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데없지만 고백 하나만 하자. 이번 시즌 컬렉션을 취재하는 것은 좀 힘들었다 . 빡빡한 스케줄이나 힐을 신고 걷는 돌바닥 때문이 아니라 , 자꾸 터지는 웃음 때문에 . 진중한 분위기 속에서 몇 번이나 방정맞게 터지는 ‘으흐흐’ 때문에 순간순간 허벅지를 꼬집어야 했던 곤혹스러운 기억 . 특히 돌체 &가바나 쇼를 보면서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느라 혀를 다 깨물어야 했다 . 디자이너를 미국 우익 세력이나 푸틴 대통령에 빗대어 풍자하는 영국식 유머와 같은 이유라면 좀 더 재밌어할 독자가 분명 있겠지만 , 돌체 &가바나의 쇼는 나무랄 데 없이 훌륭했고 , 그저 몹시 개인적인 이유로 그랬다 .돌체 &가바나 쇼의 오프닝을 장식한 지젤 번천이 금빛 튜브 드레스를 입고 메탈 소재의 거대한 코르셋 벨트를 번쩍이며 강렬한 워킹을 선보이자 , 객석 여기저기에선 탄성이 터져나왔지만 , 나는 , 말했듯 , 혀를 깨물어야 했다 . 최근 허리를 다쳐 척추 교정 장치를 하고 다니는 지인의 모습이 오버랩되었기 때문이었다 . 고통에 신음하는 그가 안쓰럽긴 하나 , 임신 6개월 차의 복부 곡선을 3년째 유지 중인 그가 코르셋 모양을 한 교정 장치를 하고 마치 터지기 일보 직전의 콜라병처럼 앉아 있던 그 모습에 아름다운 지젤의 얼굴을 합성해놓으면 누군들 웃음이 터지지 않을까 .
물론 많은 디자이너들이 척추 보조 장치처럼 생긴 벨트를 만든 건 아니지만 , 정확히 갈비뼈 바로 아래 허리선을 ‘묶은’ 벨트들은 그 어느 시즌보다 직설적이었다 . 비단 콜라병 같은 내 지인이 아니더라도 , 누구나 쉽게 떠올릴 연상 작용 .
이 이야기를 듣곤 크게 웃던 엄마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괴상한’ 유행은 사실 복식사의 성문 영어와도 같은 패션의 기초이자 이번 시즌 트렌드의 중심을 차지한 주인공이다 . 재킷 , 코트 , 카디건 , 원피스… 거의 모든 의상에 매치된 벨트의 도열은 컬렉션이 뉴욕을 지나 런던 , 밀라노 , 마지막 파리로 이르기까지 끝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
개인적으로 허리선을 만져보지 않고서는 찾기가 쉽지 않은 체형인 자의 자격지심과 울분 어린 발언임을 부정하지 않겠으나 , 이번 시즌 트렌드를 소화해내려면 각종 유산소 운동 및 ‘웅크린 표범’과 같은 기이한 이름과 자세의 요가 동작 , 그게 귀찮다면 틈틈이 훌라후프라도 열심히 돌려야 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 가느다란 허리를 가진 자에게는 ‘잘록’이 , 그렇지 못한 자에게는 ‘올록볼록’이 주어질 테니까 .
패션이 반복의 역사이자 , ‘꿈에서 본 것만 같은 장면’이라는 것에 대해선 말해 무엇하나 싶으니 , 지금 우리의 고민을 똑같이 떠안고 , 그러나 더욱 처절한 괴로움을 맛봐야 했던 여성들에 대해 떠올려보자 .
괴로운 여성 제 1호는 BC 200년 청동기 미노아 문명의 코레타인 . 십몇 세기도 아니고 기원전이라니 , 잘록한 허리에 대한 인류의 열망은 호모 사피언스 유전자부터 들어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 그리고 제 2호 , 16세기 유럽의 미의 기준인 풍만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에 부응해야 했던 프랑스와 영국 여성 . 일명 개미 허리를 만들기 위해 조이고 또 조이는 코르셋을 착용한 그 시대의 여성들은 무려 15인치라는 경이로운 사이즈를 만들어내는 기염을 토했다 . (비비안 리의 18인치는 상대도 안 된다 .) 그것이 심각한 장기 손상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다 ! 실제로 당시 코르셋의 부작용으로 사망에 이른 여성이 부지기수였고 , 검시 결과 장기의 위치가 뒤죽박죽 엉키거나 간이 파열된 경우도 있었다고 .불행 중 다행은 , 이번 시즌 가느다란 허리에 대한 디자이너들의 애정이 간의 위치를 위장 옆으로 옮겨놓을 정도는 아니라는 것 . 하지만 여전히 명확한 것은 우리 중 다수가 복부 다이어트를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다 . 물론 시즌 흐름이 이러하니 남쪽으로 이동하는 아프리카 물소 떼처럼 우르르 패션 빅 팀이 되자는 권고는 아니다 . 그건 더블유 코리아를 읽는 패션 지성인이라면 ‘혼자서도 잘’ 피해내는 사항 아닌가 . 다만 , 에디터의 체형 관련 불만과 독특한 연상작용을 일으켰을지언정 ,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이 만든 예쁘고 , 화려하며 , 시그너처적이고 , 다채로운 컬러에 흥미로운 소재를 대입한 벨트에 집중하지 않고서는 2007 F/W 패션에 대해 논할 수 없을 거라는 이야기다 .
돌체 &가바나에 필적할 집중력을 보인 칼 라거펠트의 펜디 컬렉션에서는 육중한 퍼 코트 위에 매치해 그 무게를 덜어낸 컬러풀한 벨트를 만날 수 있었고 , 발렌시아가 쇼에 선 니콜라스 게스키에르의 모델들은 패딩 점퍼를 오비 벨트로 조인 채 런웨이를 활보했다 . 네덜란드 화풍에서 영감을 받았으나 , 그들의 자유로운 복식에 큼직한 버클 벨트를 채워 보다 시크하게 변모시킨 루이 비통의 마크 제이콥스도 허리 예찬론자 중 하나 . 셀린의 이바나 오마지쉬와 구찌의 프리다 지아니니는 활동적인 쇼트 재킷과 우아한 드레스 위에 벨트를 더하는 스타일링으로 풍만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가 성적인 기호에 국한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보여주었다 . 이렇게 이번 시즌은 리얼 웨이에 적용할 런웨이가 다수 . 게다가 둔해 보이기 쉬운 패딩이나 모직 코트를 입고도 선을 만들어낼 대안도 다수다 . 물론 체험한 바에 의하면 , 잘록한 모양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복통은 감내해야 하고 , 자칫 잘못하면 미쉘린 타이어의 형상으로 손쉽게 변신한다는 부작용이 있긴 하지만 .
자 , 이제 선택은 당신의 몫 . 잠깐 , 나의 선택은 무엇이냐고 ? 벌써 한 걸 뭐 . 실은 , 컬렉션에서 돌아오자마자 훌라후프 샀다.
- 자세한 내용은 9월호에서 확인하세요!
- 에디터 | 최서연
- 출처 | www.w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