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천주교는 이단인가? 정통인가? 카톨릭 입장에서 목사님의 글을 읽고,..

Charles Park |2007.09.02 06:27
조회 378 |추천 1

천주교는 이단인가? 정통인가? 를 읽고?

 

카톨릭은 분명 이단이다. 유대교에 대해서 그렇다. 그리고 루터교는 카톨릭에 반하여 루터로 부터 3단 으로 분열되어, 칼뱅, 요한 웨슬레이를 시작으로 현재 900단 이상으로 분열되어 있다고 하겠다. 본인은 50년동안 개신교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2007 4월, 카톨릭 교회에서 다시 견진성사를 받았다.

카톨릭은 유대교의 전통을 전수 받으면서 초대 지하 교회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개신교는 유대교 전통과 카톨릭전통을 전수 받으면서 지역에 따라 다시 새로운 교회 형태로 변모 되었으나 우리가 믿는 Yahweh 하느님은 근본 뿌리는 하나다. 이 야웨란 신의 이름은 원시유대교에서 부터 다른 여러 이름으로 불려졌고, 또한 예수라는 사나이를 신앙하는 카톨릭이나 개신교에서는 Yahweh, 즉 우리가 부르는 신의 이름은 한자(漢字)로 천주(天主)라 칭하고, 우리 한국 고유의 “하늘님”이란 언어는 카톨릭교회와, 일부 개신교에서는 “하느님”이라 부르고, 장로교를 중심한 합동, 예장 계열은 “하나님”이라고 부르는데 이말의 어원은 서북지방의 사투리다. 왜냐하면 개신교는 남한이 아닌 북한에서 먼저 시작 되었다. 이런 어원에 시작한 된 “하나님”이란, 말은 유일신 개념을 받아들이면서, 하나밖에 없다는 의미로 발전하여 “하나님”이라고 하게 되었다. 우리 표준 국어사전에 하나님을 찾으면, 개신교에서 명사로 쓰이는 “하느님”을, 이르는 말로 설명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이런 하느님의 명칭에 대한 설명을 한다면 글이 길어져 약술하기로 한다. 과거에는 이단이란 말은 믿는 방법이 다름을 지칭했으나, 오늘에는 이단에게도 구원이 더 있을수 있다 라고까지 믿음의 이해가 포괄적으로 달라졌다고 하겠다.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신 이후 각지에서 가시적인 교회가 없이 예수님을 추종하던 무리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면서 부터 예식이 발전해 왔다. 지역에 따라서 추종자들의 생각에 따라 형식과 제도가 달라질수 밖에 없는것이 문화가 아닌가?  20세기 가장 유명한 개신교 신학자 중에 한 사람인, 폴 틸리히라는 학자는, 문화는 종교며, 종교는 문화라고 했다. 이글을 쓰신분은 보수계열의 목사인것 같으신데, 보수란 무엇인지 잘모르고 계신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다시 부언하면, 형식면에서는 카톨릭이 가장 보수적인 교회가 아닌가? 미사(예배)를 볼때 떪?성체 성사를 하는것이 카톨릭교회다. 그러나 내적이며 정신적인 면에서는 외적이고 형식적인 개신개보다 카톨릭교회가 더 개방적이고 신앙의 지평이 더 넓게 열려 있음을 본인은 느끼고 있는 실정이다. 시대는 전진하고 발전하고 있는데, 아직도 루터나 칼뱅의 뒷다리를 잡고 정통 보수라고 운운하는 것은 정말 어불성설이라 아닐 할수 없다. 그리고 기독교 장로교 계통과 감리교 성서 학자들과 카톨릭 성서학자가 함께 성서를 공동번역을 한것이 왜 잘못인가? 야웨 하느님의 명칭을 한국 고유의 표준말 “하느님”이라고 씌였고 서북 사투리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았다고 불평을 한다면 당신의 교육 수준이 의심이 되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 가 하나님의 이름이 개똥이라 부른다고 해서 진리의 하느님이 별질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리고 당신의 글에 우리 기독교는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천주교는 하느님을 믿고 있다고 했다.. 하느님이 다르다고? 부끄러운 줄 알아야한다. 영어 에서는 Lord라고 다르게 부른다. 그러면 본래의 신의 속성이 달라진다는 것인가? 정말 답답하다. 카톨릭교회에서는 성모이신 마리아는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어머니로 공경하고 있다. 숭배와 공경은 다르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을 낳으신 분을 성모로 받들어 공경함은 당연한것이 아닌가? 마리아를 성모로 보지 않고 죄많은 보통 여자로 생각한다면 예수님은 죄인으로 생각해야 되겠는가?

