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마음에 집을 짓지 않는 남자
섹스도 하고, 애틋한 대화도 나누며, 영화도 보지만, 애인은 아니다? 연인도 섹스 파트너도 아닌 중간 단계. 감정은 인정하지만 관계는 인정하지 않는 남자의 속마음
한동안 그는 관계 공황증을 겪었다. 끝나버린 연애의 상처도, 원 나이트 스탠드의 허무함도 컸다. 여자와 더 이상 어떤 관계도 맺을 수 없을것만 같았다. 그가 선택한 방식은 섹스 파트너였다. 마침 여자도 자신을 프리섹스주의자라 밝혔다. 둘은 파트너 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옛 어른께서 이르신 말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살정만큼 무서운 게 없다고, 그의 마음과 일상의 어느 구석에 자꾸 그녀의 존재가 커졌다. 확 연애해버릴까. 그러나 많은 여자를 겪으면서 무뎌진 감정이 그에게 속삭였다. 어느 순간이 지나면 다가오는 연애의 번잡함을 다시 감수하고 싶으냐고. 어느 순간부터 시작되는 생활의 참견에 태평할 수 있겠느냐고. 그는 정신을 차렸다. 그리하여 그는 그녀에게 의도적으로 거리 두기를 했다.
파트너는 파트너일 뿐 애인이 아니다. 나의 생활은 온전히 보존한 채 몸이 외로울 때 서로 만나는 그런 관계면 충분하다. 이런 자기 암시를 끊임없이 걸던 어느 날 그녀가 시큰둥하게 한 마디 했다. “섹스는 서로한테 호감이 있을 때 해야 좋은 거 아냐?” 그제서야 그는 깨달았다. 이 상태로는 파트너와의 섹스마저 오래된 커플의 의무적인 섹스와 같을 거라고. 연애의 애틋함과 솔로의 자유로움을 모두 가질 수 있는 방법을 그는 그제서야 고민하기 시작했다. 본능과 욕심과 이기심이 한 데 엉켜 그런 길을 찾기 시작했다.
혼전 순결이란 단어는 교과서와 함께 벽장 속에 처박혔다. 섹스 없는 연애란 소꿉장난이란 것도 알게 됐다. 그러다 연애와 섹스가 분리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원 나이트 스탠드란 말이 나왔다. 그러나 하룻만에 상대의 몸을 모두 안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섹스 파트너가 등장했다. 수요는 공급을 낳는다. 그리고 각각의 공급에는 이름이 붙는다. 그렇게 해서 육체 관계가 있는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통칭하는 세 단어가 완성됐다. 연애와 섹스 파트너, 원 나이트 스탠드. 하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시장을 만들어야 살아남는다. 즐기고 싶지만 책임지기 싫은 남자는 언제나 새로운 욕망의 시장을 찾아 나선다.
여자에게 섹스가 사랑의 시작이라면, 남자에게는 완결이다
그들이 겪어온 세 개의 시장은 처음에는 즐거웠지만 100%의 만족을 주지는 않았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연애는 무거웠고 섹스 파트너는 위험했으며 원 나이트 스탠드는 허무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을 융합하는 새로운 관계는 없을까. 그래서 어떤 남자는 호감 있는 상대와 꾸준한 관계를 지속하면서도 만날 때마다 애틋한 그런 관계를 마음속에서 고안해냈다. 섹스가 끝난 후 기꺼이 귀지를 파주고 이런 저런 애틋한 대화를 나누지만 절대 서로를 애인이라 생각하지 않는 그런 관계. 사랑하지만 소유하지 않으며 교감은 나누지만 간섭하지 않는다. 아직 이름이 주어지지 않은 새로운 욕망의 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이 시장의 얼리어답터는 소유와 무관심의 완벽한 균형 사이에서 성공적으로 줄타기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여자에게 섹스가 사랑의 시작이라면 남자에게는 완결이다. 아니 마침표다. 일단 섹스를 한 여자와 굳이 연애를 할 필요는 없다는 게 대부분의 남자다. 섹스는 언제든지 할 수 있다. 아니, 만나서 섹스만 하는 것도 아니고 적어도 얼굴을 맞대고 있는 동안은 나름대로 연애질도 가능하다. 굳이 매일 밤 전화기를 붙잡고 있어야 할 필요도, 친구와 함께 있다가 애인의 부름에 득달같이 달려갈 필요도 없다. 이보다 더 편할 수는 없다. 달지만 당뇨 걱정 없는 사카린을 먹는 것과 같다. 묘한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감의 뒤편에는 방심이 있다. 여자는 그들의 방심을 노려야 한다. 관계의 칼자루가 자신에게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그들에게 칼자루를 빼앗아야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매달리면 안 된다. 이러다 보면 언젠가 그가 나를 진심으로 좋아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의 그림자를 밟지 말아야 한다. 그의 요구에 나를 맞추지 말고 나의 요구를 그에게 들이대야 한다. 남자는 여자가 약하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도도하다.
강하고 모진데 매력적인 여자 앞에서 남자는 굴복한다. 그에 대한 당신의 태도를 수동태에서 능동태로 바꿔라. 그 순간, 줄다리기의 흐름은 바뀐다. 바뀌지 않는다고? 떠나면 그만이다. 그는 어디에선가 또 다른 여자와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당신과만 줄다리기를 할 남자는 세상에 널리고 널렸다. 관계의 시장에서 남자는 수요자고 여자는 공급자다. 인구 통계가 말해주듯 지금,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고 있다. 무엇이 아쉽단 말인가. 진정한 시장의 강자, 바로 여자인 것을.
· 글 : 김작가 (문화 수필가) | 자료제공 : 앙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