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슬픈 꽃
얼마 전 내린 빗방울이 겨울의 끝을 재촉하는 비였는가 보다.
어느덧 매화나무 꽃망울이 터질 듯 부풀어올라있다.
목련의 봉우리야 잎 지자 봉우리 맺혀있으니 말 할 것도 없지만 여기저기 봄의 전령이 다가오고 있다.
오늘 아침 낙엽을 쓸어내다 새싹 고개 내민 쑥 잎 하나를 보고 감탄의 소리를 질렀다.
돌 냉이도 파랗게 고개를 내밀고 있다.
그것보다 더 마음 조급하게 만드는 잎 새, 상사화가 제법 엄지손가락 길이로 겹겹이 군락지어 솟아낫다.
몇 몇 년 전 오래전에 내원사 뒤 계곡에 소담하게 자리 잡고 있는 비구니들만 수도하는 암자로 가는 길목에서 숲 속 그늘에 아름답게 군락지어 있는 꽃의 무리를 발견하고 지남철에 끌리듯 숲 속으로 들어가 보니 세상에 한두 송이가 아니라 지천으로 피어 있는 꽃의 무리를 보고 탄성을 질렀다.
동행하던 스님이 상사화相思花라고 일러주었다.
상사화를 처음 본 느낌은 나리꽃 비슷한 느낌을 받았지만 나리꽃은 분명 아니었다. 혹 난초꽃이 아닌가 싶었지만 스님이 개난초꽃이라고도 부른다 했다.
잎이 있을 때는 꽃이 없고 꽃이 필 때는 잎이 없으므로 잎은 꽃을 생각하고 꽃은 잎을 생각 한다고 하여 상사화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얼마나 슬픈 꽃인가. 하기야 세상에서 가장 괴로운 병이 상사병이라 한다.
황진이를 사모하던 청년이 끝내 상사의 병으로 죽어 상여가 황진이 집 앞을 지날 때 상여가 움직이지를 않으니 황진이의 치마를 던져주자 상여가 움직였다는 야담이 있다.
상사병이란 참 괴로운 병이 틀림없다.
상대는 꿈적도 않고 혼자 연모의 병에 걸렸다면 얼마나 괴로울까 수긍이 간다.
환부라도 있다면, 상처가 나서 피를 흘린다면 치료할 수도 있지만 상사병이란 마음의 병이라 치유할 수 없이 깊어만 갈 뿐이다.
지난여름에 우리집 정원에 상사화가 한 서른 여 송이 꽃을 피웠다.
꽃이 피기 전에 잎은 순식간에 죽었다. 참으로 신기 하여 잎 마른자리를 파 보니 뿌리가 구근이었다. 우리집 상사화는 분홍색으로 핀다.
그 상사화가 지금 연두색으로 고개를 쑥쑥 내밀고 아직은 잔 추위가 남아 있는데도 씩씩하게 올라오고 있다.
올 여름에는 상사화 피는 모습을 보며 혹여 상사병에 걸려 연모할 수 있는 님이라도 있었으면 하고 실없는 생각을 해 본다. ![]()
2003, 02, 13 우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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