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앞서 말씀드리면 이 글은 픽션입니다.
제 싸이 다이어리에 썼다가 아는 사람들의 평가를 받고 싶었지만...
제 싸이가 방문자가 몇 명 되지도 않고 마땅히 한마디 해주는 사람들도 없어서 광장에 계시는 많은 분들의 시간을 조금씩 양해 받을 수 있을까 하고 광장으로 보내봅니다.
이런 이야기도 있으면 따뜻하겠다 싶어서 쓰게 된 짧은 글이지만 제가 전문 글쟁이도 아니고 그냥 취미로 쓴거라 평가 받고 싶어도 어디 내놓을 만한 실력도 아닌지라 여러분들께 부탁드립니다.
조언도 해주실 수 있으시면 부탁드리겠습니다.
여기까지만이라도 읽어주신 많은(?) 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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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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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가득 먹구름이 끼어있는 12월의 어느 날.
달 공원 벤치에는 어두운 하늘보다 더 어두운 얼굴을 하고있는 한 쌍의 남녀가 어색한 공기 속에서 침묵보다 무거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오랜.. 만이네요."
그녀가 한참만에 입을 열었다.
헤어진 이후로는 오랫동안 전혀 만나게 되는 일이 없었는데, 우연이랄까?
둘이서 아주 가끔 손을 잡고 오던 혜화동의 한 골목에서 다시 만나게 된건 순전히 시간이 만들어낸 장난같은 우연일 뿐이다.
그 곳은 우리가 별다른 추억을 새긴 적이 없었던 스쳐지나가던 거리였을 뿐이니까.
다만 한가지.
바이올린을 전공했던 그녀가 나에게도 악기를 배워보라며 오래된 악기상 쇼윈도에서 오래된 섹소폰을 구입하려고 눈독 들여서 손사레를 쳤던 기억이 있을 뿐이다.
그 날 그녀는 특유의 쾌활한 웃음을 입가에 가득 머금은 채로 내게 언젠가는 함께 대학로 거리에서 멋진 합주를 뽐내자고 했었다.
장난기 많은 그녀와는 다르게도 남들 앞에 나서기를 꺼렸던 나는 장난인줄 뻔히 알면서도 혹시 행여나 정말 날 끌고 그 거리로 나서지 않을까 싶어서 그녀가 무안해 할 정도로 딱잘라서 거절하고는 도망치듯 그 거리를 걸어나왔었고, 그녀는 그런 날 보며 무슨 사내가 그정도도 약속 못해주냐며 입술을 내민채 불만섞인 목소리로 말했었다.
악기상 주인이 깔끔한 성격이었던지 그 때 그 섹소폰은 언제나 먼지 한 번 쌓인적 없이 맑은 광을 내고 있었지만 이미 한참을 그자리에 있는 채로 팔릴 것 같지 않던 모습이었는데 오늘 스치듯 본 그 쇼윈도엔 섹소폰이 비워져 있었다.
나의 그녀였었던 여인이 찍어뒀던 그 악기가.
그녀를 보내고 난 후 비어버린 내 가슴처럼 그 섹소폰이 있던 자리마저 시리게 아려와 한참을 그렇게 서서 쇼윈도만 바라보다가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된것이다.
2년이 훌쩍 지나가버린 세월을 넘어서.
그때의 시절처럼 환하게 웃진 않고 있지만, 무언가 무거운 눈빛을 덮으려 입가에 가볍게 띄운 미소로 그녀가 내 안부를 묻고있다.
"나 많이 변했죠?"
예전 그녀는 날 만날때면 늘 가벼운 옷차림이었다.
멋을 부리기는 커녕 흔한 귀고리 하나 안하는 성격이었다.
항상 수수하게, 잔잔한 스타일의 의상만을 고집하는 그녀였다.
물론 처음부터 그렇게 했던것은 아니다.
작지만 깜찍한 브로치와 목걸이, 귀고리를 하는 날도 있었고 어떤 날은 강렬한 색상의 의상을 연출해 그리 크지않은 키의 그녀임에도 불구하고 카리스마가 넘쳐났던 기억도 있다.
그녀가 밟고 온 걸음걸음마다 도도함이 뚝뚝 떨어지는 듯한 착시마저 일으켰지만 그런 모습으로도 나를 향해 깔깔깔 속없이 웃으며 일이 끝나자 마자 온 터라 옷이 사업적이라며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지 말라던 멋진 여자였다.
