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 11. 15
5:30
눈을 떴다.
시험장은 여의도여고
제2외국어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훨씬 더 가까운 동일여고에서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시험장 발표나고 나서 제2외국어를 선택한 것을 후회했고 나는 다른 아이들보다 일찍 일어나야했다.
눈을 뜨고도 오늘이 수능날이라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그저 평소처럼 등교하는 것 같았고 단지 그 학교가 여의도여고로 바뀐 것 뿐이었다.
평소대로 세수하고 머리감고 렌즈도 끼고 옷입고 밥먹고 양치질도 하고 고양이 밥이랑 물 챙겨주고 .. 그저 다른 점이 있었다면 수험증이랑 신분증을 확인했던 것 뿐..
7:00
집을 나섰다.
내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가려면 버스를 타고 신림역에서 내려서 지하철을 타고 영등포구청에서 또 갈아타서 여의나루역까지 가야했다. 그렇게되면 버스탈땐 길이 막혀서 마음졸이고 지하철에선 사람들이 많아서 짤려서 다음차를 타야될 것과 사람들사이에 껴서 제대로 못내릴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아빠차를 차고 가기로했다. 길이막혀서 늦을까봐 걱정 많이 했었는데 아빠가 날아서라도 잘 데려다 줄테니까 걱정말라고 하셨었다. ..그래서 아빠차를 타고 출발.
역시나 길은 꽉 막혀있었고 아빠도 약간 걱정이 되셨는지 느림보차(초보운전을 붙이고 가지도 못하던..-_-)에 욕도 하시고(나도) 최대한 빨리 가기 위해서 끼어들기도 서슴지않으셨다..(ㅋㅋ)
좀 더 큰길에 나가니 차는 훨씬 더 많았고 정체는 더 심했다. ..그래서 우리아부지께선 .. 버스전용차로로 비상깜빡이를 키고 달리셨다!!(와우!!ㅋㅋ)
내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뛰기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그 순간부터 '아, 내가 진짜 수능 보러 가는구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꽉채우면서 가슴이 터질 듯 뛰었고 아빠가 걱정하실것 같아서 애써 참는 눈물이 삐질삐질 눈에서 비집고 나오고 있었다. 울컥울컥 감정의 둑이 터진듯이 이성적인 생각은 들지 않았고 갑자기 엄습해오는 두려움(제 시간에 못 가면 어쩌지?, 시험이 어려서워 손도 못대면 어쩌지, 실수하면 어쩌지..?, 등등..)과 수능날을 완전히 말아먹었던 사람들의 무용담만이 내 머릿속에 가득차서 .. 아무리 무섭고 힘들어도 가진 적 없던 느낌들.. 그 감정들이 나를 애워싸버렸다.
다행히 꽤 이른 시각에 여의도에 진입.
시험장이 가까워지는 것이 느껴지면서 다시 평정심을 찾을 수 있었다.
시험장 앞은 골목이었고 옆에 세워논 차들 때문에 차들이 한줄로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걷는 것보다 느릴 것 같아 아빠한테 말했더니 아빠가 짐이 무겁다면서 옆에 세워져 있던 차들 사이에 우리 차도 세우고 같이 내려서 짐을 학교 앞까지 들어다 주셨다. (고마워요 아빠! 유일하게 그나마 고3 딸 신경써준 가족!!ㅠ)
심호흡도 하면서 정신을 가다듬고 고사실로 입실했다.
김밥먹은 어떤년때문에 기분이 팍 상해버렸지만 저딴년 신경쓰다 내 시험을 망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터치하지 않았다. 내 자리에 짐도 다 내려놓고 한번 앉아보고 준비도 좀 해놓고 화장실도 갔다왔다.
1교시인 언어영역에는 나름 자신이 있었기때문에 아무 준비도 해오지 않았다.(이런 **년. 정말 후회한다.) 그래서 ebs외국어영역 문제집 펴놓고 단어들 중심으로 쭉쭉 훑어보았다. 감독선생님들이 오셔서 안내사항 전하고 핸드폰 걷어가고 소지품 앞으로 내라고 할 때까지.
8:20
1교시 언어영역 시작
황춘희선생님이 말씀하셨던 그 10분이나 되는 시간, 그 시간이 나한테는 없었다. 듣기시작하기 거의 바로 전에야 시험지를 받을 수 있었다.. 듣기방송 시작과 함께 시험 시작.
듣기.. 여기부터 헤메기 시작했다. 중간에 한순간이었지만 방송을 놓쳤다.(그래서 듣기부터 틀렸지..)
