스마스때 집에 돌아가기로 되어있었으나 룸메이트와 싸운 후 학교에서 크리스마스때까지 머무르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나간 후에 홀든은 역까지 걸어가서 기차를 타고 뉴욕으로 떠나는데 기차에서 같은 학교에 다니는 어니스트 모로우의 매우 매력적인 어머니를 만나기도 한다. 홀든은 뉴욕에 가서 아주 허름한 호텔에 묵게 되는데, 그 곳 나이트 클럽에 가서 시애틀에서 온 촌뜨기 같은 여자들과 춤을 춘다. 또 그의 형이 자주 가던 클럽인 어니클럽에 가서 술을 마신다

그리고 나서 호텔로 돌아가서 앨리베이터맨인 모리스에게 소개받은 창녀를 부르기도 하고 친구 샐리 헤이즈에게 연락을 한다. 그 와중에 두 명의 수녀와 대화를 나누며 괜히 그녀들의 인생에 대해서 생각해 보다가 괜스레 우울해지게 된다. 샐리를 만나고 또 다른 친구 카알 루스를 만나지만 홀든의 말은 다 무시한 체 자기 할말만 하다가 바쁘다며 그냥 가버린다.

자신이 사랑하는 어린 여동생인 피비를 만나기 위해서 집으로 가서, 피비를 깨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인사를 하고 자신이 서부로 갈 것이라는 계획을 피비에게 말한다. 그리고 피비에게 돈을 빌리기까지 한다.

서부에 가서 자신이 생활할 모습을 상상하기 시작하는 홀든 콜필드는 갑자기 다시 피비가 보고  싶어져서 편지지를 산 다음에 교무실에 가서 피비에게 편지를 전해주라고 부탁한 다음에 약속장소인 박물관 앞에서 기다렸다. 박물관에서 꼬마들에게 미라에 관해 설명해주며 시간을 보내다가 약속시간이 되자 박물관의 입구로 나왔다. 그런데 약속시간이 되자 피비는 커다란 여행가방을 들고 나타나서는 홀든을 따라가겠다고 고집을 피워 댔다. 그래서 피비와 말씨름을 한 다음에 서로 떨어져서 동물원에 가서 피비에게 회전목마를 태워주었는데 그러자 피비는 화가 풀렸는지 홀든에게 입맞춤도 해주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비가 왔는데 피비는 그때 홀든의 주머니에서 그의 빨간 사냥모자를 꺼내주어 그의 머리에 씌워주고 다시 회전목마를 타러 간다.

                           

                                본론1

1. 은둔의 작가 샐린저

샐린저는 오늘날 토머스 핀천과 더불어 가장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진 현대작가 중 한사람이다. 1965년 이후 사회로부터 떠나 운둔을 시작한 샐린저는 이후 한번도 공식석상에 모습을 나타낸 적이 없으며, 극소수의 측근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와도 만나거나 교류한 적이 없어서 그의 근영이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더구나 지난 40여 년 동안 절필한 채,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인세를

지급할 때를 제외하고는 그의 출판사조차도 이제는 그와 연락하기 어렵게 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뉴햄프셔 주 코니쉬에서 살고 있으리라는 추측외에, 그의 근황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샐린저가 원래부터 침묵과 은둔을 택한 것은 아니었다. 초기에 그는 다른 작가 지망생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문예지에 단편원고를 투고하고 애타게 결과를 기다렸으며, 파격적인 내용으로 인해 의 출판섭외 또한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당시만 해도 그는 뉴 햄프셔 주의 클레어먼트 고등학교에서 발행하는 지의 통신원 셜리블레이니의 요청에 응하기도 했다. 그러나 약속한 날짜에 자신의 인터뷰가 나오지 않고 나중에 편집 기획으로 게재되자 샐린저는 화가 나서 다시는 그 어떤 인터뷰에도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또 이 출간되었을 때, 뒤표지를 가득채운 자신의 사진에 상당히 부담스러워했으며 사진을 빼달라고 부탁해 결국 3쇄부터는 출판사도 사진을 뺄 수밖에 없었다. 또 원래 극작가 지망생이었던 샐린저는 희곡도 썼고 영화에도 관심이 많았지만, 자신의 작품을 크게 왜곡한 영화를 본 다음부터는 영화를 경원하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상업주의와 가짜가 횡행하는 현실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점차 사회로부터 멀어져가기 시작했다. 모든 형태의 공적 모임이나 사회로부터 물러난 그는 심지어 1954년부터는 자신의 작품이 작품집에 수록되는 것조차도 금지시켰다.

