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본론에 들어가서 예배와 우리의 감정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 또한 예배에서 우리의 감정 표현은 어떠해야 하는가?예배를 통해서 우리의 감정의 어떤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가? 등등을 이야기 해보려 한다. 우선, 예배와 우리의 감정은 어떤 상관이 있겠는가? 결론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아주 아주 많은 관계가 있다. 그리고 아주 깊은 관계가 있다. 그리고 예배에 있어서 감정의 표현은 필수적일 뿐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가 되는 것이다.
앞서 타종교의 예배를 거론하며 그들에게 있어서 감정이란 것은 마음 저 밑바닥 심연으로 계속해서 가라앉혀야 만 하는 대상으로 파악되었다. 그러기에 그들의 예배에선 엄숙함이 강조되었다. 그들의 예배에선 웃음이 거의 없다. 아니 그 엄숙한 상황에서 웃음을 웃을 수 있는 자가 누가 있으랴... 천주교의 미사에서도 비슷한 것을 목도했다. 미사의 엄숙함은 사찰에서 보았던 것보다도 오히려 더 무거움을 준다.
그런데 기독교의 예배는 어떠한가? 여기엔 웃음이 있다. 그래서 누구나 자신의 감정의 자연스러운 표출이 허용된다. 기쁠 때엔 기쁨의 웃음으로 슬플 때엔 슬픔의 눈물로 감정의 표현을 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진정한 기독교의 예배이다. 이러한 진정한 기독교적 예배에 대해 이해함이 없는 경우에 사람들은 기독교를 싸구려 종교 보듯이 한다. 왠지 기독교 예배는 저질 코미디 프로와 비유하고 천주교나 불교의 예식은 제대로 된 영화에 비유할 수 있다고나 할까? 어찌 감정을 억제하고 잠잠히 가라앉히는 종교는 고등종교로 취급되고 감정을 표출하고 특히 그것이 상한 감정임에도 불구하고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놓는 종교를 저급한 하등종교로 보게 되는가 말이다. 이는 분명 우리 민족의 정서에만 있음직한 사고방식이다.
나는 내가 경험한 각 대륙의 나라들과 민족들 안에서 드려지는 기독교 예배에 그들만의 독특한 방식의 예식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또 하나 공통점도 발견했다. 독특함과 동시에 공통점은 각기 민족과 방언대로 감정을 표출하는 것이었다. 즉 예배 속에서의 감정표현은 공통점이요, 그들만의 방식대로 하는 것은 독특함이었다. 가령 브라질 민족은 상당히 춤사위와 노래에 능한데 이를 예배시에 잘 활용하여 이것을 통하여 감정을 표현한다. 또한 카자흐스탄은 역시 노래와 춤이 능한 민족이지만 이들에게는 한국적 정서에 가까운 “한”과 같은 슬픔을 머금고 있는 듯 하다. 그래서 이들이 만들어내는 찬양곡들은 어딘지 모르게 슬픈 곡조가 스며들어있어서 듣는 이의 가슴을 울린다. 비록 가사를 이해하지 못한다해도 말이다.
그렇다 기독교 예배에 있어서 감정표현은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 아니라 꼭 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시편 51편 17절에 보면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상처나고 깨어진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에 그것을 숨기거나 그 상처나 깨어짐을 가리거나 나을 때까지 기다려서 그 후에 건강한 마음을 회복한 후에 제사하러 나오라 말씀하고 계신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그런 깨어진 마음과 상한 심령을 가지고 있을 때에 그것들을 가지고 솔직하게 그것을 내어보이며 하나님 앞에 나아오기를 기대하시고 계시다는 것이다. 그렇게 솔직한 감정표현을 하나님은 기뻐하신다는 말이다.
우리는 우리의 상한 심령, 깨어진 마음을 숨길 필요도 없고 숨겨서도 안된다. 그것은 기독교적인 것이 아니다. 혼자 백팔번뇌하여 스스로 해결하고자 고민하고 염려하는 가운데 해탈의 경지에 다다르도록 하는 것이 불교다. 우리 기독교인들 중에도 은연중에 불교적 관념론에 헤매고 있는 자들이 있는것 같다. 그러기에 자신의 상한 심령이 드러날까봐 감정을 표현하기를 거부하고 꽁꽁 싸매 놓은 후에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 한번 솔직하게 자신에 대해 돌아보자. 나는 얼마나 예배시에 나의 감정을 주님께 표현하는 일에 진실된가? 나는 주님을 향하여 나의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 어렵다고 느끼는가? 나는 다른사람이 자유롭게 주님앞에 자신의 감정표현을 하는 모습에 이상히 생각하거나 시기, 질투하거나 하고 있진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