쓰기.. 쓰기는 거의 틀려본 적이 없었기때문에 술술 맞춰가면서 풀었다. 중간에 신경쓰이는 한 문제가 있었지만 더 고민한다고 생각날 것 같지 않아서 넘어갔다.(제길.)
읽기와 독해.. 젠장. 중간에 시계를 봤는데 시간 계산을 잘 못했다. 바보같이. 시간이 많은 줄 알고 헷갈리는거 고민도 해가면서 느긋하게 풀었다. ..뒤에 지문 4~5개 남은것 같은데 20분 남았단다. 놀라서 시계를 다시 봤다. 내가 시간을 잘 못 본거다. 속으로 '젠장'을 연발하며 문제를먼저보고 지문을 보면서 문제에 필요할 만한 부분만 읽었다. 정말 급했다. 중간에 아는 작품이 나왔는데 하필이면 평소 접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그렇다고 다 읽을 순 없었다. ㄱㄴㄷ 표시된것만 읽고 문제 풀고 넘어갔다. 비문학. 할인률이 뭐냐. 바겐세일 같은 것도 아니고 젠장. 이부분에서 머리가 터지는 줄 알았다. 또 대충 중요단어만 찾아서 읽고 문제 풀었다. (이 지문에 3점짜리를 내가 정답을 찍었는지 딴걸 찍었는지 도저히 기억이 안난다.) 마지막으로 나왔던 흐르는 북. 으악 이것도 아는 내용인데 급하니까 머리가 새 하얗다. 이건 아예 읽지도 못했다. 또 ㄱㄴㄷ만 보고 풀고 찍었다......
10:00
그렇게 언어영역을 끝냈다.
(마킹은 제대로 했을까-_- 이제와서 걱정된다)
쉬는 시간에 고민했다. '뛰쳐나갈까?' 그나마 믿었던 언어를 말아먹자 처음 들었던 생각이다. 그런데.. 퇴실해서 갈 데가 없다. 난 집도 먼데.. 그냥 화장실 갔다. 이왕 왔는데 다 풀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우리 담임선생님이신 이성선선생님.. 수학선생님이시다.. 2교시.. 풀어야겠다(ㅋㅋ)
뽑아온 ebs인터넷 모의고사를 폈다. 44점 받았던거.. 특기적성을 끝내고 나선 터치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수학을 놓았었다. 그리고 나서 풀었던 시험지. 44점. 수능에서 이점수 받으면.. 젠장. 공식따윈 없다. 그냥 푸는 방법만 살펴봤다.
10:30
2교시 수리영역 시작
시험지 받았을 때 손대지 말래서 계산 문제.. 눈으로 풀었다.
시험 시작을 알리는 종과 함께 계산문제 눈으로 푼대로 체크하고 넘어갔다. 왠일인지 중간에 2개 빼놓고는 술술 목탈 때 물마시듯 풀어나갔다. 속으로 생각했다. '이런 젠장 만점이 수두룩하겠구만' 다 풀고도 시간이 남았다 많이. 계산문제부터 8번까진가? 검산했는데..(답맞춰보니까 계산 문제도 틀렸다-_- 2점짜리......) 그 다음부턴 안했다. 못 풀었던 문제에 도전했다. 어머, 다시보니 풀린다! '왠일이니!!'를 연발했다.(속으로) 와... 다 풀었다. 내 생애 처음으로 수리영역 다 풀었다. 진짜.. 다 풀었어. 또 시간이 남아서 수험표 뒤에 답까지 체크했다.(야르~!)
2교시 종료 5분 전부터 샤프나 만지작거리면서 쉬었다.(시험지 다시 볼껄..)
12:10
2교시 종료, 점심시간
옆에 옆에 반에서 애들과 모여서 밥을 먹었다. 엄마한테 밥은 쪼꼼 싸고 반찬을 여러종류로 많이 싸달라고 했다. 이런.. 보온이 하나도 안됐다. 찬국에 찬밥을 말아서 먹었다.. 반찬은 다 남았다.. 밥 많이 먹으면 나른하고 속도 안 좋을 줄 알았는데. 진짜 나 천하태평이긴 했나부다. 시험장 올때의 그 긴장감?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밥도 다 먹고 초콜릿도 먹고 애들이랑 떨들며 놀고 참.. 소풍온 것 처럼...ㅋㅋ
화장실도 갔다가 오고 아침에 보던 ebs 문제집도 다시 봤다.