에서 샐린저는 홀든 콜필드의 입을 빌어, “정말로 내가 감동하는 책은 말이야. 다 읽고 난 뒤에 그걸 쓴 작가가 친구가 되어, 언제라도 전화를 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 책이란다. 하지만 그런 기분을 주는 책은 좀처럼 없지.” 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그 자신은 그 어느 독자의 접근도 철처히 차단하고 있는 패러독스를 보여주고 있다.

 

2. 과 시대적 배경

미국의 1950년대는 흔히 '정치적 보수주의, 경제적 호황, 그리고 사회적 순응'의 시대로 기억된다. 제 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인들은 평화와 안정을 선택했고 1952년에 '평화와 번영'을 약속한 공화당의 아이젠하워를 대통령으로 선출했으며, 조셉 매카시 상원의원이 주도한 좌파색출 마녀사냥인 매카시즘의 횡포에 순응했다. 매카시 위원은 정치가들이나 학자들뿐 아니라, 연예계 인사들에도 공산주의자들이 숨어서 체제전복을 꿈꾸고 있다고 선언했으며, 이윽고 대대적인 청문회와 조사가 시작되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로젠버그 사건이나 히스/체임버스 사건이 일어난 것도 바로 이때였고, 헐리우드 인사들의 소환과 국회증언으로 영화계가 양분되고 찰리 채플린이 공산주의자로 몰려 다시 영국으로 돌아간 것도 바로 이때였다. 이 수치스러운 시기에 안정과 평화를 바라던 미국인들은 침묵했고, 시인 로버트 로월은 당시를 "진정제를 맞은 50년대"라고 불렀다. 그럼에도 당시 미국은 전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제 2차 세계대전 후 유럽의 주요도시들의 모두 파괴되었고, 유럽의 경제가 전쟁으로 인해 극도로 피폐해 있었을 때, 오직 미국만이 승전국으로서, 그리고 본토에서 전쟁을 치르지 않은 나라로서, 또 군수산업을 통해 경제공황으로부터 벗어난 나라로서 경제적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 그러한 환경속에서 미국인들은 순응과 번영의 시대, 그리고 보수주의 시대를 살고 있었다.

그러나 평온한 외관과는 달리, 1950년대의 그러한 1)모노크롬적 분위기를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그래서 고백파 시인들은 내면속의 문제점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샐린저의 은 바로 그러한 시대에 정면적으로 도전했던 신선하고 도발적인 작품이었으며, 1950년대 초반, 물질적 풍요의 시대에 정신적 빈곤을 고발한 반문화의 원조가 되었다. 주인공 홀든 콜필드가 프렙스쿨(아이비리그에 진학하기 위해 부자들의 자녀들이다니는 사립 고등학교)에 낙제해서 자랑스럽게 학교를 떠나는 그러한 설정은 그런 맥락에서 위선으로 위장한 점잖은 사회에 대한 저항의 상징처럼 보인다.

 

3. 과 ‘샐린저 현상’

"1920년대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를 제외하고는 그 어느 작가도 샐린저만큼 대중적, 비평적 관심을 끌었던 작가는 없었다."라고 시카고대학의 제임스 밀러교수는 미네소타 작가 시리즈 중 하나인 에서 말하고 있다. 과연 샐린저는 1961년 9월 15일자 지의 표지로 선정되었으며, 당시 그의 인기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이었다. 당시 대학생들은 누구나 샐린저의 을 들고 다녔으며, 자신들을 소설 속 주인공 홀든 콜필드와 동일시 했다. 소위 '샐린저 현상'이 전 세계를 휩쓸게 된 것이다.

1)흑색 또는 그 밖의 한 색만 사용해서 표현하는 단색화나 일러스트레이션.

그렇다면 과여 무엇이 을 그토록 유명하게 만들었으며, 그처럼 확고하게 세계명작의 반열에 올려놓았는가? 요즘 다시 읽어보면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는 젊은이의 반항을 다룬 소설인데, 왜 홀든 콜필드는 그처럼 당시 젊은이들에게 강력한 호소력으로 파고들었던 것일까?

