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한국인에 관해 적은 글에서 (대체로 비꼬는 내용) 이런 내용을 보았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일본을 '쪽발이'로 부르며 무시하는 나라"
이 말은, 우리가 뛰어나서 일본을 무시한다는 뜻이 아니라, 말 그대로 그냥 아-무런 이유없이 무시한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다. 긴 역사 동안 야만족으로 취급하고 쪽발이라고 부르던 사실 때문에 그렇고, 이후 36년의 식민 지배가 그렇고, 광복 후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루한 때문이기도 하다. 즉, 우리는 일본에 대해 열등감과 우월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는 뜻이다. 정말 잘난 자는 자기보다 못난 자에게 그 정도로 적개심을 세우지 않는 법이다.
하지만 최근 한국인들은 삼성, LG, 현대 등 대기업들의 선전으로 인해 주력산업이 겹치는 일본에 대해 경제력에서도 우월감을 많이 느끼는 것 같다. 언론도 한 몫을 하는데, 삼성이 소니를 눌렀다느니하는 이야기도 많이 들리니까 그만큼 우리의 자부심도 강할만 하다.
그렇다면, 과연 정말 우리는 일본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일본과 같은 수준인 나라인 것인가?
답은, '아니다'이다.
일본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크고 무서운 나라다.
수치만으로 봐도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고 1인당 총생산량에서도 우리와는 게임이 되지 않는다. 세계 어디서든 일본인들은 다른 아시아인과는 다른 대접을 받으며, 유럽에서도 일본인은 영국, 독일, 프랑스와 같은 '주류'다.
일본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아주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우선은 경제력이다. 그리고 그 경제력을 효과적으로 이용할 줄 아는 영민함이다. 정부의 투자부문이나 산업구조만 보아도 우리와 일본은 크게 다름을 알 수 있다.
'일본'하면 떠오르는 기업은 소니, 도요타, 도시바 등의 전자.기계.자동차 회사들이다. 하지만 일본은 이러한 대기업들 못지 않게 튼튼한 중소기업들(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큰 기업들)이 많다. 이런 기업들이 우리에게 잘 알려져있지 않은 이유는, TV, MP3, 자동차 같이 일반 고객에게 파는 물건이 아니라 다른 기업들에게 물건을 파는 기업들이기 때문에 그 업계가 아니면 잘 모른다는 것이다. 그 업계는 너무나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어서 그야말로 일본이 전세계 산업을 쥐고 흔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일본의 주력 산업인 '부품산업'.
우리나라가 주로 수출하는 자동차, 전자제품의 내부 부품들이 대부분 일제라는 사실은 이제 누구나 아는 상식이 되었다. 고로, 우리나라가 더 많은 자동차를, 더 많은 전자제품을 수출할 수록 덩달아 일본도 더 많은 돈을 벌게 된다. 때문에 기업들이 달러보다도 엔화에 더 민감하게 되는 일도 많다.
두번째로는 각종 설비시설.
우리는 수많은 반도체와 자동차, 전자제품을 생산해 수출하고 있다. 이것들 또한 생산시 수많은 설비들이 필요한데, 이 설비에서는 일본와 독일, 미국이 가장 앞서있다. 지리적으로도 가깝고 엔저의 후광에 힘입어 우리나라에서는 역시 일본의 설비를 가장 선호하게 되다보니 일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설비는 한번 팔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바꿔줘야하고 고장시 수리비용도 엄청나게 들기 때문에 여러가지로 일본은 돈을 벌 수 있는 것이다.
설비시설은 비단 생산기계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각종 실험장비에서도 빛을 발하는데, 우리가 카메라 회사로 알고 있는 올림푸스도 본래는 현미경을 만들던 회사였다. 현미경을 만들던 회사이니 카메라는 좀 잘 만들겠는가. (비행기 엔진을 만들던 BMW가 자동차를 만드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런 현미경들은 나쁜 것도 한대에 수천만원이고 좀 쓸만하다 싶은 것도 몇 억인데다 대학에서 쓸 정도 되면 십억이 넘어간다. (고등학교 때 생물실에 5억짜리 전자현미경이 있었다.) 그야말로 남들이 따라하기 힘든 고부가가치 산업인 것이다.