눈썰미가 둔한 편인 난 그런 다양한 모습이었던 그녀가 언제부턴가 날 만나는 회수를 거듭할수록 간소한 옷 만을 입는것을 발견했고, 한번은 그로인한 불만을 다툼 중 얘기한 적도 있었다.
예쁘게 보이려 악세사리 하나라도 더 해보이던 그녀의 귀와 목에는 귀고리와 목걸이의 착용이 줄었고, 그날 그날의 기분에 따라 매일 다른 모습을 보여주던 의상도 점점 원색보다는 얌전한 색을, 짧은 치마 보다는 긴 치마를, 그리고 바지를 입는 것으로 바뀐것이다.
나를 만날수록 내 앞에서 꾸미는 모습이 사라지자 나와의 만남을 점점 대수롭지 않은 일로 치부한다고 생각했던 난 그런 그녀를 보며 대체 왜 그렇게 변한것인지 내가 이제는 아무것도 아닌거냐고, 내가 싫어졌으면 차라리 헤어져 주겠다고 히스테리를 부리듯 그녀를 향해 소리를 질러댔다.
그때의 난 까맣게 몰랐다.
다투던 순간에도 양 허리에 팔을 건 체 씩씩거리며 절대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불타오를 것만 같던 그녀가 왜 나의 그 한마디 불평에 놀라며 슬픈 눈빛으로 돌아섰는지...
「미안해요, 오늘은 내가 잘못했어요. 내일부터는 예쁘게 입고 나갈게요. 사랑해요.」
돌아선 그날 밤 그녀의 사과의 문자.
그때의 난, 내가 정말 잘한것인지 알았다.
그 후로 그녀는 정말 다시 처음 만난 그 날 처럼 웃고 장난치며 밝은 모습만을 내게 보여줬다.
우리 헤어지던 그 날까지..
그러던 그녀가 지금 얼핏 보아도 명품임이 분명한 품위가 엿보이는 얌전한 정장을, 마찬가지로 외국 물 잔뜩 먹인 명품 아이보리색 코트 깃 사이로 보이며 내 옆에 앉아있다.
날 떠나고 다시 그녀 본연의 색을 되찾은 모양이다.
"저 놓치고 후회하신 적 있죠? 후회하고 있죠?"
그때와는 다른 분위기이지만 여전히 내게 존댓말로 다소곳이 물어보는 그녀다.
아담한 키에 동안이라 나보다 몇 살 아래로 보이는 그녀이지만 사실 그녀는 나와 동갑이다.
그 사실을 모르고 만났을 때야 당연히 내가 나이가 많은 줄 알고 그녀의 존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 했었지만, 후에 왜 내게 존대 하느냐고 물었을때 그녀는 그냥 웃으며 한마디 하고는 말았다.
내 안에서 사랑이 시켜서요
그리고는 그게 편하단다.
그 후로는 나도 그녀도 더이상 그 일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고 덤덤하게 지냈다.
어차피 주변에서도 당연히 내가 연상인지 알기 때문에 묻는 일도 없었으니까.
그녀는 여전히 아름답다.
그녀는 원래 아름다움 자체였다.
모습도 예뻤지만 항상 밝았고 에너지가 넘쳐났다.
그것은 그녀의 배경에서 나오는 풍족한 재물의 에너지가 아니었다.
직장이나 지위에서 우러나오는 자부심 또한 아니었으며 그런 속물스런 여자였다면 내가 그녀와의 사랑에 빠지지도 못했으리라.
항상 밝게 생활하고 남을 위할 줄 아는 센스까지 소지한 여자가 외적인 착함까지 겸비했으니 대한민국 어느 남자가 넘어가지 않을 수 있을까.
다만 한가지 의문이 있다면, 태어날 때부터 보장받은 인생을 걸어온 그녀가 어째서 나같은 놈팽이 비슷한 인간유형에게 그 아낌없는 사랑을 쏟았던 것일까 하는 점이다.
그녀는 나와 교재하는 동안에도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다른 여자들이 숨기려 드는 몸무게나 키에 대한 얘기를 할 지언정 직업이나 집안에 대한 이야기는 불편해 하며 어떻게든 그 상황을 어물쩡 넘어가려고 했었다.
나도 처음 몇 번은 그녀도 사정이 있어서 그러려니, 때가 되면 나에게도 모두 말해줄 날이 오겠거니 하고 넘어가주곤 했다.