성서란 무엇인가? 성서는 교회의 모든 가르침의 원천이며 믿는 이들의 양식이 아닌가?.

성서는 하느님의 영감을 받아서 기록된 책으로 교회만이 이를 보존하고 해석하고 전해 준다.

성서의 형성사를 살펴보면, 이스라엘인들은 살아 있는 전통과 기록된 문서 안에서 종교적 가치를 보존해 나가지 않았는가? 하느님의 계시는 원래 그분의 백성인 이스라엘인의 삶과 예배의 전통, 즉, 설화, 신화, 노래, 교훈 기도, 관습 등을 통헤 전해 졌으나 시간이 흐르고 문화가 발전함에 따라 글로 기록되고 해석이 첨가 됨으로써 내용이 더욱 심화되고 풍부해진것이 아닌가? 이것이 구약 성서다. 이와 같이 하느님의 말씀인 성서는 단 한번의 작업으로 완성된것이 아니라, 수세기에 걸쳐 새로운 체험들이 추가 되면서 형성된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예수 시대에도 마찬가지로, 예수와 제자들은 말로 메시지를 선포했으며, 공동체의 규모가 작고, 예수 행적의 목격자가 생존해 있으며, 예수의 재림과 세상의 종말이 멀지 않았다고 믿던 당시에는 구태여 기록을 남길 필요가 없엇다. 그러나 차츰 사도들과 목격 증인들이 줄어들고 종말을 새롭게 이해하게 되면서, 그리고 교회의 성장에 따라 외교 문화 및 이교도들과 대항하게 되면서 전해 받은 계시와 신앙을 기록해 둘 필요성이 대두 되었다. 이렇게 해서 문헌화된 단편들을 수집하여 70년경에 기록자 자신의 신앙 체험과 사상을 바탕으로 엮은것이 복음서 들이다. 한편 사도들이 지방 교회들에 메시지를 전하고 싱앙을 격려하며 문제들을 해결해주기 위해 쓴 편지들을 모든 것이 서간 성서이다. 카톨릭 성서는 구약 성서 46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이전에 있었던 하느님의 계시에 관한 것이다. 둘째 부분은 신약 성서 27권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이후에 있었던 하느님의 계시에 관한 것이다. 총 73권으로 개신교 성서 66보다 7권이 더 많다. 그이유는 종교 개혁 당시 루터가 자의적으로 제거했기 때문이다. 개신교는 39권의 구약 성서로 편집되었다. 성서느 공의회의 허락없이누구 한사람의 자의적으로 빼거나 더할 수 없는 문서가 아닌가?

교히는 구원의 보편적 성사로서 제2차 바디칸 공의회에서 교히헌장으로 발표되었다.

