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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새통 5월호 <이 세상은 널 위해 준비한 도화지란다>

오진원 |2007.10.11 14:18
조회 14 |추천 0

 5월호


 

 

 

 

이 세상은 널 위해 준비한 도화지란다

 

 

 “지나야, 넌 커서 뭐가 될 거야?”

 “아무 거.”

 “피, 너 그럼 커서 벌레 된다.”

 “벌레?”

 “아빠가 그랬잖아. 아무 거나 된다는 사람은 커서 벌레 된대.

 그래도 아무 거나 될래?”

 엄마의 말에 아이는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경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벌레는 싫은데. 그럼 벌레 말고 아무 거!”

 

 고등학교 때 쓴 글을 꺼내 읽다가 나도 모르게 한바탕 크게 웃었다. 내가 쓴 글을 보고 내가 웃는다는 게 좀 멋쩍기는 하지만 아무렴 어떠랴. 내가 나를 격려하고 칭찬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이 글을 좋아하는 건 이 글 밑에 적어 놓은 글귀 때문이다. 


 ‘왜 장래희망은 단답형으로 말해야 하나요?’


 학창시절 내내 나를 괴롭히던 일이 있었다. 바로, 생활기록부란에 장래희망을 적는 일. 남들은 쉽게 넘기는 일도 걸고넘어져야 직성이 풀리는 내 못된 성미를 탓할 수도 있겠지만, 내 미래가 걸린 일인데 메뉴판에 있는 메뉴 고르는 것도 아니고 한 단어로 적으라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한 일 같았다. 나는 장래희망을 적어내는 대신 글을 써서 선생님께 드렸고 선생님은 내 장래희망을 작가라고 적어놓으셨다.


 만약 어린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장래희망을 의사나 화가 피아니스트나 성악가 대신 벌레 말고 다! 라고 적을 것이다. 그 얼마나 재미있고 경쾌한 답일까. 작가가 꿈이었지만 작가가 된 지금에도 나는 이렇게 사는 삶이 제대로 된 삶인가 돌아보게 될 때가 있다. 무엇이 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사람으로 살아야하는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17세기 중엽 스페인에서 여성은 어느 것 하나 독립적으로 할 수 없는 존재였다.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청소하고 빨래하고 음식을 만들며 남자를 위해 예쁘게 치장하는 일이 전부였다. 꿈이라는 단어는 정말 꿈조차 꿀 수 없는 시대였다.

 

 눈동자 속에 황금빛 점을 갖고 있는 고아 소녀 마리아 역시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을 당하고 학대를 받는다. 마리아는 불에 탄 나무 조각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지만 이마저도 자유롭게 할 수 없다. 여인숙 주인의 학대에 못 이겨 집을 뛰쳐나와 마드리드까지 도망친 마리아. 우여곡절 끝에 유명한 화가 호세 파체코 씨의 집에서 일을 하게 되었지만 마리아에게 주어진 일은 역시 허드렛일뿐이다.


 마리아는 조금이라도 틈이 나면 종이에 그림을 그린다. 마리아가 즐겨 그리는 것은 곤충이나 동물이다. 사람들 눈에는 하찮게 보이는 것이 마리아의 눈에는 둘도 없이 소중한 소재거리다. 마리아는 처음부터 화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만 그림을 그릴 때의 그 벅참, 설렘을 즐기는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순간만큼은 하녀도 고아도 여자도 아닌 한 인간으로써의 마리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그 작은 자유를 사랑한 것이다.


 파체코 씨의 견습생인 앙헬이 마리아를 도와 물감을 만드는 법을 알려주고 마리아의 열정에 감동한 파체코 씨도 마리아가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도와주지만, 세상은 마리아의 손에서 붓을 빼앗으려고 한다. 붓을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남자이다. 능력이나 재능은 여자라고 밝히는 순간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마는 시대. 하지만 그림을 향한 마리아의 열정을 사그라지게 할 수는 없다.


 왕비가 부탁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 남장을 하고 왕실로 들어간 마리아와 파체코 씨는 난쟁이 하녀에게 마리아가 여자라는 것을 들켜 목숨까지 위태로운 상황이 된다. 그러나 다행히도 왕비는 마리아에게 그림을 끝까지 완성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다. 마리아는 화가가 되어 행복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어 행복하다. 사랑하는 앙헬 앞에서도 난 그림을 그리고 싶어, 내 맘속엔 온통 그림 생각뿐이야. 라고 말하는 마리아. 사랑보다는 자신의 길을 먼저 선택하고 꿋꿋이 걸어가는 그녀의 열정에 박수를 치고 싶다.


 눈 속의 황금빛 점 때문에 마녀라고 손가락질 받았던 마리아. 이제 마리아의 황금빛 점은 저주의 상징이 아니라 꿈을 찾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함으로 바뀌었다. 남들과 다르게 산다고 해서 그 삶을 틀린 것이라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은 17세기도 아니고 더더욱 이 곳은 스페인도 아니지만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마음껏 꿈꿀 자유를 얻지 못한다.


 어린 시절 꿈꿔왔던 것을 이루지 못해 어른이 된 후에도 실망하는 사람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묻기 전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물어주었다면, 희망했던 것이 되지 못했더라도 그 인생은 실패한 것이 아니라 조금 달라졌을 뿐이라고 여길 수 있을 텐데.


 요즘 생활기록부의 장래희망 칸은 얼마나 커졌을까. 만약 우리의 의식만큼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다면 제발 장래희망 칸을 조금 더 크게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엉뚱한 상상을 잘하는 아이가‘나는 커서 크레파스가 되고 싶어요.’라고 적는다면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탓하지 말고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이 세상은 널 위해 준비한 도화지란다. 자, 네가 그리고 싶은 걸 마음껏 그려보렴.”

 

 

 

 

   글쓴이 오진원 작가

 

 1981년 경북 울진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했다. 2006년 장편 동화 『꼰끌라베』로 대산재단 창작지원금을 받으며 등단했고『플로라의 비밀』로 2007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예진흥기금을 수혜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플로라의 비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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