하지만 그렇게 몇달이 가고 사귄지 2년이 다되가는 날에도 피하려고만 하고 얘기 할 기미도 보이지 않는 그녀를 보며 나는 또 한번 큰 실망감을 느끼고 그녀에게 이야기 했다.
장난으로 사귀는 사이도 아니고 정말 진지하게 사랑한다면서 대체 무엇이 문제길래 이야기를 하질 않느냐며 날 정말 사랑하는 것이 맞느냐고.
난 정말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고 그녀를 이해하고 싶어서 그녀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갈구했다.
그녀의 모든것을 다 안아주고 감싸주는 세상에서 유일한 한 남자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사랑하기 때문에, 날 더 사랑하고 싶어서 이야기를 꺼내기가 어렵다던 그녀의 말도 귓등으로 흘려버린 체 거듭 그녀를 제촉했다.
한참을 그렇게 망설이던 그녀는 끝내 나의 독촉어린 요구를 들어주기로 결심했는지, 결코 그녀답지 않은 조심스럽고 걱정이되는 표정과 말투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 때의 나는 내 진실한 사랑에 하늘이 감동받아 나와 그녀를 더욱 끈끈한 연으로 맺어주려고 그녀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라고 굳게 믿었었다.
…하지만 그녀가 힘겹게 꺼낸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충격적인 이야기의 수준에서 그쳐주질 않았다.
그녀의 이야기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내 진실된 너른 사랑으로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점점 초과해 종국에는 내게 순간적인 정신적 공황까지 안겨주고야 말았다.
그녀는 분명 이야기 중간중간 나의 안색을 살필 필요와 의무가 있었을텐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야기에 대한 중압감에만 빠져 청자인 나의 반응을 고려하지 않는 중대한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그녀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대충 이러했었다.
그녀는 최근 대기업으로 성장한 K기업에서 은퇴한 회장의 늦둥이 딸로, 회장 내외의 풍족한 애정과 더욱 풍족한 재물의 축복을 받으며 자라났고, 철이 들어 자아에 대한 자각을 마쳤을땐 이미 몇개국
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정도의 능력과, 학업과, 기타 예체능마저 두루 섭렵했었다.
아들이었다면 좀 더 철저하게 교육을 받았을지도 모르지만 딸로 태어났다는 축복 덕분에 그녀는 대를 이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는 자유로웠고 회장도 어린 딸에게 스파르타식 교육을 시키기에는 마음이 여린 편이라 그녀가 원하는 방향의 교육만을 엘리트 코스로 깔아주었으며, 대학원만 졸업하면 작은 회사를 차려주고 딸이 회사를 키워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을 낙으로 노년기를 보낼 요량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그녀는 그녀가 다니던 명문대 옆 조촐한 전문대에 다니는 나를(어떻게 알게 됐는지는 그때도 말 하지 않았었지만) 알게 되었고 나와 함께하며 자신의 사치스럽고 혐오 스러운 모습을 발견하고 떨칠 수 있게 되었다고 하며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었다.
그녀의 말이 끝난 후 우린 서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내 표정을 살피느라 바빴고, 난 내가 그녀를 향해 내 초라한 눈동자를 보여주게 될까봐 그녀의 시선을 피하기 바빴다.
그날 밤 우린 서로를 배웅하지 않은 체 처음으로 수수하게 각자의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그날 밤 전화로 다음 날 부터 며칠간 여행을 간다고 했었다.
내게는 여행이라고 했지만 아마 또 엘리트다운 교육을 받으러 며칠간 떠난 것이었을 것이다.
밤새 잠이오질 않았다.
인생은 잘 짷여진 한 편의 드라마라고 말들 하지만 이런 리얼 드라마가 나의 그녀에게 라이브로 펼쳐지고 있었을 줄은 미쳐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다.
나는 다만 그녀가 날 만나기 직전 간신히 철이 든 부모님 사랑을 받고 자란 조금 있는집의 철없던 딸 정도였을 거라고만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 나와 사귀고 있었을 것이고 날 사랑하게 되면서 얌전해지고 착해졌을 것이라고 은연중 믿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정작 듣고보니 회장 외동따님 이시란다.
가진것 없고 배운것도 없는 나같은놈과 사귀는 이 공주님이 사실은 한 기업 회장님이 애지중지 키워놓은 보물중의 보물이란다.
