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나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불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모든 이들은 아궁이의 여신처럼, 모닥불의 신처럼 불을 가져온다.
"사랑해" 라고 말했을 때 마음속에서 무언가 따뜻한 것이 확 퍼져가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는 사람은 알게 된다. 다만
사람마다 그 불씨의 크기가 다를 뿐. 그리고 이 불을 키워주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불씨가 작은 사람은 키워주는 사람을 만나도 크게 타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온화하게 따뜻해진다.
불씨가 큰 사람은 어떤 상대를 만나도 불장난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같이 타오를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면 더 아름다운 불꽃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2.
우리 나라 말은 참 편하다.
그냥 '인연이 아니라' 로 해결할 수 있으니까.
영어에도 fate 나 destiny 가 있고, 이슬람에도 '알라의 뜻' 이라는 kismet 라는 표현이 있다.
하지만 '인연이 아니다' 는 신이 정해놓았다는 의미의 거창한 개념이 아니라 그냥 두 사람의 별이 잘 안 맞아서, 궁합이 잘 안 맞아서 그렇게 되어버렸다는 뜻이다. 서로에게 아무런 도덕적 책임을 지우지 않고, 인연이 아니라는 말로 안 되는 관계를 정리할 수도 있다.
내가 만나기 싫은 건, 그 사람을 싫어하거나 미워해서가 아니다.
그냥 끈이 이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두 사람 사이에서 계속 나한테만 안 좋은 일이 생긴 것도 그 사람 잘못이 아니다. 그 사람을 계속 좋아하지 않는 것도 내 잘못이 아니다.
인연이 아니니까지.
#3.
이전에 L은 내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너무나 유명한 데다가 해답도 수천 가지가 나올 수 있는 질문이었다. 나는 약간 당황한 데다가 다른 일을 하고 있던 중이어서 순간 제대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때 L은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고 생각해요" 라고 말했다.
요지는 사랑은 '그리하여 therefore' 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nevertheless' 라는 것이다.
이 말에는 부분 공감하고 있다. 나도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싫은 점을 L처럼 너그럽게는 아니지만, 받아들이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면 우리의 모든 감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 더 진실한지도 모른다고 L은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을 좋아한다.
장점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