즉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 마치 성사와 같은 것이니, 교회는 하느님과의 일치의 표지(標識)이며, 도구(道具)이다. 본래 성사란 눈에보이는 예식의 힘으로 보이 않는 하느님의 은혜를 사람에게 전달하는 도구의 역활을 하는 것이다. 사실 교회는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사람에게 전달해 주는 도구인 동시에 또한 7성사를 보유하고 관리하는 신비의 그리스도 즉 그리스도의 신비체이기 때문에 신학자들은 교회를 기본 성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 구원이란 피조물 중에서 가장 귀하고 가장 핵심이 되는 인류전체를 하느님 안에 완성 및 완결 시키는 것을 가리킨다. 그래서 구원에 대한 편협된 생각을 버리고 자연과 초자연을 너무 갈라 놓는 생각을 지양하면 , 완성된 우주 만물의 개념이 필연적으로 따라온다. 여기에 바오로 사도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오래전에 택하신 사람들이 당신의 아들과 같은 모습을 가지지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깨서는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미리 정하신 사람들을 불러 주시고 부르신 사람들을 영광스럽게 해주었습니다.(로마 8:29-30). 바티칸 공회이후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간에 많은 대화의 모임과 합동 기도회를 가져, 신,구교간의 갈등을 극복하고 신,구교가 다 같이 쓸수 있는 “성서의 공동 번역”도 추진되어 한국에서는 1970년대 후반에 공동번역 성서가 번역 출판 되어 나왔지만, 개신교측이 “하나님”의 명칭을 고수하고 우리말 표준인 “하느님”을 범신론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반대하여 개신교회 성서공회가 발간한 공동번역 성서는 카톨릭에서만 사용하는 외다리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 모두가 무지와 아집의 결과라 하지않을수없다. 최근에 와서 신,구교의 일치운동의 성과로 카톨릭과 루터교파간의 의화(칭의)논쟁에 있어서 합의를 본 사실은 특기할만한 일이다. 1999년 10월 31일 아브르스크에서 두 교파간에 서명한 의화(Justification)문제의 공동 선언문을 공표함으로써 쌍방의 의화문제를 종식 시켰다. 의화논쟁이란, 인간은 예수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심과 함께 선행을 실천해야 구원 된다는 카톨릭의 전통적 교리와 신앙만으로 구원된다는 루터의 주장 사이에 빚어진 논쟁이다. 이 카톨리교 의화(義化)-개신교의 칭의(稱義)교리는 종교개혁 당시 두교회의 결별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이번 에 발표한 합의문에는 “의화와 구원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자유로운 선물로서 그는 선행을 실천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다만 선행속에서 반영된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사욕편정의 개념을 양쪽에서 조금씩 양쪽에서 다른 뜻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루터교에서는 “인간이 이기적 욕망, 즉 죄악으로” 알아 듯고 있는 반면에, 카톨릭에서는 죄악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으로 알아듣고 있다. 공동 합의문에는 인간은 세례를 통하여 죄를 모두 용서 받지만 그 후에도 계속 죄를 짓기 때문에 끊임없이 하느님께 용서를 빌어야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세례를 통하여 새로 태어난 인간은 하느님 앞에 내적으로 의인이 된다는 카톨릭의 교리와, 루터교의 교리인 신앙인은 하느님 앞에서는 완전히 의로운 존재 이지만 인간 자신을 돌아보면 죄인으로 남아 있다 라는 두가지의 개념을 서로 절충한 표현이라 하겠다. 그리고 선행을 하라는 권고는 믿음을 실천하라는 권고라고 합의문을 말하며 믿음과 행동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아직 많은 산적한 문제가 많은데 결국 대화와 인내로 연구하녀 교회일치 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카톨릭교와 타종교인들과의 대화.: 인류의 역사와 종교의 역사는 항상 같이 병행 발전하여 왔다. 오늘날 까지도 지구상에는 수많은 민족이 살고 잇으며 그들은 고유한 종교를 가지고 있다. 그 많은 종교가 모두 같은 공통분모를 갖고 있기 때문에 상호 대화의 광장을 가질 수 있다고 바디칸 공의회는 유다교와 이슬람교를 포함한 비그리스도교에 관한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우리 인간들은 어제도, 오늘도 사람들의 마음을 번민케하는 인생의 수수께기들의 해답을 종교에서 찾고 있다. 그것은 삶과 죽음, 인생의 목적, 고통, 사후의 심판 등의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지 않는가? 타종교에서도 그리스도교와 상통하는 일면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지난날 그리스도교는 타종교를 무시하고 사탄의 무리로 잘못 생각하여 배척하였으나 이제는 타종교의 장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배타적 정신을 버릴것을 종용하고 있다. 포스트모던 시대 이후 그만큼 종교인 들도 성숙한 생각을 반성적으로 하게 된것이다. 우리가 다른 종교종교를 가지고 믿는 이들 중에 어떤 이는 그것이 참종교인 줄로 알고 믿는 이가 많은데, 만일 그들이 양심을 속이지 않고 진실하게 믿을 때에는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바디칸 공의회는 가르치고 있다. .교회헌장 제2장 16항에서는 “사실로 본인의 탓없이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 교회는 알지 못하지만 하느님을 성실한 마음으로 찾으며 양심과 명령을 통하여 알게된 하느님의 의사를 은총의 작용하에 행동으로 실천하려고 힘쓰는 사람들은 영원한 구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카톨릭 신학자 칼 라너라는 신학자는 그들을 익명의 그리스챤이라고 부른다. 여기에 한거름 더 첨가하여 바디칸 교회 공회회 헌장에서는 비그리스도교인들의 계층을 4가지로 구분하여 구원의 가능성을 설명하고 있다.