의 인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1950년대를 전후한 미국사회의 분위기를 알아야만 한다. 1930년대 좌파 진보주의 시대를 겪은 미국사회는 제 2차세계대전을 지나 전후사회로 접어든 1940년대 후반부터는 차츰 우파 보수주의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몸을 사렸고, 작가들은 비정치적인 작품들을 썼으며, 사회는 점잖음고 안정을 내세워 보수적이 태도를 취했다.

은 바로 그러한 시대적 분위기에 정면 도전하는 도발적인 작품이었다. 학교라는 제도로 표상되는 보수적 기성세대의 위선과 허위를 고발하며, 분연히 학교를 떠나 뉴욕의 거리를 방황하는 홀든 콜필들의 체제 저항적 태도는 당시 억눌려있던 젊은이들의 가슴에 반항의 불을 지피게 되었다. 홀든 콜필들의 거칠 것 없는 언사, 당시로서는 사회적 타부였던 적나라한 욕설, 그리고 시원하게만 느껴지는 그의 저항적 태도는 점잖음을 추구하던 미국문단에도 충격적이었지만, 허위와 기만 속에 안정을 추구하며 살고 있었던 기성세대에도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아직은 아무런 체제 저항이 시작되기도 전인 1951년에 발표되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곧 샐린저가 얼마나 시대를 앞서가는 혜안의 작가였는 가를 보여준다. 이 기념비적 소설은 이후 시작된 일련의 체제저항운동의 시발점이자 기폭제가 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문학사적 의의를 갖는다고 알려져 있다. 예컨대 은 1950년대 중반과 후반에 일어난 반체제 움직임인 미국의 '1)비트운동'과 전후 영국의 진보주의 그룹인 '2)성난 젊은이들'의 시효가 되었으며, 1960년대를 풍미했던 히피문화와 젊은이들의 반문화의 원조가 되었다.

샐린저의 홀든 콜필드는 1950년 대 후반, 비트문화의 영향으로 체제의 상징인 대학을 중퇴한 후, 낡은 자동차에 몸을 싣고 대륙횡단 여행을 떠났거나 유럽으로 갔던 모든 미국 젊은이들의 우상이자 원형이었다. 또 홀든 콜필드는 1950년대 스크린에서 제임스 딘이 연기했던 반항아들의 원형이기도 했다. 예컨대 학교와 가정이라는 보수적 체제에 저항하는 젊은이들을 그린 제임스 딘의 영화 은 마치 을 영화환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비록 샐린저가 비트운동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이 비트운동의 모태가 되었다는 사실만큼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2)1950년대 미국의 사회·문학 운동. 프란시스코의 노스비치, 캘리포니아의 베니스 웨스트, 뉴욕 시의 그리니치빌리지 등지의 보헤미아 예술가 그룹들이 그 중심이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관습적이고 '획일적인' 사회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한결같이 허름한 옷과 태도, 그리고 재즈 음악가들에게서 빌려온 '히피' 어휘를 받아들였다. 일반적으로 정치와 사회적 문제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으며 마약, 재즈, 섹스, 선불교(禪佛敎)의 수양 등으로 생기는 고도의 감각적 의식을 통한 개인적인 해방·정화·계시를 주창했다.

3)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뒤 영국사회에 일종의 <사양(斜陽)> 경향이 나타난 1950년대 전반에 연극과 소설 분야에서, 전후에도 구태의연한 영국의 사회체제를 비판하고 그러한 사회체제 속에서 고뇌에 찬 삶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생활을 풍자적으로 묘사한 작품이 나왔다

4. 주인공 홀든 콜린저의 불화의 원인과 증상

 

홀든이 외부로부터 격리되는 모습은 어떤 특정한 부분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속한 사회 구석구석에서 발견된다. 학교에서부터 시작해 뉴욕 곳곳에서 발견되는 외부사회의 얼룩진 모습은 홀든이 더욱 외부로터 격리되고 소외되는 것을 부채질 한다. 샐린저는 홀든이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 내부에 있는 순수를 향한 개인의 지향을 잘 보여준다. 홀든의 민감한 감수성과 제도권 사회의 허위의식은 그를 학교라는 틀에 짜여진 공간을 박차고 나오게 한다. 강하면서도 냉소적인 말투를 띈 그의 말투는 전형적인 10대 청소년들의 반항의식을 잘 보여준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그의 말투는 사춘기 청소년의 자기 보호를 나타낸다.

