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락밴드 활화산은 부활시켰으되 이준익 감독 스스로는 침체되었다고나 할까. 이후 로 스스로를 조그맣게 분발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열렬하게 박수를 보냈지만, 연이어 비슷한 컨셉의 영화(음악과 추억이라는 컨셉의)를 내놓는 것에는 좀 불안하다 싶었는데, 영화를 보는 순간 이런 우려가 현실이 된 것 같아 안타깝다.
어차피 작은 영화를 지향하면서 만들었기에 재난을 불렀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전작에서 보여준 훌륭한 능력의 감독이 훌륭한 배우들을 불러서 만든 영화치고는 마당에 물들어온 정도의 수해는 입은 것이라고는 봐야겠다. 스타에게 일상성을 부여했던 에 비하여 일반인에게서 일상성을 빼앗은 듯한 은 솔직히 그리 즐겁게만 보이지 않았다.
영화는 40대 중년의 남자, 그들의 인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들의 인생도 즐거워야 하고, 그들의 삶에도 열정이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주변의 여러 여건들쯤은 무시되어도 좋다는 것이 이 영화가 주장하는 바이다. 그리고 이들은 20여년전 음악 활동이라는 꿈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러한 꿈을 오늘날에 되살리는 것이야말로 이들의 열정에 불을 지피는 유일한 방법으로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정말 우리들 삶은 그렇게 즐겁게 이동할 수 있는가? 이십여년동안 악기에 손을 대지 않았던 이들이 만든 밴드는 조개구이집을 벗어날 수 있을까? 선생님인 아내를 둔 덕에 매일 만원씩 용돈을 받는 기영은 계속 그런 식으로 살아가도 괜찮을까? 아무래도 바람이 난 듯한 아내와 헤어진 채 가끔 자식과 전화통화나 하며 운영하는 혁수의 조개구이집은 언제까지나 유지될 수 있을까? 집 나간 아내가 밴드의 무대 앞에 지금은 서 있지만 자식들의 미래에 목숨을 건 듯한 그녀를 두고 성욱은 40대의 프리터 생활을 계속 해나갈 수 있을까? 20대의 현준은 아버지의 친구들인 이들과 함께 계속해서 밴드 생활을 할 수 있을까?
그러니까 이들은 이 사십대의 한때를 통하여 정말 즐거운 인생으로 진입할 수 있다는 것인가? 이도저도 아니라면 그저 이 한 때의 즐거운 인생(이라고 스스로 믿고 싶은)을 통하여 나머지 인생을 살아나가기 위한 에너지를 충전받게 된다는 그런 이야기인가?
환타지도 아니고 일상도 아닌 은 모든 실상들을 간단하게 뒤로 물러나게 만든다. 여기에 인과관계가 분명치 않은 내러티브의 엉성함이 결합되면서 영화는 더욱 진창으로 빠져드는 것 같다. 그렇게까지 고사하던 밴드의 맴버들은 캐나다의 가족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혹은 음악에 대한 손님과의 언쟁 이후로 급작스럽게 의기투합한다. 배우들의 연주 실력이야 벼락치기로 어느 정도 늘릴 수 있겠지만, 우리들 일상의 모든 결정이 어디 벼락치기로 결정이 되는 것인가...
이제 몇 달 뒤면 마흔 살... 삶의 에너지를 충전받을 수 있을까, 지금의 인생을 보다 즐겁게 만들 어떤 방편을 제공받을 수 있을까, 들른 영화관이었지만 나올 때는 그저 씁쓸할 따름이었다. 사실 세상 모든 것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세상의 중심에 내가 있다고 여기며 살아갈 때만 스스로에게 의지할 수 있게 된다. 그렇지만 그곳에 나만 있어서는 안 된다. 스스로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믿는 여러 사람이 모두 함께 행복하게 될 때, 그때 우리는 비로소 즐거운 인생을 살 수 있게 되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