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부터 매달 오프라인 잡지에 영화리뷰를 쓰게 됐다. 헌데, 영화볼 시간이 없다. 또 재탕이다. ㅠㅠ
오프라인이라 분량제한도 있어서 쓰기가 어렵다. 말을 하다가 만 느낌, 화장실 가서 뒷처리 안 한 기분이다.
영화 보기를 좋아하지만 이렇게 의무가 생기면 더 못 보게 되던데, 큰일이다.
매달 두편은 기본으로 봐줘야 하는데 그게 가능할는지... ㅠㅠ;;
가 연주하는 ‘사랑의 기술’
한순간의 감정이 아닌 영원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
원스 (Once, 2006, 존 카니)
워낙 좋게 본 영화여서 만나는 사람마다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풀곤 했는데, 한 달 동안의 대화를 수치로 통계 낼 수야 없는 일이지만, 퍽 재미있는 경향을 발견했다. 여자들은 가슴이 무너지도록 좋다, 올해 최고의 영화다, 이런 칭찬일색의 평이었다. 남자들의 경우도 대부분 호평이 많았지만 뒤에 붙는 말이 있었다. “그런데 끝이 이상해. 이야기를 하다 말고 갑자기 끝낸 느낌이야.”
이것이 성별로 나뉠 수 있는 평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내 경험만으로는 그랬다. 남자들은 남자와 여자가 좋아하는데 진한 연애라도 하다가 헤어질 것이지 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각자의 길을 떠나면서 영화가 끝나는지, 아쉽다고들 했다.
이 영화를 두고 갑론을박 토론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사실 그때마다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었다. “바로 그 때문에 이 영화가 훌륭한 거야.”
사랑은... 순간의 ‘필’이 아닌 관계
남자는 호기심 많고 낯선 이에 대해 벽이 없는 여자와의 첫 만남에서 호감을 느끼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뭐 저런 희한한 여자가 다 있어?’ 하는 투였다. 두 번째 만남에서 역시 마찬가지였다. 진공청소기를 질질 끌고 와서는 무작정 고쳐달라고 요구하는 그녀가 귀찮기만 했다. 그러다 음악이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찾았고 함께 연주를 하면서 비호감은 호감으로 바뀐다. 그리고 여자에게 말한다. “오늘 여기서 자고 가요.”
낯선 이에게 전혀 거리를 두지 않던 여자는 남자의 하룻밤 요구에 노골적으로 불쾌함을 표하면서 남자의 집을 나온다. 물론 ‘착한’ 남자는 다음날 곧장 여자에게 사과하고 여전히 두 사람을 묶어주는 음악을 통해 차곡차곡 관계를 쌓아간다.
보통 사랑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필이 꽂힌다’ ‘첫눈에 반했다’는 표현을 종종 쓴다. 물론 처음 호감을 가지는 순간에는 그런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영화가 보여주는 사랑은 감정이 아닌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남자와 여자를 이어주는 끈은 순간의 감정이 아니었다. 남자는 그놈의 ‘필(feel)’로 여자에게 다가갔다가 보기 좋게 퇴짜만 맞았다. 그러나 여자는 남자의 음악을 통해 그의 지독한 외로움을 읽고 음악에 대한 열정을 읽는다. 남자는 여자의 일상을 보며 그녀의 고달픔과 음악에 대한 그리움을 읽는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가 원하는 것을 채워주기 위해 ‘헌신’한다. 여자는 앞장서서 남자의 데모앨범 제작을 주도하고 피아노에 코러스까지 도맡는다. 남자는 전 재산을 털어 그녀가 평생을 모아도 사지 못할 피아노를 선물한다.
음악은 여러 악기와 목소리가 어울릴 때 더 아름답다. 기타의 부족한 부분은 피아노가 채워주고 코러스는 메인 멜로디의 밋밋함을 풍성하게 한다. 남자와 여자는 기타와 피아노처럼, 멜로디와 코러스처럼, 그렇게 서로의 빈틈을 채워주며 감동적인 합주를 만든다.
악기점에서 남자와 여자가 처음으로 기타와 피아노를, 멜로디와 코러스를 맞춰보는 장면은 이 영화가 이야기하는 ‘사랑의 기술’을 영상과 음악으로 표현한 명장면이라 할 것이다. 서로의 음역과 주법에 대해 알아갈 때까지 남자와 여자는 악보와 서로의 눈을 번갈아 응시하며 조심스레 연주한다. 후렴구 정도 흘렀을 때는 이제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그들은 서로의 눈을 놓치지 않는다. 그렇게 상대를 주의 깊게 관찰하고 필요한 것을 찾아가는 과정, 그 과정이 협력해서 화음을 이루는 과정이 바로 사랑이라고, 이 영화는 이야기한다.
사랑은... 결과가 아닌 과정
그렇게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놓고도 남자와 여자는 사랑한다는 그 흔한 고백조차 하지 않는다. 물론 여자가 남자에게 체코어로 ‘밀루유떼베(나는 당신을 사랑한다)’라고 말하긴 했으나 남자는 전혀 알아듣지 못했으므로 고백이기보다는 방백이라 할 것이다. 두 사람은 몇 날 며칠 밤을 새우며 연습을 하고 녹음하면서 그 흔한 키스도 하지 않았다. 완벽한 데모앨범을 완성할 즈음, 두 사람의 감정이 최고조로 높아졌다 싶을 즈음, 남자와 여자가 각자의 길을 떠나면서 영화는 끝난다. 이러니 ‘이야기를 하다 말고 갑자기 끝낸 것 같다’는 불평이 쏟아질 만도 하다.
그러나 이 때문에 이 영화는 그 흔한 사랑타령 영화와 맥을 달리하는 영화가 되었다. 두 사람이 한 사랑은 다다라야 할 어떤 결론(결혼, 그도 아니면 진한 연애)이 아니라 과정 그 자체였다. 그들이 관계를 맺는 과정은 고스란히 데모앨범에 담겨 있고 남자가 남기고 간 피아노에 남아 있다. 각자의 길을 떠난 후에도 남자는 계속 앨범을 만들 것이고 여자는 계속 피아노를 연주할 것이기에 그들의 관계는 음악으로 여전히 지속될 것이다.
하룻밤 자고 가란 말을 끝내 거절했던 여자, 오토바이를 ‘한번’만 타보자는 여자에게 끝내 키를 내주지 않았던 남자, ‘순간’이 아닌 ‘영원’을 향한 과정을 택했던 의 사랑은 그래서 그 음악만큼이나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