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은 영화의 전달이니 오해말길...
이역시 배경음과 장면이 멋드러진다...
황약사를 느끼며 구양봉의 몸을 어루만지는 모용연... 자애인을 느끼며 가만히 몸만 빌려주는 구양봉...
illusion...신기루...
이때나오는 음악 제목이다.
배경음 제목과 영화내용
완전 공감~!!!
캐 쩐다!~!!
임청하가 맡은 모용연이 우는 장면 역시 스토리를 빛내며 잘 이끌어 나가는 장면중 하나다..
동사서독...버릴것 하나 없는 영화다
불초자 열혈남아를 끝으로 영화 동영상 업을 마치려 했는데 그영상을 올리기전까지 얼마나 더 할지 모르겠다...
그냥 함 가보자~!!
이제 퍼온 스토리 라인을보자
이사람 질서정연하게 졸~ 잘썼다 글을. 인정한다~
그래서 퍼온거다.
이제보자~
사랑이라는 감정은 때로는 증오를 수반하기도 하고
인간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많은 경우
증오는 사랑으로, 사랑은 증오로 바뀌기도 하다
이렇듯이 한 사람이 어떤 한 사람에게 사랑하는 마음과 증오하는 감정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인간의 감정을 흔히 양가감정이라 한다...
영화 속에서 모용언은 황약사에게
사랑하는 마음과 증오하는 감정을 동시에 가지며
이 양가감정 사이에서 갈등하고 충돌하며 고통스러워 한다...
결국 양가감정은 모용언을 버린 황약사를 죽이고자 하는 마음(낮의 오빠 모용연)과
황약사를 못만나게 하는 모용연을 죽이고자 하는 마음(밤의 여인 모용언)으로 분열된다
분열된 모용언의 두 자아는 어떤 대상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그녀가 공격하고자 하는 대상은 겉으로는 황약사와 모용연으로 표현되지만...
본질적으로는 자기 자신이며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파괴하여
자신을 괴롭히는 사랑과 증오라는 양가감정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하는 몸부림에 지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지킬박사와 하이드 라는 소설이 있다...
한 인간이 가진 두 가지의 모습을 즉, 양면성을 지닌 한 인간을 이야기한 소설이다
마찬가지로 모용언은 현대에서는 해리장애 혹은
다면적 인격장애라 불리우는 장애의 징후를 보이는 여자이다...
모용언을 연기한 임청하를 바라보면서 많은 관객들은 혼란스러워 했다
그러나 이러한 혼란은 모용언의 감정 내부에서 서로 충돌하며 갈등하는
황약사에 대한 사랑(혹은 애정)과 증오(혹은 공격성)의 양가감정을
임청하라는 여배우가 훌륭히 소화했기에 오는 결과라고 본다..
모용언은 원래 “지엄한 대연국의 공주이며 모용 가문의 규수” 였다...
그러나 여자인 그녀는 평소에는 남자 복장을 하고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은 자신이 만들어낸 허구의 인물인
그녀의 오빠인 "모용 공자의 후손인 모용연"으로 행세하며 돌아다닌다..
겨울이 끝나고 새 봄이 시작되는 입춘인 어느날
모용연(모용언)은 고소성 밖 복사꽃이 만발한 숲에서 황약사와 만나 친구가 된다...
자애인을 잊기 위해 취생몽사를 마시고
복사꽃만을 사랑했던 기억만을 가지고 살아가던 사랑의 병자(病者) 황약사는
그날 밤, 복사꽃 숲에서 또다시 사랑하고픈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모용연(모용언)에게 여동생이 있다면 자기의 아내로 맞이하겠다는 농담을 한다
모용연은 황약사가 자기가 여자인줄 눈치채고 사랑을 고백했다는 걸 알기에
황약사에게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말한다...
그 후 모용연은 황약사에게 자기를 데려가 달라고 애원했지만
황약사는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할 수 없다며 떠나 버린다...
황약사에게 버림 받은 모용언은 고소성 밖에서 황약사를 저주하며 증오하기 시작한다...
그 후로도 모용언은 자기가 만들어낸 허구의 인물이자
황약사를 증오하며 죽이고 싶어하는 또다른 자아인
모용공자의 후손인 모용연으로 다니는 이중 생활을 계속한다...
모용언의 분열된 자아이자 오빠이며 황약사를 죽이고 싶어하는 모용연은
어느날 황약사가 사랑하고 있다는 도화삼랑을 찾아가 그녀마저 죽일려고 한다...
하지만 황약사가 유일하게 사랑하는 여인은 자기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용언의 본래 자아인 여동생 모용언의 자아의 방해에 부딪힌다...
모용언의 분열된 두 자아 모용언/모용연은
도화삼랑을 죽이는 문제를 가지고 충돌하게돼
결국 도화삼랑을 죽이지 못하게 된다
구양봉은 살인 청부 중개업을 하는 해결사인데
입춘 후에는 전혀 살인을 청부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낮과 밤에 다른 복장을 하고 다른 사람을 죽여달라며
모용연과 모용언이 번갈아 가며 살인을 청부해와 혼란을 겪는다...
