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
-도종환-
언덕 위에 줄지어 선 나무들이 아름다운 건
나무 뒤에서 말없이
나무들을 받아안고 있는 여백 때문이다
나뭇가지들이 살아온 길과 세세한 잔가지
하나하나의 흔들림까지 다 보여주는
넉넉한 허공 때문이다
빽빽한 숲에서는 보이지 않는
나뭇가지들끼리의 균형
가장 자연스럽게 뻗어 있는 생명의 손가락을
일일이 쓰다듬어주고 있는 빈 하늘 때문이다
여백이 없는 풍경은 아름답지 않다
비어 있는 곳이 없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
여백을 가장 든든한 배경으로 삼을 줄 모르는 사람은
-목덜리께까지 단추를 모조리 채운 윗옷이 있고, 열리지 않을 듯 꼭 다문 입술이 있다. 빈틈 빈말이 없다. 미안하지만, 그런 사람은 두꺼운 마분지로 만든 종이상자 같다. 빼곡한 숲처럼 정글처럼 살지 말자. 털어내고 덜어내어 공백을 가슴 속에 만들자. 항아리의 오목한 허공도 좋다. 백지여도 좋다. 나의 빈 곳으로 언제든 당신이 들어올 수 있도록.
문태준 엮음
오늘 몸살 감기를 나를 덮쳐왔다.. 아마도 내 안에 너무 빡빡한 생에서 쉼을 얻기위해.. 여백을 만들어 주기 위해 날 덮치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