홀든이 제일 처음 탈출하게 되는 현실은 바로 학교라는 곳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는 학교의 개념은 지식을 전달하는 교육기관이지만 샐린저가 홀든을 통해 그리고 있는 학교는 더 이상의 교육기관이 아닌 위선과 거짓말의 상징일 뿐이다.

이런 학교의 모습은 펜시학교 이전에 다니던 앨크턴 힐 학교를 혐오감과 위선이 있는 거짓 장소로 잘 묘사된다.


내가 앨크런 힐스를 그만둔 가장 큰 이유는 그곳에는 엉터리 같은 놈들만 우글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 뿐이다. 한 예를 들면 교장 하스는 월요일이 되어 학부모들이 차를 끌고 학교에 찾아오면 교장은 악수를 하며 돌아다녔다. 그는 끔찍이 상냥하게 굴었다. … 어떤 학생의 어머니가 뚱뚱하거나 못생겼으면, 혹은 학생의 아버지가 어깨가 넓은 구식양복을 걸쳤거나 남루하고 얼룩진 구두를 신고 있으면, 그 교장은 간단히 악수만 하고는 억지웃음을 던지며 그냥 지나쳤다.

이런 묘사와는 달리 홀든은 학교 동급생인 애클리를 비록 ‘여드름이 더덕더덕나있고 이빨이 더러운 아이라는’ 이유로 모든 기숙사 학생들로부터 외면 당하지만, 홀든은 그를 싫어하는 듯 하나 마음속은 그렇지 않고 그를 극장에 데려가기도 한다. 다른 이들로부터 사랑과 이해를 원했던 홀든은 획일주의적 사고방식에 젖어 있는 모든 사람들의 사고방식에는 비판적이나 모든 사람들이 외면하는 데 관심을 보이는 따뜻한 마음은 가진 소년임이 드러난다.

홀든은 자신의 자아를 찾기 위한 여정의 상징물로 간주되는 빨간 사냥모자를 쓰고 기숙사를 떠난다. 학교를 뛰쳐나와 방랑하면서 본 사흘동안의 뉴욕의 모습을 통해 홀든은 학교에서 자신이 혐오하고 사기꾼으로 불러왔던 여러 가지 모습들을 그곳에서 발견하게 된다. 그가 방랑한 뉴욕의 모습은 위선, 무시, 무관심, 도덕적 타락, 변태등의 모든 거짓과 허위를 대표하는 장소로서의 역할을 한다. 뉴욕에서 홀든은 호텔방을 구하고 술을 마시기도 하며 매춘부를 불렀다가 그녀와 같은 패거리에게 맞는 변을 당하기도 한다. 그가 겪게 되는 위선과 허위로 가득찬 바깥세계의 모습은 오히려 그를 더욱 소외시킬뿐이다.

그강 칭한 포우니(phony)는 사전적으로는 ‘가짜, 엉터리’등을 의미하지만 이는 홀든만의 독특한 성인계의 비판으로 볼 수 있다. 포니란 단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어린이들이 행동하는 것처럼 순수하고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기교를 부리는 것을 의미한다. 즉 포우니란 이중성으로 가득찬 세계에서 갈등을 통해 생겨나는 것이다. 홀든이 역겨워하는 포우니들은 샐린저가 현대사회를 판단한 기준으로 볼 수 있다.

작품속의 홀든은 순수를 찾기 위해 많은 시도를 하지만 그의 순수탐색을 위한 시도는 오히려 사람들로부터 그를 소외시킬 뿐이다. 실제로 홀든은 다른 이들과의 대화를 시도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지만 그가 노력하는 다른 이들과의 대화를 통한 상호교감의 실패는 더욱 더 홀든을 성인세계로부터 격리시킬 뿐이다. 외부세계와의 대화를 시도하기 위해 스펜서 선생을 찾아가는 모습과 그의 여자친구 제인 갤러허에게 전화를 걸지만 걸려고 하다가 번버히 그만드는 장면, 수첩에 적혀 있는 단지 3명 뿐인 이름, 그리고 일반정적으로 자기 말만하는 루스에게도 더 이야기 하자고 사정하나 그가 그것을 거부하고 떠나 버리는 모습 등에서 외부세계와의 계속되는 홀든의 격리를 볼 수 있다.