낮에는 남자인 오빠 모용연이 찾아와 황약사를 죽여달라고 청부한다...
자기 여동생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동시에 다른 여자를 사랑하며
결국 자기 여동생을 버린 황약사를 죽여달라는 것이다
밤에는 여동생 모용언이 찾아와 오빠인 모용연을 죽여달라고 한다...
황약사가 유일하게 사랑하는 여인은 바로 자기인데
오빠가 황약사를 못 만나게 한다며 그를 죽여달라는 것이다...
구양봉의 직업은 살인을 청탁하는 사람들의 돈을 조건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동안 수 많은 살인 청부를 해결하면서 냉혹한 모습을 보였었다...
그는 완사녀라는 소녀에게는 동생의 복수를 위해서는
몸을 팔아서라도 돈을 마련해 오라는 냉혹한 주문을 하기도 하고
친구인 맹무살수에게는 냉정하게 마적대 퇴치라는 조건을 제시하며
그에게 고향에 갈 돈을 준다고 까지해서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이렇듯 구양봉은 돈만 주면 살인을 해줘야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기에
두 사람의 살인청부를 해결하고 싶지만
남매간에 서로 다른 청부를 하는 두 사람의 청부를 동시에 해결해 줄려면
살인을 청부하는 당사자인 모용언을 죽여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혼란 스러워 한다...
즉,구양봉은 살인청부를 하면서 깨달은 살인에 관한 철학에 따르면
남자는 연인의 죽음을 보면서 죽을 때가 가장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황약사와 모용연이라는 두 남자를 죽여달라는
모용연과 모용언의 살인 청부는 구양봉의 살인 철학에 따르면
그들의 연인을 죽임으로써 해결된다...
자기 여동생 모용언을 버린 황약사를 죽여달라는
모용연의 청부를 해결하는 방법은 이렇다...
황약사는 무공이 강하기에 직접적으로 죽이기가 곤란하다...
다만 황약사의의 연인인 모용언을 죽이면 황약사가 고통당하고
그 때 황약사를 죽이면 황약사는 가장 고통스럽게 죽기에
모용연의 살인 청부를 가장 완벽하게 해결해 주는 것이다..,
황약사를 못 만나게 하는 자기 오빠 모용연을 죽여달라는
여동생 모용언의 살인청부 또한 정말 간단하다
모용연은 여동생을 사랑하기에 여동생인 모용언을 죽이면
여동생 모용언을 사랑하는 오빠 모용연은 괴로워 할것이고
그 때 잠깐 방심한 모용연을 죽이면 모용언의 청부를 해결해 주는 것이다...
결국 오빠 모용연의 요구인 황약사를 죽여 달라는 청부나..
여동생 모용언의 요구인 오빠 모용연을 죽여 달라는 청부는
구양봉이라는 냉혹한 살인청부업자의 입장에서 볼때는
황약사와 모용연이 동시에 사랑하는 연인 모용언을 죽여야 되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나 모용언을 죽이는 것은 살인 청부업 중개인으로써 또한 불가능 하다...
모용언과 모용연의 살인청부는 결국 모용언을 죽이는 것으로 해결되지만
모용언이 바로 살인 청부를 한 당사자이기 때문에
구양봉은 살인청부의 대가인 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모용언/모용연의 두 모습으로 살인을 청부하는 한 사람(모용언)의 모습은
결국 사랑에 상처받은 자가 자기를 죽여달라고 자기 살해를 청부하는 것이다
구양봉은 모용언의 이런 좌절한 모습에서
사랑에 상처받고 죽어간 자애인의 모습을 발견한다...
자애인은 구양봉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병들게 함으로써
자기 내부에서 충돌하는 사랑과 미움의 감정을 사라지게 하지 않았는가?
모용언은 어느날 술에 취해서 구양봉을 황약사로 착각하고
황약사에게 받은 사랑의 상처를 구양봉에게 이야기 한다
“당신이 정말 날 사랑하는지 수없이 자문해 봤었지만
이젠 알고 싶지도 않아요.
어느 날 견디지 못하고 물어 보면 거짓말이라도 해주세요.
'당신은 내 사랑이 아니야' 라곤 절대 말하지 마세요“
자기를 황약사로 착각하고 슬피울며 사랑을 고백하는 모용언을 바라는 구양봉은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여인이 누구죠?”
라며 물어오는 모용언을 바라보며
“당신이오” 라고 바로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구양봉은 이제 모용언을 통해 자애인이 자신을 사랑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모용언 또한 구양봉의 “당신이오” 라는 대답을 통해
그동안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혔던 의문을 해결한다...
즉, 황약사가 유일하게 사랑하는 여인은 바로 자신이라는 믿음을 얻은 것이다...
구양봉과 모용언은 비록 착각일지라도
이런 감정교류를 통해 서로를 자애인과 황약사로 착각하게 되고
그날 밤 상대방의 몸을 안으며 그동안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아픔을 교감한다...
그들은 타인의 몸과 마음을 빌어서라도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사랑 받고 싶은 상처받은 자(者)들인 것이다...
