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누벨바그의 두 맹장 장 뤽 고다르와 프랑수아 트뤼포는, 1940년대 말 자크 리베트, 에릭 로메르, 클로드 샤브롤 등 뒷날 누벨바그 동지가 된 사람들과 함께 파리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당시의 두 사람에 대한 인상을 자크 리베트는 “고다르는 분노를, 트뤼포는 글솜씨를 갖고 있었다”라고 했다. 분노를? 이때의 고다르는 확실히 특별한 지식이나 재능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이 그룹에서도 국외자에 가까웠고, 비평가 시절에도 다른 멤버들이 뭘 쓰겠다고 한 다음에야 자신이 쓸 것을 정할 만큼 소극적이었다고 한다. 따지고보면 ‘분노’에서도 더 출중할 건 없었다.
트뤼포가 발군이었다. 1954년 ‘아버지의 영화’를 난자한 격문 을 써 영화계를 발칵 뒤집어놓으며 누벨바그의 출현을 알린 사람이 트뤼포였다. 기성 영화인들로부터 ‘깡패’ ‘아버지의 무덤을 파는 묘굴꾼’이라는 악명을 얻었지만, 폭포수 같은 문체, 영화사와 예술사를 누비는 백과사전적 지식, 방약무인의 거침없는 태도로 무장한 트뤼포는 이 문제적 집단의 의심할 수 없는 핵이었다. 멤버 중에서 제일 먼저 데뷔작()을 만들어 단숨에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것도 트뤼포였다. 한결같이 영화작가를 꿈꾸던 이 전투적 영화광들에게 트뤼포는 영웅적 전사였다. 클로드 샤브롤은 “모든 것은 트뤼포로부터 시작됐다. 그 덕에 우리는 모두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트뤼포로부터 배웠다”고 회고했다. 한편 고다르는 가 칸에 출품될 프랑스영화로 뽑혔을 때, 에 “우리는 이겼다. …전투에서 이긴 거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의미심장하게 썼다.
과연, 전쟁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늘 엉거주춤해 보이던 고다르는 곧바로 영화사 최고의 문제적 데뷔작 를 내놓으며 영화의 전통, 그리고 세상의 전통과 싸움을 시작했다. 이후 고다르의 , 트뤼포의 등, 두 사람이 내놓은 일련의 작품들은 모더니즘영화의 전범으로 등재되면서 누벨바그의 출현을 영화사 최대의 사건으로 만들어나갔다.
6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두 사람의 영화사적 지위는 역전됐다. 고다르는 영화의 개념 자체를 끊임없이 무너뜨리면서 다시 써나간 미학적 혁명가였던 반면 트뤼포는 예술과 인생, 영화와 허구 사이의 경계를 성찰하면서도 영화의 정서적 환기력이라는 전통적 미덕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트뤼포를 고다르와 대비해 대중적이며 상업적인 감독으로 치부하는 평자도 있다. 오늘까지도 여전히 미완성인 고다르의 필모그래피는 간단한 요약은 물론 온전한 해독이 불가능할 정도로 전방위적이며 다층적인 싸움의 연대기다. 68년 5월 혁명 전후로 마오쩌둥주의에 경도돼 형식과 내용은 물론이고 제작과 배급방식에서마저 혁명성을 부르짖다가, 개인적 영화로 돌아오면서 사운드와 이미지의 관계를 다시 정립했던 70년대 중반을 지나, 80년대에 들어서면 TV이미지에 거센 싸움을 건다. 고다르가 대중과 점점 멀어지며 고독한 광인의 싸움을 벌이고 있는 동안, 트뤼포는 상대적으로 안정된 조건 속에서 같은 진중하고 교양미 넘치는 수작 목록을 이어갔다. 고다르와의 교분은 계속 이어졌으나 에서 고다르가 나오는 장면을 트뤼포가 잘라낸 일을 계기로 두 사람은 격한 편지를 주고받으며 심각하게 다투기도 했다.
트뤼포는 84년 10월에 뇌종양으로 눈을 감았다. 홀로 남은 고다르는 종종 ‘영화의 종말’을 말하며 더욱 고독한 싸움에 빠져들었다. 88년 간행된 트뤼포의 서문에서 고다르는 절망적 어조로 이렇게 썼다. “우리를 입맞춤처럼 묶어주었던 것은 …스크린, 다름 아닌 스크린이었다. 그것은 우리의 삶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우리가 오른 벽이었고, 벽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우린 그 벽을 오르는 데 너무 많은 것을 쏟아부어, 벽은 마침내 다가온 명성과 장식과 선언들에 깔려 부서져버렸다. 우린 새턴(아비를 낫으로 살해한 신)에게 잡아먹혔다. … 프랑수아는 아마도 죽었을 것이다. 난 아마도 살아 있을 것이다. 그렇다한들, 무슨 차이가 있으랴.”
[허문영, 씨네21]
감히 나 따위가 좋아한다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멀리 저 높이 계신 이 분들.
이 세상에서 영화를 가장 사랑하는 영화광들이자 그렇게 사랑했기 때문에 영화라는 예술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순수한 본질에 대해 오롯이 치열하게 연구하고 작업하며 영화를 탐미했다. 누군가 나에게 예술로서의 영화가 무엇이냐라는 선문답 같은 질문을 한다면 적어도 지금의 나는 이 분들의 영화를 보라고 답할 수 밖에 없다.
고백하자면 이 분들의 영화는 많이 보지 않았는데, 사실 일부러 보지 않고 있다. 이 분들의 영화를 보면서 생각하고 즐거워하기에는 아직 내가 너무 많이 모자르다는걸 알고 있기 때문에, 두 분의 영화를 그냥 그렇게 쉽게 대충 보고 싶지가 않아서 슬프지만 고이 모셔만 놓고 있다. 이 분들의 존재는 나에게는 이미 영화 그 자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