홀든이 외부와 격리된 채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드는 것으로 상정된 것은 작품의 처음에 등장하는 이다. 형 디비의 단편제목이기도 한 는 ‘주인공이 자신의 돈으로 산 금붕어이기에’ 그것을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찰즈(Charles) 해석에 의하면 ‘만일 네가 알고 싶다면’, ‘만일 정말로 네가 알고 싶다면’이라는 반복되는 어구를 통해 사실은 홀든이 세상 속에서 자신도 다른 이들에게 말하고 싶고 듣고 싶어하는 다른 이들과의 의사소통을 원하고 있다고 말한다.

스펜서 선생이 학교를 떠나는 학생에게 한 인사말 ‘행운을 빈다’는 소리에 가식을 느낀 홀든은 그의 별 뜻 없는 인사에 분노를 느낀다.


선생(스펜서)은 나를 향해 뭐라고 소리쳤지만 정확하게 듣지 못했다. 분명 “행운을 빈다.”라고 소리쳤을 것이다. 제발 그런 말이 아니였기를 바란다. 맹세코 그런 말이 아니였기를 바란다. 나라면 누구에게도 “행운을 빈다.”라는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건 정말 끔찍한 소리다.

찰즈는 홀든이 의사소통을 하는데 참기 가장 어려운 점은 바로 가식에 대한 그의 절대적 증오심이라고 말한다. 홀든이 느끼고 있는 모습에서도 볼 수 있듯이 홀든은 인간과 인간사이에서 존재하는 대화의 진실성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가식과 허위의식에 가득 찬 모습에 ‘거짓’을 느낀다. 그는 자신의 개인적 관계뿐 아니라 ‘거짓’책, ‘거짓’음악, ‘거짓’영화, ‘거짓’ 연극등의 예술분야에서도 위선과 ‘거짓’을 발견한다. 홀든은 헐리우드로 가서 순수작가에게 돈을 받고 글을 파는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 전업한 형 디비를 비난하며 이를 통해 우리는 홀든의 ‘거짓’에 대한 증오심을 잘 읽을 수 있다.


영화는 형을 망칠 것이다. 이건 거짓말이 아니다.

홀든의 우상이기도 했던 형 디비의 시나리오 작가전업은 홀든이 품고 있던 형에 대한 환상이 한 순간에 무너지게 되는 계기가 된다. 영화에 대해 비난을 하는 홀든을 통해 영화가 현실을 왜곡 조장하는 것을 대표하며 이를 보는 관객 역시 타락된 존재로 그리고 있다.

16세 홀든은 그의 여정 중 그 누구보다도 사람들과의 대화를 원하며 사랑을 갈구한다. 스펜서 선생과의 대화 중에도 센추럴파크의 얼어있는 연못과 그 속의 갈 곳 없는 오리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홀든의 모습은 기성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단적인 그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회의 허위의식과 사랑과 인간애의 부재에 대해 못마땅해하고 그 속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며 융합하지 못하는 홀든이 보여주는 것은 전형적인 십대의 반항심리이며, 자신이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사랑과 인간애가 넘치는 도덕적 가치가 높이 평가되는 세상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사회의 조직과 체계 속에서 살등하면서도 마음속에 꿈꾸는 단 하나으 lth망은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자 하는 희망과 서쪽지방 먼 곳으로 가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없는 벙어리로 살고자 하는 바람이다. 서부로 가려는 그의 희망은 홀든이 파수꾼이 되고자 하는 바램이 결코 현실세계에서 쉽사를 수용될 수 없음을 나타내는 증거이다. 그리고 벙어리가 되고자 하는 것은 그가 이 세상과 대화를 하고 있지 못하는 증거로서 대화를 하고 싶다는 역설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5. 주인공 홀든 콜린저의 화해와 자기발견

포우니의 수용 외부세계와의 융합이나, 단절이냐에 직면한 프레니와 홀든이 작품에서 종종 보여주는 죽음과 혹은 기절은 샐린저 작품속에서 외부세계와의 불화와 갈등의 겪기 전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사회구성원들과의 상호교감에 실패한 홀든이 폐렴에 걸려 죽은 동생 엘리를 그리워하며 현기증을 느끼지만 여태껏 자신이 세상의 포니들에게 느낀 회의와 조소 어린 시각을 보내왔떤 것과는 달리 막상 정신적 죽음 상태에 도달한 그는 삶을 붙잡기 위해 이렇게 말한다.