첫째, 유다교인 - 구약(히브리성서)통하여 하느님으로 부텨 특별히 뽑혀 인류 구원 계획의 한몴을 차지한 이스라엘 백성은 유일신교를 신봉하는 백성의 첫 모델이 되었기 때문에 선의의 유다교인들은 구원 될 수 있다.

둘째, 이슬람 교인 – 아브라함의 유일신교를 보존한다고 스스로 주장하며 최후의 날에 주의 심판을 기다리는 백성이기 때문에 자기 탓이 없으면 구원이 가능하다.

셋째, 그리스도 밖에서 하느님을 믿는 백성 – 그리스도의 복음과 교회를 알지 못하지만 하느님을 성실한 마음으로 찾으며 양심의 명령을 따라 사는 사람들로서 본인의 탓이 없는 이들은 구원 될 수 있다. 교회 헌장에는 이런 부류의 종교를 구체적으로 거명하고 있지 않으나 유일신교를 믿는 브라만 – 힌두교도와 원시 유일신를 믿는 아시아. 아프리카인들이 여기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넷째, 하느님의 개념을 명백하게 갖지 못한 백성 – 아직 명백히 하느님을 인정하기에 이르지 못하였을 지라도 하느님의 은총에 의지 하여 올바른 생활을 영위하려고 노력하며, 또한 본인의 탓이 없을 경우, 저들에게 하느님은 그의 섭리로 구원에 필요한 도움을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부류의 백성을 교회 헌장에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명확한 신관이 없는 선의의 불교도 들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통신 수단이 발전하여 각 나라와 민족이 가까운 이웃이된 지구촌 시대에 타른 문화와 종교를 인정하고 이해 하지 않는다면 지상의 평화는 없다고 하겠다. 오늘날 우리의 이웃은 누구인가? 심각하게 질문하고 서로를 인정하고 이해하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서로 사랑해야 되지 않겠는가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개신교 일부 무지한 그리스도 교회 안에서는 중세 시대의 잘못된 신앙으로 배타적으로 이웃을 전도와 선교란 이름으로 타종교와 문화를 바꾸어야 한다는 땅끝까지 가야한다는 문자주의에 빠져 이번 아프카니스탄 인질 사태가 촉발하게 된것이라 생각된다.

그리스도교 개신교 신학 교수는 이번 아프카니스탄 인질 사태에 직면하여, 다음과 같이 이슬람 등, 이웃 종교를 새로운 눈으로 공부하고, 피해자의 눈으로 기독교의 역사를 다시 점검하자는 것이다. 그는 정복을 위해 이슬람의 약점과 한계를 캐듯이 공부하지 말고, 이슬람의 장점은 무엇이며 어떤 것들을 배우야 하는지, 또 개신교와 닮은 점은 무엇인지 찾아보자고 했다. 그동안 개신교인들은 기독교의 밝은 면만 보았는데, 예수와 하느님의 이름으로 기독교가 세계 도처에서 어떤 만행을 저질렀는지, 왜 기독교는 싫어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 진지하게 경청하자고 했다. 또 어릴 때부터 불교와 천주교•이슬람 등 여러 종교를 가진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공부하고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커서도 평화를 위해 일하는 일꾼이 된다고 말했다.뉴욕 유니온 신학교 여성 신학자, 현경 교수는 인터뷰에서 한국 개신교인에게 제안한 것은 '자기 성찰'이었다. 카톨릭교나 불교는 명상과 영성 수련이 발달되어 있어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는 훈련이 잘 되어 있는데, 개신교는 신에게 부르짖고 요구하는 기도에 너무 천착한다는 것이다. 현경 교수는 말이 아닌 깊은 침묵 속에 우리의 삶이 하느님에게서 얼마나 멀어졌는지 돌아본다면, 한국 개신교도 양적인 성장을 넘어 질적인 도약을 이룰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개신교 목사님이 싸이월드 인터넷 웹페지에 천주교는 이단인가? 정통인가의 글로 개신교는 정통 종교며 천주교는 이단이며, 상징과 우상이 무었인지 구별 못하는 무지한 자가 열린 시대에 문을 닫고 있음을 보고, 카톨릭교를 비판한 글을읽은 본인은 그것에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코끼리와 코끼리 다리는 분명다르다. 그러나 눈먼 장임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며 딴소리를 하고 있으니 어떻게 설명할 길이 없지 않는가?

추천수1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