구양봉과 모용언이 서로의 몸을 빌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장면은
사랑의 상처가 때론 다른 사람의 몸과 마음을 빌어서라도
보상받지 않으면 안될만큼 큰 고통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또다른 명장면이다...
모용언과 구양봉이 서로의 몸과 마음을 빌어서 상처를 위로하고 감싸주는 관계라면
모용언과 맹무살수는 동일한 형태로 자기를 파괴하고자 하는 닮은 사람들이다...
모용언과 맹무살수는 둘 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은
배신의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최초에는 배신감에 고통당하면서도
자신을 배신한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갈등하는
사랑과 증오라는 양가감정의 충돌 속에서 고통스러워 한다..
그 후 그들은 자신들의 감정 사이에서 충돌하는 사랑과 증오의 감정을
어떤 대상을 공격하고 파괴하고자 하는 본능으로 바꾸어 버린다...
다만 둘의 차이는 공격대상을 표현하는 방법에 있다...
맹무살수는 공격 대상을 직접적으로 자기 자신에게로 향해 있다..
그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학대한다...
프로이드에 따르면 성도착의 하나인 사디즘은 대상을 해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사디즘의 일종인 마조흐즘은 해치는 대상을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향하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맹무살수와 모용언의 자기 파괴 본능은 두 사람이 본질적으로는 사디스트이지만...
또한 자기 자신을 파괴하고자 하는 마조흐스트 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맹무살수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학대하는 것은 도화삼랑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
자신의 감정을 학대하고 죽게 만들어 시체로나마 도화삼랑에게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이런 자기 학대는 한편으로는 도화삼랑의 배신에 대한 복수이기도 하다..
자기의 죽음을 도화삼랑에게 알림으로써 도화삼랑을 평생토록
자기 남편을 죽게 만든 죄의식에 사로잡혀 고통스럽게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그의 자기 학대의 목적이자 그가 죽음으로써 얻는 쾌감이다...
사디스트가 결국 어떤 대상을 해치는 것을 목적으로 쾌감을 얻는 사람이라면
맹무살수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학대하면서 쾌감을 얻는 마조흐스트임과 동시에
파괴하고자 하는 공격의 대상이 사디스트의 일반적인 대상인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이라는 점에서
맹무살수는 자기 자신을 해치면서 쾌감을 얻는 사디스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모용언은 어떠한가?
모용언은 표면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공격하지 않는다...
그녀의 공격대상은 표면적으로는 사디스트의 일반적인 공격대상인 타인이다...
그녀는 황약사와 모용연을 죽이고 싶어하며 결코 자기 자신을 학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구양봉이라는 냉혹한 살인 청부업자가 잘 파악했듯이..
모용언 또한 궁극적으로는 모용연의 연인인 모용언과
황약사의 연인인 모용언을 죽이고자 한다
모용언과 모용연의 살인 청부의 대상은 결국 모용언으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결국 그녀가 죽이고자 하는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 된다
모용언은 표면적으로는 타인인 황약사와 모용연을 죽이고자 하는 사디스트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해치면서 쾌감을 얻고자 하는 마조흐스트이다...
즉, 모용언의 공격 대상은 타인으로 거짓 표현되는 또 다른 자기이며
결국은 모용언 또한 자기 자신을 공격하고 파괴하고자 하는 것이다...
모용언의 이중 생활은 그러나 맹무살수처럼 죽음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맹무살수가 자신의 못다한 사랑을 이루지 못한 채
스스로를 파괴함으로써 자신의 고통을 해소 시켜 버렸다면
모용언은 비록 착각일지라도 구양봉을 통해 못다한 사랑을 이루었기에
그녀는 후에 독고구패라는 검객이 되어 홀로 무공을 익힐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랑이 때론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희망과 행복 또한 가져온다...
비록 착각일지라도 모용언은 한 사람에게 사랑받았다는 느낌을 알기에
그녀의 삶은 변화했고 그녀는 후에 무림의 고수가 될 수 있었다....
사랑이 결코 상처가 아니라 행복한 느낌을 가져다 주는 것이라고 볼 때
타인이 날 사랑한다는 걸 아는 순간 그 사랑을 거부하고 밀어내기 보다는
그 사람에게서 받은 사랑만큼 상대방에게 다시 사랑을 되돌려주는 것,
특히 타인의 사랑을 받고자 사랑을 시작하는 사랑의 병자(病者)에게 사랑을 주는 것만큼
사랑의 양가감정에 사이에서 갈등하며 고통당하는
사랑에 상처받은 자(者)들을 변화시키는 것은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모용언과 구양봉이 서로의 몸을 빌어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보면서 모용언의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져 주자...
(어느 날 밤, 구양봉의 숙소로 모용언이 건너온다.)
구양봉: 그 날밤 자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날 만지는 걸 느꼈다.
그녀는 날 만지는 게 아니라 내 몸만을 빌린 것이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손길은 형수님의 손길처럼 따뜻했다.
(모용언/연은 구양봉을 황약사로 생각하고 만지고, 구양봉은 자신을 만지
는 사람이 형수라고 상상하며 가만히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