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한다는 책을 읽은적이 있다.
그러나 한자에서의 칭찬(稱讚)은 말로 도와 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영어의 Praise라는 단어는 라틴어의 Pretiare로서 어떤 가격, 가치를 의미한 것이다.
그러나
이 칭찬을 심리학적으로 잘 고찰하여 보면 열등한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물론 칭찬하여 줌으로 상대를 기쁘게하고 어떤 목표에 더 적극으로
매진 하게하는 동기부여가 될 수 도 있지만
반대로 멍청한 사람들은 잘못 자신의 주제를 잘못 착각하고
우쭐 대고 오만해 져서 사고를 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말의 자화자찬(自畵自讚)은 영어의 sing one`s own praise로
사용하는데 이런경우 대개
나르시즘형으로서 자기 도취에 빠져 있는 경우와
주위로 부터 칭찬에 허기져 있는 심리 상태에서 연유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지지율이 10퍼센트 미만의 어떤 지도자는
자화자찬의 웃기는 발언으로 세인들을 고통 스럽게 하지만
다른 한편 칭찬에 굼주린 멍청한 사람들은
자화자찬하는 것은 상대가 없는 상태에서
마스터베이션을 하는 심리적 상태를 말한다고 하겠다.
이것은 이상증상으로 치료가 어렵다.
왜냐하면,
여기에 칭찬을 해주면 고래가 춤을추어 천방지축으로
날뛰어 사고가 크게 나고 충고를 하여주면 적대적인 감정으로
철천지 원수로 피해망상에 빠져 다른 큰 사고가 나게 마련이다.
그래서 이런 증세는 치료가 어려운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치료가 가능 할까?
그런데 명사, Sing의 어원은 deongi의, 말하다, 설명하다,
가르치다란 의미로 단순히 반복하는 후렴으로 주술적 인의미가 있다고 한다.
우리가 성서를 읽어보면 하느님께서는 칭찬 보다는 꾸중이 더많다. 더구나 예언서를 보면
정말 꾸중이 더 많다. 본래 인간이란 어리석고 멍청해서 칭찬을 더 좋아한다.
그리고 한 나라의 역사도 임금님이나 상관에게 칭찬(아부꾼)을 노래 처럼
반복하면서 따리를 멕이는 아첨꾼들을 분별없이 좋아하게 되면 백성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는데, 가까운 주변에 있는 이런 자들의 칭한의 후렴에
감동을 받으면 역사의 심판에 비극을 맞이하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성서는 역사적으로 우리에게 교훈를 준다.
잘못됨을 알려주고 꾸중을 받아드리는 현명한 임금 다웻왕은 예언자 나단의 꾸중에
회개하고 잘못을 깨닫지만 어리석은 자는 분노하고
적대적이 된다는 것이다. 이때 역사는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이러한 것은 일반적으로 개개인의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자가 아닌가 한다.
일반적으로 속임수가 많은 사람일 수록 상대의 잘못을 보면서도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는 계획은 칭찬으로
상대의 환심을 사서 자기 이해타산의 계산에서 욕망을 충족 시켜줌으로
승부의 전략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때 세상은 사기가 발생하게 된다.
하여 칭찬은 때로 꾸중보다는 독약이 되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비판은 간사한 칭찬을 대신한
좋은 약이 될 수 있다고 하겠다.
지혜 있는 자는 달콤한 칭찬 보다는 쓴 충고를 해주는
친구가 삶의
진정한 반려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혜란 무엇인가를
진정 나에게 유익한 칭찬인지를 구별할 줄 아는 것을 말한다고 하겠다.
우리 속담에 좋은 약일 수 록 쓰다는 격언은 얼마나
좋은 말인가?
칭찬에 속는 것은 어리석기 때문이다.
지혜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