덜컥 겁이나고 머릿속에 오만가지 상상이 스쳐지나갔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회장의 사주로 어느 음침한 뒷골목에서 내가 피를 흘리며 쓰러질 수도 있는 일이고, 또는 회장 부인이 날 조용히 불러내어 카페같은 곳에서 수표가 담긴 봉투를 슬쩍 내밀며 이정도면 자신의 딸에게서 비켜주겠느냐고 할 수도 있는 일이다.
TV에서만 보던 일이 일어나니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도 온통 그런류의 조악한 상상만 떠올리게 됐다.
내 진실한 사랑은 어떻게 된 것일까...
이틀 후 난 전화번호를 바꾸고 자취하던 방도 옴겼다.
그녀가 내게 연락할 만한 모든 수단을 없앴다.
가진것이 없으니 그것들을 갈아 엎는데도 전혀 수고스러울 것이 없었다.
그녀의 손이 닿는 곳에서 유령처럼 사라져 주기로 결심 한 것이다.
그리고 그녀를 잊기로 했다.
어느 골목에서 소리없이 생을 마감하게 될까봐 겁이 나는 것은 아니었다.
아, 아닌건 아니다.
겁은 조금 났지만, 그런 이유로 그녀를 떠나려 마음먹게 된 것은 결코 아니다.
회장 부인의 전화가 온것도 아니다.
설사 회장 부인이 내 존재를 알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 귀한 시간 쪼개서 날 보러 올만큼 내가 대단하지도 않다.
그녀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나서 나에대한 태도가 변하게 될까봐 겁이 났던것도 아니다.
"아까부터 아무런 말도 없으시네요?"
뭐라고 대꾸를 할까 하는 마음에 고개를 돌리자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빤히 날 바라보며 여전히 소리없는 미소를 띄고 있었다.
어느 남자건 간에 가슴속에서 사랑이 싹트지 않고는 못배길 것 같은 그런 아름다운 미소를.
그런 그녀의 미소에 괜히 눌려 난 다시 뭔가 말하려던 입을 조용히 다문 체 벤치에 앉은 그대로 내 구두 끝으로 시선을 옴겼다.
남자가 여자를 떠날 땐 뭔가 거창하거나 남자다운 이유가 필요할 것 같지만 사실은 꼭 그렇지가 않다.
남자가 이별을 선택할 때의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목숨을 내걸고 하는 사랑을 져버릴다고 하더라도 그 이유와 과정이 반드시 복잡하지만은 않다.
물론 이유가 단순하다고 그 대가마저 가벼울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지만.
식상한 이야기 이지만 난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
가진거 없이 없는 집에서 자라나서 배운것 없이 뒤쳐지는 학교들만 밟고 온 나였다.
비전도 없고 그녀에 비해 그렇다 할 재능이나 능력도 없다.
그녀를 먹여살리기는 커녕 도리어 그녀가 날 먹여살리는 것을 감사히 여겨야 할지도 모른다.
내가 그녀를 사랑하기보단 그녀가 나를 감싸줌을 감사히 여기며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사랑?
그녀는 어느 나라, 아니 어느 별에 떨어져도 누군가로부터 충분히 사랑받으며 살 여자이다.
그런 그녀에게 난 걸림돌이나 되지 않을 수 있다면...
내가 해줄 수 있는 최고가 아닌 최선의 사랑.
조금은 후줄근한 이유이지만 웃기지도 않는다며 비웃었던 이별의 방법을 내 손으로 선택하고야 말았다.
그렇게 두달이 지나고 난 아무렇지 않게 대학을 휴학했다.
그녀에게 알려주지도 않은 전화번호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하루에도 몇 번씩 울지않는 휴대전화만 쳐다보고, 그녀가 가끔 찾아와 불평하며 정리해주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제 더 이상 그때의 그 방이 아닌 이사한 너저분한 내 방을 아무렇지 않게 한참동안 바라보곤 하고, 삐익 거리는 철 대문을 열고 나와서 올 방법이 없는 그녀를 아무렇지 않게 한참씩 기다리곤 했었다.
졸업까지 몇 개월 남지 않았지만 그녀 없이 멈춰버린 것 같은 시간이 움직여 주길 기다리는 것.
그것은 조금 힘들었었다.
그러다 보면 조금씩 잊게 되겠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날 정말 사랑해주던 그녀의 완벽한 마음정리를 위해, 그리고 무엇인가 사고를 내버릴 것 같은 날 위해 군 입대를 선택했다.
이야기 속에서는 다들 이별 후 입대를 하곤 하니까.
하지만 결코 잘한 짓이 아니었다.
원하지 않았던 부분이지만 그 부분만은 역시 TV속 드라마와 완벽히 차이가 있는 현실이었다.
