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BA의 60여년 역사 중에서 가장 불운한 선수를 한 명 뽑는다면 누가 될 것인가?
역으로 생각해보자. NBA 역사 중에서 가장 위대한 - 행운을 포함해서 - 선수는 누가 될 것이며 그로 인해 가장 불운했던 선수는 과연 누가 있을 까. NBA 역사 중 가장 위대한 선수는, 평론가들에게는 빌 러셀이 될 것이고, 팬 들에게는 마이클 조던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매직과 버드, 아이재이아 토마스로 각인되어 있다.
그렇다면, 빌 러셀로 인해 가장 불운했던 선수는? 당연하게도 그의 라이벌인 윌트 체임벌린일 것이다. 하지만, 체임벌린은 60년대 셀틱스 왕조를 유일하게 꺾었었고, 스포츠 역사상 최다연승 기록을 갖고 있는 레이커스의 우승에 일조했던, 그나마 행운아였다. 그렇다면 조던의 시대에 가장 불운한 선수가 나와야 맞을 것이다. 매직과 버드, 아이재이아는 살벌한 80년대에 각각의 영광을 두번 이상 맛 보았던 선수들이며, 그들로 인해 불운을 겪었던 선수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역설적이게도, 80년대는 완벽한 도미넨트(60년대의 셀틱이나, 90년대의 불스처럼)가 없었기에 가장 성공적이고 역동적인 NBA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고 말할 수 있겠다. 70년대의 자유분방함과 90년대의 화려한 성공을 이어주는 80년대야말로 NBA의 정점이라 생각한다.
조던의 시대에 불운한 선수들은 10명 이상 뽑을 수 있다. 오죽하면 그들을 "Stolen Generation"이라고 칭하겠는가. 조던 왕조의 시작을 알렸을 때, 그는 동부에서 버드와 토마스를 꺾었고, 파이널에서 매직의 레이커스를 스윕하였다. 제대로 된 80년대의 종결을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불스 왕조가 지속되면서 불운의 스타들이 생겨났다.
찰스 바클리,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다. 그의 라이벌이라고 여겨졌고, 그에 걸맞는 실력을 가졌으며, 무엇보다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칼 말론과 존 스탁턴, 가장 위협적인 픽-앤-롤 콤비였던 그들은 불행하게도 불스가 90년대를 완벽하게 마무리 짓는 데 조연을 하는 데 그쳤다. 말론은 새로운 왕조를 연 레이커스에 헐값에 입단했으나, 새로운 배드 보이스에게 한 방 맞고 은퇴해 버렸다.
숀 캠프와 게리 페이튼, 말론-스탁턴 콤비와 더불어 서부의 강자 자리를 놓치지 않았고, 가장 재미있는(마치 현재의 NBA와 같이) 바스켓을 펼쳤던 코트의 막강 콤비, 쟁쟁한 서부에서 그리고 파이널에서는 조던과 피핀, 로드맨에 막혀버렸다.
레지 밀러, 밀러 타임으로 유명한 이 반골의 암살자는 무시무시한 집중력을 갖췄지만 조던의 그것에 2% 모자랐다.
클라이드 드렉슬러와 하킴 올라주원, 휴스턴 대학 동창인 이들은 조던이 1차로 은퇴한 틈을 타 결국은 챔피언을 쟁취하였다. 그래, 그들은 행운아였다.
그리고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 패트릭 유잉이 등장한다. 나에게 NBA 역사에서 가장 불운한 인물로 기억되는 진정한 플레이어이다.
조던의 1차 은퇴 후, 열거했던 스타들은 드디어 우승을 할 수 있다는 열망에 보다 강력한 경기를 보여 주었다. 90년대 4대 센터(좋아하는 표현은 아님!) - 유잉, 올라주원, 로빈슨, 오닐 - 을 중심으로 한 수비 농구의 극치를 보여 주었으며, 조던의 시대와는 다르게 하프코트 오펜스가 리그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랜트 힐, 크리스 웨버, 페니 하더웨이 등 재능있는 신인들이 많았지만, 아직 80년대 중후반에 데뷰한 빅맨들의 시대였다.
그리고, 번번히 불스와 치열한 접전을 펼치던 뉴욕의 킹콩은 염원하던 파이널에 등장하였다. 95년이던가? 뉴욕과 휴스턴이 보여준 7차전 파이널이 내 기억에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남아있다. 기량이 완숙한 올라주원의 드림쉐이크와 뉴욕 닉스의 끈끈한 디펜스가 펼친 한 판 승부였고, 유잉은 올라주원에 절대 밀리지 않는 엄청난 포스를 보여 주었다. 그의 든든한 조력자 찰스 오클리도 마찬가지였고. 단, 아쉬운 점은 뉴욕의 심장과도 같았던 열혈남아, 존 스탁스의 부진이었다.
