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경의 깊이
- 김사인
바람 불고
키 낮은 풀들 파르르 떠는데
눈여겨보는 이 아무도 없다
그 가녀린 것들의 생의 한순간,
의 외로운 떨림들로 해서
우주의 저녁 한때가 비로서 저물어간다.
그 떨림의 이쪽에서 저쪽 사이, 그 순간의 처음과 끝사
이에는 무한히 늙은 옛날의 고요가, 아니면 아직 오지 않
은 어느 시간에 속할 어린 고요가
보일 듯 말 듯 옅게 묻어 있는 것이며,
그 나른한 고요의 봄볕 속에서 나는
백년이나 이백년쯤
아니라면 석달 열흘쯤이라도 곤히 잠들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 석달이며 열흘이며 하는 이름만큼의 내 무한
곁으로 나비나 벌이나 별로 고울 것 없는 버러지들이 무
심히 스쳐가기도 할 것인데.
그 적에 나는 꿈결엔 듯
그 작은 목숨들의 더듬이나 날개나 앳된 다리에 실려
온 낯익은 냄새가
어느 생에선가 한결 깊어진 그대의 눈빛인 걸 알아보
게 되리라 생각한다.
---------------- 몇 달 전에 올린 '가만히 좋아하는' 이란 시는 김사인 님의 [가만히 좋아하는]이라는 시집 제목에서 따왔답니다. 이 시는 시집의 첫 부분에 나옵니다. 보통 시집의 첫 부분에는 작가의 대표작 아니면 자신이 마음을 한결 깊이 내보일 수 있는 애틋한 작품을 내어놓는데요.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이 분은 참 생각이 깊구나. 스쳐 가는 것들에, 의미 없다고 여기는 것들에 관심이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