입대장면과 약간의 훈련장면과 배낭 비슷한 것을 매고 금방 전역하던 TV와는 다르게 시간이 정말로 멈춰버린 듯 한 시간이었다.
하루가 24시간이 아니라 100시간은 되는 듯한 삶의 연속이었다.
더욱 내가 힘들었던 이유는, 고될수록 선명하게 귓가에 고동치는 그녀의 맑은 웃음소리.
내 100시간 같은 하루와 그런 730번의 하루들 속에서 난 도저히 그녀를 잊을 수가 없었다.
"후회 하시냐구요!!"
아무 말 못하고 있자 그녀의 토라진듯 하면서도 장난기 어린 목소리가 들린다.
그녀는 여전히 신비하다.
내가 아무런 말도 없이 떠난지 3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마치 서로 잘 인사하고 헤어진 며칠 만에 만난 듯 그 맑은 눈동자와 미소로 내게 장난을 걸듯 말을 건다.
학기중에 휴학을 해서 제대 후 바로 복학을 못하고 몇 개월동안 알바를 하고 다시 2학기에 복학해서 이제는 졸업을 앞둔 나인데, 마치 그 기나긴 시간동안 그녀는 깊은 잠을 자고 깨어난 듯 내옆에 앉아있다.
마법같이...
다시 손만 뻗으면 내 것이 될 것만 같은 그런 느낌.
다시 손만 뻗..
"후회 하고 있죠? 아직도? 저, 그럼 들어갑니다~"
…웁!
넋놓고 딴생각 하다가 그녀의 얘기를 놓쳤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때 내 동공에는 곱게 닫힌 그녀의 검고 가지런한 속눈썹들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곧이어 나의 두 눈도 천천히 감겼다.
그리고 12월의 구름낀 하늘아래서 햇살처럼 따뜻해진 내 입술의 감촉.
"많이.. 기다렸어요...
그렇게 갑자기 떠나버리고나서 정말 많이...
잊을까도 생각 해봤지만 역시 우리 자기 말고는 안되겠더라구요, 하핫.
자기... 나 힘들게 다시 자기 있는곳 찾은거에요...
힘들지만 자기 아니면 안되니까요...
좀 오래 걸렸지만 이번 한번은 내가 눈 꼭 감고 봐줄게요, 네?
우리 이제 나이도 조금 더 먹었구, 철도 조금 더 들었으니깐 앞으로는 평생 이러면 안되요? 사랑해요~"
그렇게 그녀의 기습 키스 직후 그녀는 내숭섞인 장난을 치며 부끄럽다고 양손으로 내 어깨를 콩콩콩 두드렸다.
정말.. 헤어져있던 수 세월같던 3년의 시간을 그녀는 마법같은 미소로 뛰어넘어서 다시 내 옆으로 와주었다.
사실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던 내 결심은 어쩌면 날 위한 위로였을지도 모른다.
당시에는 그녀를 위해서 라고 생각했었지만 사실 내 마음속에는 그녀가 언젠가 날 업신여기고 버릴까봐 겁났던 것일 수도 있다.
버림 받기 전 그녀가 날 사랑하고 있던 기억만을 유지하고 싶어서 달아났던 것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 없이는 안되는 날 발견하게 됐을 뿐이다.
날 위해서 화려한 옷보다는 수수한 옷을 선택했었고, 날 더 사랑하는 마음에 하지 못했던 기나긴 얘기를 했던 대가로 나와의 이별을 맞이해야만 했었던 그녀다.
그리고 바보같이 떠나서 그녀를 애타게 했었던 나를 따사로운 봄날의 햇살처럼 용서한 그녀이다.
사랑이 시켜서 동갑내기인 나에게도 말을 높인다던 그녀는, 그러고 보면 우연히 우리가 다시 만난 그 순간에도 여전히 내게 말을 높이고 있었다.
오늘은 그녀에게 고맙단 말을 해야겠다.
"자기야 짜잔~"
억! 섹소폰이다!!
"우리 같이 봐놨던 그 악기상에서 샀지롱~ 이제 이걸루 연습해야되요? 알았지? 하하하하하"
그 날 우리가 앉아있다가 일어난 벤치 위로는 먹구름 잔뜩 낀 하늘에서 내려온 하얀 눈꽃들이 하나 둘씩 쌓이기 시작했다.
그녀와 나의 재회를 축복하는 새하얀 눈의 꽃잎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