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옥선 할머니 이야기...........
집이 가난했던 부산 소녀 이옥선할머니는 열다섯 살이 되던 해, 학교도 보내주고 밥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말에 부산지역 앞 우동가게에 양딸로 들어갔다. 하지만 조선인 주인은 학교를 보내주기는 커녕 온갖 허드렛일에 술 접대까지 시키다가 울산의 한 기생집에 할머니를 팔아 넘겼다. 열여섯이 되던 1942년 7월, 기생집의 심부름으로 길거리에 나온 옥선은 백주대로에서 조선남자 2명에의해 강제 납치되었다.
그길로 15명의 다른 여자들과 함께 울산역을 거쳐 도문역까지 끌려간 할머니는 친구들이 보이는 앞에서 일본군인에게 겁탈 당했다. 얼마후 일본군은 부대 인근에 위안소 건물을 새로 지어 여자들을 수용했다. 평일에는 군인들이 보통 10명씩 다녀갔고, 주말엔 30~40명까지 다녀갔다. 위안소 생활을 하던 중 첫 월경을 경험한 옥선 할머니는 생리 중에도 손님을 받도록 강요당했다. 군인들이 남긴 밥으로 끼니르 때우고 군인들이 입다 버린 내의와 양말로 겨우 몸을 가릴 정도로 위안소 생활은 혹독했다. 매독에 걸린 옥선이 군병원에서 주사를 맞아도 차도가 없자, 위안소 주인은 군의관으로부터 얻어온 수은 증기를 옥선의 사타구니에 쐬였다. 그로써 매독은 치료되었지만 옥선은 영구불임이 되고 말았다.
1945년, 종전을 앞두고 만주지역의 전황이 격렬해지자 일본인들의 손에 끌려 이리저리 피난을 다니던 옥선은 산 속에서 광복을 맞았다. 비로소 일본인들의 손에서 벗어난 할머니는 며칠간 구걸을 하며 거리에서 연명하던 중 일본군 비행장에 징용으로 끌려와 있었던 한 조선인 남자를 우연히 만나 그 길로 용정시 팔도진에 있던 남자의 집으로 가 결혼을 했다. 그러나 결혼식을 올린지 나흘만에 입대한 남편은 영영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10여년간 시부모를 모시고 농사일을 하던 옥선은 시아버지의 권유로 재혼한 후 그 지역에 계속 머물며 살았다.
2000년 5월, 이옥선 할머니는 58년만에 남녘의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부모형제는 이미 모두 작고한 뒤였다. 그동안 사망신고가 되어 있었던 탓에 힘들게 한국 국적을 되찾았으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과거사 문제에 소극적인 한국 정부에 실망하여 2003년에 다시 국적을 포기했다.
출처 : 지식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