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문이 불여일견!
반 고흐 전을 다녀온 뒤 포스팅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고 손가락은 근질거렸으나 컴퓨터 앞에 앉을 시간을 찾지 못해 이제서야 포스팅한다. 그때 눈으로 직접 확인한 고흐의 그림을 떠올리면 지금도 내 심장은 펄떡펄떡 뛴다. (지금이 이러면 안 되는 시국이란 것, 잘 알지만 뛰는 심장을 어쩔 수 없다. ㅡㅡ;;) 그만큼 고흐의 그림은 강렬한 충격으로 나를 사로잡았다.
나름 고흐 마니아라고 자부했다. 아주 오래 전 일이지만 그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읽은 화가의 전기가 고흐였고,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 묶음인 도 읽었다. 지금도 틈날 때마다 영혼의 편지를 하나씩 필사하며 고흐에 대한 나의 애정을 확인하곤 한다. 비록 활동회원은 아니지만 내가 유일하게 가입한 인터넷 동호회는 싸이의 고흐 클럽이다.
비록 모니터를 통해 본 고흐의 그림이지만 고흐의 거의 모든 그림을 다 보았다고 생각했고, 그만큼 고흐의 그림에 대해 나름 많이 안다고 생각했다. 가끔 동호회 회원들이 암스테르담 반고흐뮤지엄에 다녀온 후기를 남기면 부러운 마음이 없지야 않았지만 직접 고흐의 작품을 본 그들과 나 사이에 그다지 차이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 직접 내 눈으로 고흐의 그림을 보고 나서 깨달았다. 내가 알고 있던 고흐는 고흐의 천분의 일, 만분의 일도 안 되는 극히 일부분이었다는 걸. 고흐의 그림이 어떤지 알지도 못하면서 지금까지 아는 척해왔다는 걸.
고흐가 처음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하던 보리나주 시절부터 누에넨, 파리, 아를을 거쳐 셍레미 정신병원까지, 그리고 마지막 죽기 직전 오베르에 이르기까지 고흐의 그림 한 점 한 점을 볼 때마다 터져나오는 탄성을 누를 길이 없었다. 물론 전시된 그림 대부분은 이미 모니터나 도록을 통해 익히 봐온 그림이었다. 그러나 전혀 새로운 그림이었다.
그림 하나하나가 살아 꿈틀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몇 번씩 덧바른 유화물감은 과연 이것이 물감으로 낼 수 있는 색일까 의심스러운 신비로운 빛깔을 만들어냈고, 평면 캔버스에 깊이 있는 입체감을 주었다. 이런 그림은 어디서도 보지 못했던 새로운 발견이었다. (이것 때문에 미술전문가들은 고흐가 위대한 화가라고 난리였을 텐데, 지금껏 이걸 몰랐다니...)
고흐의 대표 색깔이라 할 수 있는 노랑. 모니터나 도록을 보면서 감탄했던 그 노랑이 사실은 그 노랑이 아니었다.(뭔 소리래? ㅡㅡ;;) 황금빛 노랑, 자체 발광하는 태양의 빛깔이 물감으로도 표현 가능하다는 걸 이번에 처음 깨달았다. 노랑과 더불어 고흐가 즐겨 썼던 파랑도 마찬가지다. 고흐가 표현한 프러시안 블루의 깊이는 내가 가진 허접한 수식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깊고 우아했다. 노랑과 파랑 사이의 회색빛은 또 어떻고. 금속 느낌이 나는 묘한 기운의 잿빛. 아, 이건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고는 모르는 빛의 세계다.
모네전을 봤을 때는 모니터 상이나 도록에서의 화사함에 비해 실제 작품의 고요함에 놀랐는데, 고흐전은 그 반대다. 그 칙칙하기로 유명한 누에넨 시절의 그림마저도 화려하고 우아한 빛의 향연에 황홀해서 쓰러질 지경이었으니.
숱한 리뷰를 써왔지만, 이렇게 언어의 빈곤을 심각하게 느낀 적이 없다. 고흐의 그림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비함과 깊이의 세계다. 그래서 더 이상 주절거리는 건 그만하련다. 유명짜한 화가의 전시회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을 확인시켜준다고 했는데, 그래서 전시회 가기 전까지는 이거 속 빈 강정 아닐까 걱정도 했는데, 이번 고흐전은 상상보다 훨씬 많은 작품으로 고흐를 만나게 해주는 고마운 전시회라는 것, 그래서 고흐의 팬이라면, 아니 이전까지 고흐에 대해 별로 느낌이 없던 사람이라도 꼭 가봤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만 남겨야겠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 보이는 것이 이전과 같지 않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을 바꿔야겠다.
"보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사랑하게 되나니, 그 사랑이 이전과 같지 않다"
씨뿌리는 사람 (The Sower) 1888.6.
아이리스 (Irises) 1890.5.
데생부터 유화까지 보리나주부터 오베르까지 모든 작품이 강렬한 인상을 남겼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내게 큰 충격을 준 작품은 그 유명한 이다. 도록으로 볼 때는 그냥 그런 작품이었다. 농민화가라 불리는 밀레에게 큰 감명을 받고 농민들의 일상을 화폭에 담아내던 그 시절의 그림 중 가장 인상이 약했던 작품이라고 해야 하나? 초기작의 거칠지만 인간에 대한 애정이 철철 넘쳐나던 소박한 감성도 후기작의 강렬한 색감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본 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뉘엿뉘엿 서산에 지는 석양의 태양빛이 눈이 부실 정도로 화려했고 그 아래 펼쳐진 밭은 마치 내가 씨뿌리는 농부가 되어 밭에 선 것처럼 입체감을 가지고 보는 사람을 그림 안으로 초대했다. 밭고랑이 바로 내 발밑까지 펼쳐진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리고 또 하나의 특별히(!) 인상적인 작품은 다. 고흐의 노랑과 파랑의 강렬한 부딪힘! 실제 색감을 가진 그림을 찾아보려고 아무리 웹서핑을 해봐도 안 나온다. 아, 환장하겠다.
착한 사마리아인 (Good Samaritan) - 들라크루와 모작 1890.5.
고흐가 보고 그린 들라크루와의
피에타 (Pieta) - 들라크루와 모작 1889.9.
고흐가 보고 그린 들라크루와의
고흐가 종교화를 그렸던가? 분명 스치듯 보긴 봤을 텐데 마치 처음 본 것 같다. 들라크루와의 작품을 모사한 과 는 이전의 종교화가 가진 느낌과는 전혀 다른 신선함에 흥미를 끌었다.
더구나 옷자락을 표현한 그 빛깔은 아름답다 못해 신비스럽기까지 해서 이전 종교화를 뛰어넘는 성스러움까지 느껴졌다.
이번 전시도 GS칼텍스 고객이신 친구분 덕에 보았는데, 어떻게든 표를 구해 다시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