13:10
3교시 외국어영역 시작
으앙ㅠ 제일 자신없는, 제일 못 하는, 만년 4등급이었던, 외국어영역!! 시작했다. 외국어영역.. 진짜.. 담임선생님 말씀처럼 외국어영역때문에 대학 못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고3되고 모의고사보면서 .. 이젠 길가다 알파벳만 보여도 욕이 절로 나올 정도로 징그럽고 하기 싫고 나에게 걸림돌이 되었던 외국어영역 시험이 시작된 것이다.
나는 시험지를 받자마자 쪽수 확인하는 척 하면서 맨 뒤를 펴 놓았다. 모의고사보면서 한번도 풀어본 적 없는 맨뒷장, 맨 마지막 지문. 어떤 인간인지는 몰라도 personA와 personB라고 지칭되며 자기주장하는 이 두 인간들을 시험시간에 처음 대면하게 된 것이다. 난 항상 그랬지만 이번에도 역시 단어 하나하나 무슨 뜻인지 전혀 알지 못한체 분위기 파악하면서 읽어 내렸다. 손을 책상에 못 올리니 줄도못치고 동그라미도 못치고 눈으로만 읽느라 더 헷갈렸지만 난 풀어냈다! 그리고 듣기평가 start.
듣기.. 뭐라는 거냐.. 그나마 독해보다 점수 잘나오던 듣기.. 마치 테잎이 씹힌 것처럼 중간중간 잘려서 들렸다.(나한테만-_-) 진짜.. 내가 그걸 어떻게 풀었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느낌가는대로 찍어내려갔다.
other than 듣기.. 문법인지 어휜지 독핸지 읽긴지 난 그딴거 모르는 무작정 읽고 보는거다. 무작정 읽는다 진짜 읽는 게 아니라 그냥 머릿속으로 발음을 해본다. 무슨 뜻인지 모른다. 뜻이나 해석따위 하지않고(..못하고,) 최대한 글 전체의 분위기를 파악하도록 노력하고 몇안되는 아는 단어들에서 내용을 유추한다. 그리고 중요해보이는 단어(무슨 뜻인지도 품사도 모르지만)에 동그라미를 치고 보기를 보면서 그 뜻을 유추한다(-_-;;;). 즉, 이것도 찍는거다ㅋㅋㅋㅋㅋ
종합해보면.. 다 찍었다는거다ㅋㅋㅋ 나름열심히 푼거지만 남이 보면 요리조리 짜맞춰서 찍는거.. 그래.. 이게 찍기신공이지!
정말 빠듯하게 마킹하고 끝났다.
그래.. 이제 한 동안은 빠이빠이다. 이 빌어먹을 English야 !!
14:20
외국어영역을 끝내고 화장실에 갔다. 이런 젠장 한층에 화장실만 4개 있던 우리학교와 달리 여의도여고에는 화장실이 1개밖에 없는 것이 문제였다. 여자애들이 쪼로록 한줄로 서서 화장실을 기다리는데 끝이 안보일 정도였다(진짜!). 하지만 2시간이 넘는 사탐시간을 견디려면 무조건 화장실에 가야했기때문에 줄을 섰다. 그리고 드디어 내 차례가 다가오고 있었다... 헉 휴지가 없다. 우리학교와 달리 칸에 들어가기전에 세면대 맞은편에 있는 휴지를 뜯어서 들어가야하는 여의도여고.. 그 중요한 휴지걸이에 휴지가 없는 것이다. '제길.' 슬쩍 훑어보니 다른아이들은 휴지를 들고 있다.(치밀한것들-_-) '젠장젠장' 다시 고사실로 들어갔다ㅠ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서 화장실에 다시 갔다... 줄도 다시 서고.. 우여곡절 끝에 화장실을 해결하고 나왔다. 입실시간에 겨우 맞춰서 들어갔다.. 결국 사탐정리한 거 하나도 못봤다. 평소에 아무리 열심히 했어도 바로전에 보지 않으면 생각나지 않는다던 사탐. 난 정말 당황했다. 평소에도 안했기때문에..-_-
14:50
4교시 사회탐구영역 시작
1선택 한국근현대사.. 이거 손 놓은지 오래됐다. 하고 싶은 과목도 아니었고 그냥 학교에서 하니까 했던 과목. 별로 신경도 안썼다. 뭐 결과야 뻔하지. 하나도 모르겠다. 이게 다 뭔말이냐. 쪼꼼 아는 것보다 아예 모르니까 마음이 오히려 더 편하더라. 그냥 술술 풀고 마킹하고 시험지 바꾸기전까지 쉬고 있었다. 제2감독관인지 제3감독관이 내 앞에 섰다(그래, 나 그 고사실 1번이다-_-. 답안지도 제일 먼저 걷히는 1번이라고. 왜 쳐다보니-_-)
2선택 정치.. 2학년때 정치선생님이셨던 서하나선생님덕분에 정말 좋아하고 나름 잘 할 수 있던 과목이었다. 그런데 은근 외워야될것이 많았는데 쉬는시간에 정리한걸 아예 못봤던게 마음에 걸렸다. 이것저것 헷갈리는 것 태반이로군. 바로 이거지 왠만큼 알고 왠만큼 모르는거. 머리를 쮜어짜내느라 정말 힘들었다. 근데 이 감독관은 왜 아직도 내 앞에 서 있는거야-_-
3선택 경제.. 배울땐 쉽게쉽게 배웠는데 문제풀때는 머리 터지는 과목. 2학년때 경제 선생님.. 정종순선생님.. 나 점수 잘줘서 좋아했는데.. 3학년되고 모의고사 풀면서 부터 느꼈지만.. 정말 문제풀때 필요한거 하나도 안가르쳐 주셨다. '젠장. 이게 다 뭔소리니 단어부터가 처음보는 게 나오면 나보고 어쩌라는 거니?' 속으로 시험지와 대화했다. 비록 시험지는 대답도 없었지만.. (답이라도 좀 알려주지.) .. 근데 뭐야 이 감독관들은 바톤터치했나-_- 이번엔 2번인지 3번인지 사람만 바껴서 내앞에 서있니.
