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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 같은 라인에 사는 루라는 중국 친구가 나에게 왜 역사를 공부하는지 물어본 일이 있었다.
한국은 통일과 선진 사회 시스템의 구비라는 시대적 사명이 있다고
이를 위해서는 정치, 경제적 발전 뿐 아니라 가치관의 혁명과 사회의 성숙이 필요한데
그 실마리를 19세기 영국 복음주의 정치가들에게서 찾아보려 한다고...
경영학을 공부하는 그 친구에게 이런 나의 이상적인 주장은 그리 구미에 맞지 않았던 것 같다.
고개를 가로 저으면서 그 친구가 했던 주장은
한반도의 전쟁상태를 종식시키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역사 연구가 아니라 강력한 군사력과 통일을 감당할 돈이라는 것이었다.
사회주의 국가 출신의 경영학도로부터 나보다도 자본주의적인 주장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통일한국에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우리사회에 기여하는 학자가 되고 싶어 여기에 왔지만 정말 나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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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네스트 고든(Ernest Gordon)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To end all wars'에서 나는 비슷한 고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에딘버러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다가 입대하여 버마 전선까지 온 고든은 일본군에게 포로로 잡혀 악명높았던 인도-버마 철도 건설현장의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포로수용소 안에서 그가 경험한 것은 인간성의 말살이었다.
영국 포로들은 아침마다 일본천황에게 절을해야 했고, 일본군들에게 종처럼 인사를 해야했으며
죽을 더먹기 위해 전우들끼리 죽고 죽이는 인간 이하의 존재로 전락해야 했다.
살기위해 일본군에게 굽신거리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땅에 떨어진 죽을 핥아 먹는 친구들을 보면서, 그들은 희망을 잃어간다.
인간성이 사라지고 희망을 잃어가던 이 순간에 포로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허기를 면할 식량? 저항할 무기? 연합군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소식?
하지만 놀랍게도 그들이 가장 필요로 했던 것은 '철학'이었다.
이 인간 이하의 생활 속에서 자신이 무슨 가치가 있는지 고민하던 고든에게
하루는 친구들이 찾아와 철학을 강의해달라고 부탁을 한다.
우리가 이런 상황 속에서 왜 살아야 하는지, 인간이 정말 가치가 있는지, 우리가 산다는 것이 어떠한 역사적 의미가 있는지 알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고든은 플라톤의 '정의론'을 강의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모임은 더 커져서 문학을 전공한 포로가 셰익스피어의 시를 강의하고, 군목출신 포로는 복음서를 강해하는 '정글대학교'로 발전한다.
정글의 일본군 포로 수용소 속에서 굶주리고 말라리아에 걸려 죽어가는 포로들이
정의를 논하고, 셰익스피어의 시를 읊조리고, 성경말씀을 읽는 모습은
일본군인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이 정글대학교에서 인간의 가치를 강의하면서 고든은 자신이 왜 필요한지를 알게 되었고
그의 동료들 또한 삶의 목적와 의미를 깨달기 시작했다.
이제는 일본군들도 포로들을 달리 볼 수밖에 없었다.
동료에게 음식을 양보하고, 일을 대신해주며, 심지어는 탈출을 시도하다 잡힌 친구 대신 자신을 벌해 달라고 말하는 포로들을 보며 일본군들은 어쩔 줄을 몰라한다.
마침내 수용소가 해방이 되었을 때,
자신을 죽이려는 친구를 말리고 자신을 풀어주는 고든을 이해하지 못한채
악명 높았던 한 일본인 간수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이 악명 높았던 간수를 진정 굴복시킨 것은, 바로 그가 이해할 수 없었던 고매한 인간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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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 속의 포로들에게 플라톤과, 세익스피어, 성경 그리고 바흐가 사치였을까?
생과 죽음을 오가는 상황 속에 있던 그들에게
인간의 존재 목적, 역사적 의미,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인간의 가치에 대한
역사적, 철학적 깨달음은 분명 사치가 아니라 삶의 의미 그 자체였을 것이다.
통일한국을 위한 영적혁명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가치있는 일일까...
나는 우리 사회에 정말 필요한 일을 하고 있을까...
스스로에게 많이 물어보았고 또 앞으로도 물어볼 질문이지만
적어도 지금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국민의 가치관이 변화되고 하나님의 가치관이 반영되는 사회시스템이 만들어지는 일에
나의 역사 연구가 사용되어 진다면
나는 우리 사회에서 분명 누군가는 해야할 일, 즉 우리사회가 가져야할 가치를 설명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누군가 그런말을 했다.
역사가는 이익을 만드는 사람은 아닐지 모르지만,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고...(We are not profitable,but really necessary)
나는 이익을 내는 사람보다는 진정으로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
P.S: 어네스트 고든은 수용소에서 살아남아서 프린스턴 대학의 교목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