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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윤정희"

박숙영 |2008.01.04 11:01
조회 320 |추천 2
내가 말하는 여배우 "윤정희"

 

http://blog.naver.com/oldcine/70025419073

 

1. 윤정희의 파괴력.

 

어느 영화잡지 기자가 올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기념할 만한 두 여배우는

과 라 했는데 그 말이 정말 실감난다.

12월들어 주요일간지들이 연일 백건우, 윤정희 기사로 도배를 하고 있는데.

베토벤의 전곡을 연주한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세계적인 뉴스가 되고 있고

올해 40주년을 맞이한 여배우 윤정희 역시 주요 일간지들을 모두 장식했다.

 

그것도 모자라 40주년 행사 당일, 주요 공중파 TV방송 뉴스제작국등 다수의 매체에서 취재까지 온다고 하니 참 놀랄일이다.

가 언제적 던가?

1960-70년대 스크린의 여왕으로 군림하였지만 수십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파괴력을 지닌 그가 참 놀라울 따름이다.

만약 이 정도 반응일 줄 알았다면 이 행사를 개최할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행사를 시작하며 보도자료를 메스콤에서 보낼때만 해도

대선을 앞두고 기사가 밀리는, 음악공연 등 행사가 줄을 서는 이 시기에 

"단신보도"라도 해주면 참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런 내 생각이 틀렸음을 보도자료를 보낸지 10분만에 알게 되었다.

 

국내 유력 일간지의 기자들에게 바로 연락이 왔고

한결같이 자사 신문에서 먼저 다루어야한다는 것이었다.

뒤이어 오는 빗발치는 전화들을 받고, 나는 너무 놀라서 한동안 어리벙벙했다. 

 

2. 현명한 윤정희.

 

"나는 참 옛날 사람인가봐...

 지난주 토요일, 동시에 2개 신문에서 2면을 할애한 기사가 나왔을때

 한 신문은 백선생 위주로 이끌어 같고, 한 신문은 나 윤정희위주로 인터뷰를 했지 사람들이 조금 더 많이 보는 신문을 남편에게 양보했지... "

 

윤정희는 이렇게 남편 백건우 일을 우선으로 생각하였고

인터뷰시 기자들에게 포인트가 될만한 "한마디"를 날릴 줄아는 기교까지 겸비하고 있었다.

한창 시절 영화평론가 변인식 선생님이 표현한

"엘레강스한 오만 + 안하무인격 오만"을 지금도 가지고 있었으며 다가설때 다가 설 줄알고, 물러설때 물러 설 줄아는 그런 아주 똑똑한 사람이었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가 탄생하기까지 가장 큰 공로자는 바로 그의 아내 의 힘이 반이상 될 것같다는 생각은 아주 오래전부터 했지만.

를 알면 알수록 그 확신이 굳어져 간다.

 

80년대 국내 대학의 교수초빙을 거절하고

밀려드는 CF, 방송출연을 거절하고...

거절 잘하는 사람으로 소문난 .

어쩌면 그 "거절"이 를 더욱 빛나게하고,

두 부부를 영원한 "자유인"으로 만들어 주는 건 아닐지...

 

중앙일보에 실린 직접 쓴 글에서 는

에 관하여 이런 말을 했다.

"꿈의 시작은 베토벤이었지만, 이 꿈을 완성해 준 것은 바로 청중들이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이기 때문에

나에게 40주년 기념특별전 개최 기회를 준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더욱 고맙다. 

 

3. 윤정희와의 첫 만남.

 

내가 윤정희를 처음 만난건 6살때 어머니의 치마자락을 붙잡고 보러간 영화 였다.

기생으로 나와 방실방실 웃는 인형같은 윤정희의 모습에 반한 6살 소년은 그 이후로 평생 그녀의 팬이 되었다.

(이번 특별전 상영작을 "강명화"로 정한 첫번째 이유이기도 하다)

 

이후 대학교때 한국 고전영화에 심취하며

한국영화사에서 가 얼마나 중요한 여배우였는지 알게되었고.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자식때문에 희생하는 여인들만 스크린속에 가득할때

라는 당돌한 여배우가 등장하여

한국영화속 여주인공 캐릭터의 다양화라는 업적을 이루어 낸다.

 

1960년대 트로이카 체제가 구축되어 최고의 인기를 누렸지만

1971년과 1972년 남정임, 문희가 은퇴한 후

 "트로이카 시대의 영광과 멍에"라는 무거운 짐을 혼자서 등에지고

35년간 배우활동을 계속했으며, 잊혀지지 않는 여배우가 되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점이 우리가 를 가장 높게 평가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를 내가 실제로 만난 건 10년전 6월이었다.

내가 개최한 윤정희 주연의 와 의 상영회장에서 처음 만났고

그 이후로 교류를 계속해왔고, 드디어 대배우 의 데뷔 40주년을 행사를

내가 개최하게 된 것이다.

 

내가 인생을 살아오면서 치룬 많은 행사중에 가장 기쁜 행사지만 가끔 두려워지기도 하는 것은

"윤정희"는 내가 생각했던 나만의 "윤정희"가 아닌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의 "윤정희"라는 것을 이번에 확실하게 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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