마지막 것이 가장 중요한데, 바로 기술력.
우리와 달리 일본, 독일, 미국 등은 기초과학 및 기초공학에 수많은 돈을 쏟아붓고 있다. 수치상으로 GDP대비 R&D투자 비중이 우리나라가 아무리 높다해도 투자하는 부문이 다르다보니 그 결과도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기초공학과 기초과학은 말 그대로 '기초'이다보니 그 관련 산업이 발전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사용될 수밖에 없고, 그러면 특허를 가지고 있는 해당 국가는 그냥 가만히 앉아서도 돈을 벌게 되는 것이다.
2005년 노벨화학상 수상자는 일본 한 기업 연구소의 연구원이었다. 대학도 아니고 기업 연구소.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광경이다. 어디서든 안정적인 연구가 가능하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지금까지는 어디서 일본이 돈을 버는가를 알아보았는데, 아무리 돈이 많다고해서 세계적으로 그렇게 일본을 잘 알아준다는 것은 조금 아이러니하다. 거기에는 또다른 일본의 면모가 숨어있다.
유럽에 가면 수많은 미술작품들을 볼 수 있다. 또한 수많은 유적지와 유물들을 볼 수 있다. 그곳에 가면 빠지지 않고 일본어가 보인다. 버블경제 당시 넘치는 돈을 다른 곳에 쓴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유물과 유적, 예술작품을 위해 기증했다는 증거다. 덕분에 이탈리아의 그림 대부분의 저작권이 일본에 있다고도 한다. 복원비용을 일본이 댔기 때문이다. 전후 파괴된 유적지를 복원하는데에도 일본은 많을 돈을 써서 곳곳에서 일본인이 기증하여 복원했다는 문구를 수없이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세계에 일본인에 대한 인식을 좋게 쌓아둔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역작이라고 불리는 바티칸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정화와 최후의 심판. 너무나 많은 돈이 들어서 복원에 엄두를 못내고 있을 때 일본의 한 방송사가 돈을 대겠다고 했고, 대신 세 가지를 조건을 냈는데, 첫째. 복원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찍겠다, 둘째. 저작권을 일정기간동안 달라, 셋째. 모든 안내방송에 일본어를 집어넣어라,였다고 한다. 이 방송사는 복원과정을 촬영한 다큐멘터리로 불과 4년도 되지 않아 복원한 비용을 뽑았고, 그 이상으로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한다.
최근 일본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인도와 동남아에 대규모로 투자하고 있다. 중국은 반대로 아프리카에 투자를 하고 있다. 돈을 빌려주고 빚을 탕감해주는 등 그야말로 돈을 퍼다주고 있는 거다. 반면 우리는 세계에서 '퍼주는데' 가장 인색한 나라로 유명하다. 심지어는 UN에 내는 일종의 회비도 몇 년째 밀렸다가 반기문총장의 당선을 위해 지불했다지 않은가.
나도 한국에 있을 때는 일본이란 나라가 그렇게 대단해보이지는 않았다. 그저 우리나라보다 좀더 잘 사는 나라, 정도로 보였다. 하지만 외국에서 바라본 일본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큰 나라였고, '과연 우리가 따라갈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대단한 나라였다. 장사꾼의 기질이 온 몸에 배여 돈을 벌기도 잘하고 돈을 쓰기도 잘 쓰는 그런 나라였다. 말 그대로 '레베루가 달랐다'.
힘들다고는 하지만 우리도 이제 점차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가고 있다. 우리도 그들처럼 그냥 잘 벌뿐 아니라 잘 쓸 줄 아는 지혜를 가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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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글을 쓸 때 목적은 '돈을 제대로 쓸 줄 아는 일본'이었는데, 어쩌다보니 '잘 사는 나라, 일본'이 되어버린 것 같군요. 국내뿐 아니라 국외의 유적과 유물, 예술작품의 보존과 복원에까지 신경쓸 줄 아는 그들을 배우자는 취지였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