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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 (Dalai Lama)

신문섭 |2007.09.16 22:50
조회 99 |추천 1

 

 ~~ 달라이 라마 (Dalai Lama) ~~ 

 

 

달라이 라마(영어: Dalai Lama, 티베트어: taa-la’i bla-ma)는 티베트에서 성속 양권(聖俗兩權: 종교와 정치의 최고 지배자)을 쥐고 있던, 티베트불교(라마교) 최대종파인 겔루크파(황모파) 최고지도자, 법왕 또는 교주를 일컫는 말이다. 1391년부터 전세된 티베트 불교 겔루크파(황모파)에 속하는 환생하는 라마(스승, 큰스님)이다.


<달라이>는 티베트어의 갸초에 상당하는 몽골어로 큰바다를, <라마>는 위없는 스승·최상인(最上人)을 뜻하여, 합쳐서 큰바다와 같이 넓고 큰 덕을 지닌 고승 '영적인 스승'을 이른다. 이 칭호는 주로 중국·몽골·인도 등 외지사람들이 사용하고, 티베트인들 스스로는 걀와린포체(보석 같은 승리자) 또는 이신노르부(여의보주) 등으로 부르며 직접 달라이라마로 부르는 것을 피한다.


달라이라마의 명칭은 1578년 내몽골의 최고실력자 알탄 칸이 당시 그곳을 방문한 황모파(황교) 제3대 종정 소남갸초에게 부여한데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 뒤 제1대와 제2대 최고지도자에게도 이 이름을 추증하였다. 제4대 달라이라마인 욘텐갸초는 알탄칸의 증손으로, 내몽골지방의 티베트 불교화를 촉진시켰다. 제5대 로산갸초는 탁월한 지도자로서, 청해몽골(靑海蒙古) 구시한의 협력을 얻어 구파불교 세력을 추방하여 티베트 전지역을 통일하고, 1642년 티베트국왕의 신분과 황모파 티베트불교 전체 지도자 지위를 함께 가졌다. 그는 제1대 티베트왕 손챈감포의 성채터에 포탈라궁을 지었다. 그 뒤 섭정 상게갸초의 지도로 달라이라마정권이 확립되었다. 제6대 찬얀갸초는 연애시를 쓰는 등 경건치 못하여 추방되었으며, 제7대 켈산갸초는 학덕 겸비의 고승으로 나르탄사판 티베트대장경 판각을 시작하였다. 그 뒤 종주권 확립을 꾀하는 청나라 조정과 그 주재대신, 티베트인 귀족의 섭정, 종파 내외의 굳은 고집, 외국 열강의 세력다툼 속에서 국정이 불안정하게 됨으로써, 희생되어 일찍 죽는 달라이라마가 속출하였다. 제13대 툽텐갸초는 청나라·영국·러시아의 세력 확장 소용돌이 속에 말려들면서도 티베트의 국권보존과 근대화에 부심하였다. 제14대 텐진갸초 때인 1950년에 중국군의 티베트진주가 감행되었다.

 

 


지금의 14대 달라이라마 텐진 갸초(티베트어: Bstan-'dzin Rgya-mtsho)는 1935년 7월 6일 티벳고원 탁체르 마을 농부 집안에서 라모 돈드럽(티베트어: Lha-mo Don-'grub)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두 살에 달라이 라마의 현신으로 발견되어 제춘 잠펠 가왕 롭상 예쉬 텐진 갸초라는 법명을 받고 1940년 14대 달라이 라마로 공식 취임했다. 1951년 17세의 나이로 친정(親政), 처음에는 티베트 자치구 준비위원회에 참여하기도 하였으나, 1959년 3월 중국정부가 라싸에서 일어난 티베트 독립운동을 유혈진압하자, 자신의 추종자 10만여명을 이끌고 인도 북서쪽 히말라야 산기슭에 있는 다람살라로 탈출하여 티베트망명정부를 세웠다. 그 뒤에도 달라이라마 14세는 티베트의 완전독립을 위해 대외활동을 벌였으나, 1980년대 후반 들어 중국의 현실적 지배권을 인정하고, 외교·군사면을 제외한 자치권회복으로 독립운동 방향을 전환했다. 이러한 그의 비폭력평화주의 독립운동과 지구 환경문제에 대한 공로를 국제사회에서 인정되어 1989년 노벨평화상을 받았으며 62개 이상의 나라들을 다녀갔고 84개의 각종 상, 명예학위 등을 받기도 하였다. 달라이라마 14세는 1995년 자신의 승계자이자 라마교 서열 제2위인 판첸라마에 게둔 초에키리마를 지명하여 후계체제를 갖췄다. 그러나 중국정부는 그를 납치해 감금하고 지아인카인 노르부를 판첸라마에 임명하는 등 탄압정책을 계속하였다.

 

 

티베트의 다른 모든 불교 종파는 달라이 라마를 전 티베트의 종교적 정치적 지도자로 인정하고 있다. 판첸 라마는 종교적으로 달라이라마에 다음 가는 지위에 있다. 겔루크파의 공식적인 지도자는 Ganden Tripa(겔룩파의 창시자 총카파가 세운 첫 번째 사원 간덴사의 주지)이다. 달라이 라마는 겔루크파가 티베트를 장악한 이래(17세기 중엽부터 중화인민공화국이 티베트를 점령한 1959년 달라이 라마 14세가 인도로 망명하기까지) 티베트의 통치자이자 국가 원수였다.

 


 

사람들은 달라이 라마가 자비의 보살인 관세음보살(티베트어: Chenrezig)의 화신이라고 믿으며, 달라이 라마가 죽은 뒤에 차기의 달라이 라마가 다시 환생하였다고 믿는다. 하지만 지금의 달라이 라마는 자신이 깨달은 자라는 것을 천명하지 않고 있다. 지금의 달라이 라마는 중국의 탄압을 피해 망명하였다. 그 후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불교의 가르침을 알리면서 또한 티베트의 독립을 지지해 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그래서 중국정부에서는 티베트 민족주의의 상징이자 그 자신이 민족주의자인 14대 달라이라마에 대한 티베트인들의 존경행위를 박해하고 있다. 티베트 불교는 대승불교에 속하며, 밀교에 속한다.

 


 

달라이 라마에 '최고 시민상' 미 의사당에서 수여식

2006년 미국 상하 양원은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에게 '최고 시민상(연방의회 금메달)'을 수여하기로 결정했으며 이에 대해 중국 정부는 강한 불만을 표시해 왔다. 그러나 미 하원은 2007년 9월 4일 워싱턴 국회의사당을 달라이 라마에 대한 '연방의회 금메달' 수여식 장소로 사용하도록 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달라이 라마는 10월에 미국을 방문해 국회의사당에서 상을 받을 예정이다. 이번 결의안에 따라 수여식 뿐 아니라 티베트 독립을 위한 국제캠페인 본부가 주관하는 축하행사도 내달 17일 국회의사당에서 치를 수 있게 됐다. 티베트 독립을 위한 국제캠페인 본부의 메리 베스 마키 부의장은 "최고시민상 수여는 지난 1989년 노벨 평화상과 마찬가지로 국제사회가 달라이 라마에게 보내는 존경의 표시"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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