4선택 사회문화.. 선택할때도 그냥 할거 없을거 같아서 선택했었다. 그러니까 물론 공부 안했지. ebs파이널 1회 풀어봤다-_- 그리곤.. 아무것도. 그 ebs파이널마저 해설도 못봤다. 그냥 언어영역풀듯이 풀었다. 정말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더라. 학교수업도 들은 적이없으니 어쩔 수 없지 뭐. 근데 이 감독관들은 날 감시하러왔나-_- 왜 나만 쳐다봐. 기분나쁘게, 난 수상한 행동도 안했다고!
16:56
사회탐구까지 끝났다. 나도 집에 가고 싶다. 내가 제 2외국어를 왜 선택 했을까. 미쳤지. 필요도 없는데. 집에 가고 싶다. 아냐 애들이랑 놀러가야되. 그냥 나갈까.
17:25
5교시 제 2외국어영역 시작
나는 중국어를 선택했지. 학교에서 배운게 중국어니까. 배울땐 정말 재밌게 배웠고 좋아했는데 뭐니 이게, 난 분명히 중국어1 시험지를 펴놨는데 왜 아랍어가 써있니? 뭐야 이게 정말.
됐다. 그냥 빨리 끝나기나 해라.
18:05
다 끝났다.
이거야? 이게 끝난거야? 겨우 이딴게 내 인생을 결정하는 거야?
정말 미쳤군. 정말 내가 지금 '수학능력시험'을 끝낸거니?
뭐 이렇게 황당해. 이 이후로 "정신 놓았다."
18:20 즈음
1~5고사실 퇴실하란다.
나왔다. 와..... 기다리는 사람들 진짜 많다. 난 언니 수능 볼때도 언니 안기다렸는데. 뭐 나도 기다려주는 사람 없지만. 아빠기다려야지. 아 추워... 너무 춥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사라지고 혼자 남았다. 진짜 춥구나.. 아빠는 언제 오는거야.
아빠다. 야르~! 아빠 차 타자마자 짐 다 내려놓구ㅋㅋ 친구들이랑 연락은 안되고 추워서 걍 아빠차타고 문래동에 갔다. 그리고 배가고파와서 아빠랑 둘이 자장면 시켜서 먹었다-_-
아빠는 일하러가고~ 나는 배회하다가 애들한테 전화했다. 윤진이랑 만났다. 윤진이네 학원갔다(목동) 술 쪼오꼼 마셨다. 지민이랑 연락이 됐다. 나갔다. 소리랑 민지도 만났다. 이시키들.. 어 그래.. 내 액면가가 몇이라구^^? 음.. 죽었어..
뭐 별로 한것도 없이 11시가 넘었다.
난 차 끊기면 안된다. 할것도 없는데 춥기만 하다. 집이나 가자.
12:00 쪼꼼 넘어서?
집도착. 와.. 오늘 수능 본날 안같고.. 그냥 휴일같다. 그냥 애들만나서 놀고 온거 같다. 수능보고나면 피곤하다고 그러던데.. 난 왜이렇게 팔팔한거지. 후후. 진짜 끝났네.. 이제 학생도 끝이고 청소년도 끝이고 내 인생도 끝.. 아니지.. 성적표 나올때까지는 실컷 놀고 나중일은 그때가서...
와. 어쨌든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