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본 最大의 침향 - 蘭奢待
오늘날 일본이 보유하고 있는 가장 큰 침향은 蘭奢待라고 하는 것으로 奈良때부터 東大寺의 正倉院에 보존되어
오고 있다. 정창원은 동대사 부속의 보물창고로 주로 聖武天皇이 생전에 수집한 보물로 오늘날 일본 奈良시대의
중요文物을 보관하고 있는 대표적 장소이다. 란사대의 길이는 150~160Cm이고 가장 넓은 부분이 37.8Cm이며
무게는 11.6Kg이다.
원래 天平勝寶八年 (서기756년)에 光明황태후가 동대사에 줄 때는 13Kg이었는데 역대 천황과 장군들이 조금씩
떼어내어 자신이 사용하든가 공이 있는 신하들에게 주었기 때문에 줄어든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足利義政
織田信長 明治天皇등이 사용한 적이 있다.
연구된 바에 의하면 天正二年(서기 1614년)까지 이 침향의 명칭은 黃熟香으로 기록되어 왔다. 本草綱目의 침향
분류방법에 의하면 황숙향은 침향 가운데 물에 가라앉지 않는 등급으로 樹脂가 비교적 적어 태우는 데만
사용하고 약으로는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2.德川家康의 伽 ? 香
江戶幕府를 창건한 德川家康는 침향을 수집하는데 열정적이었다. 慶長11年(서기 1606년)에 그는 침향 중에서도
上품인 가남향을 수집하기 위하여 동남아시아의 여러 왕들에게 서신까지 보냈다. 그 중 占城왕국(베트남)의
국왕에게 보낸 서신에서 그는 “현재 일본에서 中下級 침향을 얻기는 그다지 힘들지 않지만 침향 중 가장 좋은
가남향을 얻기란 매우 힘드니 점성왕국 국왕의 도움을 얻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라 하였다.
德川家康의 요구는 마침내 어느 정도 달성되어 그는 약 27貫의 가남향과 50貫의 침향을 남긴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1貫은 3.75Kg)
3.유명한 伽羅 [白菊]와 무사 두명의 殉職
江戶幕府 시대 지방영주의 한 사람인 細川家는 오늘날까지 천황이 부여한 白菊이라는 이름의 침향(혹은 가남향)을
갖고 있다. 細川家가 그 침향을 보유하기까지 두 명의 무사가 목숨을 잃었다.
寬永元年(서기 1624년) 細川忠興은 가신 興津彌五右衛門과 橫田淸兵衛를 長崎에 보내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침향을 구매토록 하였는데, 다른 한편 仙臺의 伊達家도 구매에 참여하였다. 구매과정에서 橫田淸兵衛은
침향가격이 兩家의 구매경쟁으로 이미 합리적인 선을 훨씬 넘었다고 판단하고 동료인 興津彌五右衛門에게
구매를 포기하자고 제안했는데 興津彌五右衛門은 반드시 주인의 명령을 관철시켜야 한다고 하여 둘은 격렬한
논란 끝에 興津彌五右衛門은 橫田淸兵衛를 사살하였다. 그는 구매경쟁에서 승리하였고, 그러한 일련의 상황들을
주인에게 보고한 후 할복자살을 자원했으나 주인은 그의 충성심을 칭찬하고 자살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주인인 細川忠興이 죽은 후에 동료를 죽인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