"엘리, 나를 사라지게 하지마. 엘리, 나를 사라게 하지마. 엘리, 제발 나를 사라지게 하지마. 제발 엘리."


홀든이 추구하는 순수의 세계는 동생 피비를 통해 경험하고 그의 자아를 회복한 것처럼 여정의 종착지에 한층 더 가까이 다가서게 된다.  홀든의 자기발견을 위해 돕는 중요한 인물은 바로 그의 여동생 피비이다. 샐린저의 작품에서 주인공들이 겪는 방항과 갈등을 도와주는 해결방안의 하나로 아이들의 순수성이 제시된다. 샐린저 작품속에서 등장하는 아이들은 유일하게 자유를 소유하고 있는 존재다. 성인들의 눈에 어떤 문제점도 없이 비춰지는 그들이지만 샐린저는 개안의 과정을 겪고 있는, 혹은 겪은 아이들을 제시함으로써 세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어린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이들이 타인을 치료하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오빠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 다 싫다는 거야?" 그 애가 그런말을 했기 때문에 나는 더욱 더 우울했다. "아냐, 그건 아냐. 그렇게 말하지 마. 왜 그런 말을 하니" "좋아하지 않으니까 그렇지. 오빠는 어느 학교든 다 싫어해. 오빠가 싫어하는 것은 백만 가지는 될거야. 그냥 싫어하고 있어."


피비의 현실을 받아들이 모습이 이분법적 사고방식에서 떠나 이론적으로 통달했다기 보다는 현실을 바라보는 순수한 눈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치료하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고 말한다. 순수 외에 모든 것을 포니라는 이름으로 거부하고 서부세계로의 탈출을 꿈꾸게 되는 홀든과는 달리 자신이 속해 있는 현실을 무조건적으로 싫어하는 홀든의 시각에 허를 찌른다. 그녀는 세상을 혐오와 증오의 눈길로 바라보는 오빠를 도와주기 위해 때로는 설득하고 꾸짖기도 한다. 그녀는 오빠가 호밑밭의 파수꾼이 되려는 환상만을 꿈꾸지 않고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구원자의 역할을 한다. 가장 어리숙하고 순진할 것 같은 아이의 시각을 통해 세상의 기준에 짓눌려 있는 성인들이 또 다른 해결책을 아이들의 순수성을 통해 얻을 수 있음을 피비를 통해 보여준다.

홀든이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그의 동생 앨리의 모습 또한 순수의 모습으로 홀든에게 남아있다.


인간성도 제일 좋았다. 그는 누구에게도 화를 낸 적이 없었다. 동생은 참 착한 아이였다. 그애는 곧잘 웃었다. 저녁 식사 때면 어떤 일을 생각해내고는 어찌나 웃어대는지 한 번은 의자에서 굴러 떨어질 뻔한 적도 있었다.


사회와의 불화에서 여동생 피비를 통해 화해를 겪게되는 홀든은 긴 방황을 가족을 통해 끝내게 된다.

데이비스(Davis)는 '파수꾼'으로서의 소망을 가진 홀든이 호밀밭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호하려는 의지야 말로 이 전하려는 핵심 이미지라고 말한다. 홀든이 아이들의 추락을 막고자 하는 '절벽'이란 바로 아이들의 순수의 세계에서 추락하여 성인의 세계로 입문하는 가운데에 놓여 있는 것이다. 홀든의 그러한 의지는 변하는 것을 싫어하고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불변성을 추구하는 홀든에게 있어서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센추럴파크의 연못을 들른 뒤 다시 피비에게로 돌아가는 홀든의 여정은 외부세계를 조금씩 받아들이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파수꾼으로서의 순수만을 간직한 사람들을 바라는 그에게 있어 외부세계로 다시 발길을 되돌리는 것은 그가 적대시했던 외부세계와 화해하는 중요한 심리적 변화를 겪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어린시절부터 그에게 있어 손바닥처럼 훤한 센추럴파크에 도착한 그는 갑자기 일을 잃어 버린다. 그리고 공원은 '점점 어두워지고 유령이나 나올듯 무시무시'하게 된다. 겨우 찾게된 호수에서 그는 자신이 그토록 찾던 오리는 발견하지 못하고 벤치에 앉아 죽어버리는 상상을 하며 자신의 장례식을 머릿속에 그린다. 홀든은 현실세계를 차갑고 냉소적인 눈으로 보지만 그는 자신의 죽음을 상상한다.