그 파이널 이후, 유잉과 닉스는 번번한 불운에 시달렸다. 이듬해 동부 파이널에서 기적과도 같은 밀러타임에 밀려 버렸다. 그것은 정말 기적이었다. 종료 20여초를 남기고 레지 밀러가 8득점에 성공했던 것.. 유잉은 10여년의 전투의 후유증으로 부상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닉스는 유잉 외에 트윈테러(스프리웰과 휴스턴)라는 공격 옵션을 추가하면서 강력한 우승후보가 되었지만, 조던이 다시 복귀하는 바람에 우승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당시의 트윈 테러는 유잉의 부상을 메우고도 남을 정도의 실력을 보여주었지만, 복귀한 조던과 변함없는 스페셜리스트 피핀과 필 잭슨에 의해 철저하게 통제되는 로드맨의 트라이앵글을 이기기란 힘들어 보였다. 그 때의 불스는 조던-피핀-그랜트-카트라이트-암스트롱의 1차 왕조 때보다 훨씬 업그레이드 되어 있었다. 쿠코치와 론 하퍼라는 괜찮은 식스맨과 가끔 우스워보이는 플레이를 보여주곤 하던 룩 롱리, 투지를 보여주곤 하던 스티브 커까지..
유잉과 뉴욕의 꿈은 멀리 날아가 버렸다. 마치 20여년 전의 윌리스 리드와 같이 유잉은 부상투혼을 발휘해 보았지만, NBA 승율 기록을 갈아치우는 불스의 기세를 막을 순 없었다. 서부는 어땠는가? 크리스 웨버, 케빈 가넷, 코비 등 새로운 페이스들이 강팀을 만들었지만, 무르익은 유타의 픽앤롤과 소닉스의 고공농구를 막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들 또한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조던은 농구의 신, 아니 승부의 신이었다. 그의 플레이는 항상 결정적인 순간에 상대의 사기를 꺾는 무언가가 있었다. 결국, 당대 최고의 포인트가드 페이튼과 스탁턴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고, 숀 캠프는 몸이 불었으며, 말론은 통산 득점 역대 2위에 만족해야 했다.
그 무렵 우리의 킹콩, 유잉은 경력이 하향세에 있었다. 뉴욕은 팻 라일리를 얻고도 우승하지 못함을 분풀이하듯, 트윈테러를 해체하고, 유잉을 서부로 트레이드 시켜 버렸다. 유잉은, 서부의 젊은 인사이더들 앞에서 제 기량을 펼치지 못하였고, 다시 동부의 올랜도로 가게 되었다.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되고, 사람들은 앤서와 에어 캐나다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서부로 '놀러간' 샤킬오닐이 새로운 도미넨트가 될 가능성을 보였지만, NBA의 흐름은 다재다능한 스윙맨들의 시대로 갈 것이 분명해 보였다. '정통' 빅맨 유잉이 설 길은 없었다.
백-투-백을 완수하고 올라주원은 은퇴를 하였으며, 유잉과 더불어 불운했던(그가 새가슴이라서) 로빈슨은 케빈 맥헤일의 재림, 팀 던컨을 얻고, 팀 내 NO. 2로서 2회의 우승을 맛보고 최고의 순간에 코트에서 물러났다. 오닐? 오닐은 새로운 다이너스티를 이끌고 있었다. 유잉은, 올랜도에서 은퇴를 강요받았으며, 그대로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우승을 위해 휴스턴으로 간 바클리. 또, 레이커스로 간 페이튼, 말론과는 달리 유잉은 뉴욕을 고집했었다. 하지만, 극성스런 뉴욕은 팻 라일리도 보내 버리고, 유잉도 보내 버렸다. 뉴욕 닉스의 거의 모든 프랜차이즈 기록을 갖고 있는 그를 쉽게 버린 것이다. 스탁턴은 영광스럽게 유타에서 은퇴를 맞이했다. 레지 밀러? 밀러는 최근까지도 인디애나의 최고 스타로서 대접 받고, 아쉬워하는 팬들을 뒤로 했다.
NBA 역사에서 가장 열심히 뛰었고, 가장 성실했으며, 가장 전투적이었던 팀을 이끌었던 용장의 말년은 이렇듯 쓸쓸하기 그지 없었다. 그렇기에 내게 NBA에서 가장 불운했던 선수로 기억되는 가장 1순위는 패트릭 유잉이다.. 농구의 변방, 자메이카에서 태어나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었던 그이지만, 결국 최고는 되지 못하고 어찌 보면 쓸쓸해 보이는 마지막을 보냈던 것이다. 비슷한 예인, 나이지리아 출신의 올라주원과도 많은 비교가 된다. 하지만, 코트 내에서의 그의 모습은 그 누구보다 전투적이었다. 바클리가 함께 뛰는 전우와 같은 이미지라면, 유잉은 솔선수범하는 하사관의 모습이다.
어떤 모습이던지, 유잉이 NBA 코트로 복귀했으면 한다. 그는 다름아닌 '바스켓맨'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