피비가 목마를 탄 채 돌아가고 있는 것을 보자 나는 갑자기 행복을 느꼈다. 너무나 기분이 좋아서 큰 소리로 마구 외치고 싶었다. 왜 그랬는지 모른다. 여하튼 피비가 파란 외투를 입고 빙빙 돌고 있는 모습. 이건 너무나 멋있었다. 정말이다. 이건 정말 보여주고 싶다.


우리는 요양소에서 자신의 방황을 회고하는 모습을 통해 진정한 순수의 세계를 꿈꾸는 홀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자선구호활동을 펼치던 두 명의 수녀, 제인, 피비, 호밀밭의 파수꾼으로 상징되는 홀든이 꿈꾸는 불변성을 가진 순수의 세계는 마침내 홀든이 증오해 왔떤 모든 포니들을 그리워 하게 한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내가 여기에 등장시킨 사람들이 지금 내 곁에 없기 때문에 보고 싶다는 것뿐이다. 예컨대 스트래들레이터와 애클리마저 그립다. 그놈의 모리스 녀석마저도 그립다. 우스운 이야기다. 누구에게든 아무 말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말을 하면 모든 인간이 그리워지기 시작하니까.


자신의 여자친구와 관계를 가졌을 지도 모르는 스트래들레이터, 자신을 때렸떤 호텔의 벨보이, 모리스 등을 그리워하는 홀든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홀든이 여태껏 방황해 왔던 그 모든 모습들이 사회와의 화해와 자기발견을 위한 순례의 과정이었음을 알 수 있다. 자신의 외부세계에서 겪은 상처를 회고하는 모습에서 홀든은 '인간은 서로 사랑해야 한다'라는 간단한 진리를 깨닫고 있다. 거짓, 위선, 타락은 순수가 세상을 만들어 가기 위해 반드시 감싸안아야 할 부분이며, 이런 엉터리들을 감싸안아야 한다는 자각은 바로 호밀밭의 파수꾼으로 살아가고자 했던 홀든의 환상이 깨어진 증거로 볼 수 있다.

홀든은 그가 찾는 순수한 삶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제시받지는 않았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곳에 있는 가장과 허식의 가면을 꿰뚫으며 그것이 고통을 수반할지라도 계속해서 진지함, 순수함, 순결함,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찾아 그것을 정화시킨다. 홀든은 기존에 존재해있던 것이 안전하지만 그것이 '거짓'이 되는 길임을 이미 인식하고 있으며 그 속에 규격화 되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홀든은 그가 거부한 세상을 사랑과 그리움으로 포용하게 된다.

6.작품에 대한 독자들의 다른의견 - 비판과 옹호

 

호밀밭의 파수꾼은 비록 젊은 세대들의 경전이었고 베스트셀러였지만, 모두에게 환영받은 것은 아니었다. 보수주의자들은 이 책을 고등학교 도서관에서 없애자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고, 대학 강의실에서도 금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책에 반대하는 팸플릿에는 "이런 쓰레기가 추천도서로 우리들의 자녀들에게 읽히고 있다. 이런 것이 과연 공립학교에서 교사들이 추천할 수 있는 책이란 말인가?"라고 씌어있기도 했다. 오클라호마 주 털사의 한 고등학교 교사인 베아트리스 레빈은 국어시간에 호밀밭의 파수꾼을 추천했다가 구설수에 올랐으며, 휴스턴의 한 변호사는 강의실에서 호밀밭의 파수꾼을 다룬다는 이유로 자기 딸을 텍사스대학으로부터 빼내 다른 학교로 전학시키기도 했다. 또 켄터키 주 루이빌의 고교교사인 도널드 피니는 강의실에서 학생들과 같이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었다는 이유로 해직되기도 했다. 신문과 방송에서도 연일 호밀밭의 파수꾼을 비난하는 논쟁들이 있었고, 실제로 많은 고등학교 도서관에서 호밀밭의 파수꾼은 금서가 되기도 했다.

예컨대 1999년에 미국도서관 협회가 발표한 '50권의 위대한 금서' 목록에서 호밀밭의 파수꾼은 13위를 차지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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