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부터 생각해온 여행이지만 막상 처음으로 미지의 땅에 간다는 것 자체는 나로 하여금 들뜨게 함과 동시에 왠지 모를 두려움에 빠지게 하였다.
방학 당일이라 아침부터 하는 일 없이 정신이 없었다. 예상보다 일정이 하루 당겨진데다 방학식도 제대로 끝내지 못하고 공항으로 출발해야 하기에 더욱 마음만 바쁘기만 했다. 반 녀석들은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샘 신혼여행 가요? 우리도 데려가 주세요”라며 바쁜 마음에 더욱 더 부채질을 한다. 그런 녀석들에게 방학을 잘 보내라고 제대로 얘기도 못하고 부랴부랴 학교를 나오다 보니 여행을 간다는 기대감보다는 왠지 모를 아쉬움과 답답함이 가슴을 짓누른다. 그나마 답답한 마음을 강은이랑 통화에서 조금이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
더욱이 학교에서 강은이를 못보고 나와서 못내 섭섭한 맘을 금할 수가 없었는데……. 그러나 아침에 일찍 나를 찾았다는데 서로 길이 엇갈려서 얼굴을 보지 못한 맘에 서운함이 밀려왔다.
학교 앞에서 여행에 함께 하게 될 권석자 선생님을 만나 함께 공항 리무진을 타고 인천 공항으로 출발하였다. 한 시간이 채 못되어서 공항에 도착하였고, 우린 그곳에서 이번 여행을 함께 하실 분들과 대면을 하게 되었다. 나까지 포함해서 다섯 명의 멤버, 한 분빼고는 다 예전부터 인연을 맺어온 지라 대면이라 하기에는 쑥스럽고 다만 새로운 인연으로 지금은 퇴임하셨지만 이상돈 교장선생님과 함께 14일 일정을 함께 하게 되었다.
학교에서 마련해 준 김밥으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했다. 항공기에서 기내식이 나오겠지만 이번 여행의 최대 관건이라고 할 수 있는 고산 증세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약을 먹어야했기에 더욱 식사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생존을 위해서 먹는다”.라고 말씀하셨던 박선생님의 말씀이 여행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티켓팅부터 시작해서 검색대를 통과하여 38번 게이트 앞에서 13시 50분 성도발 CA436 항공기에 탑승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보딩을 기다리는 동안 여기 저기에 여행간다는 것을 티는 내는 것인지 막 죄없는 핸드폰만 괴롭히기 시작했다. 불쌍한 핸드폰……. 그래도 비행기에 탑승하면 14일 동안은 핸드폰에게는 휴가가 있으니 한순간의 괴롭힘은 참을 수 있으리라…….
비행기에 탑승하여 중국으로의 출발을 기다렸다. 그러나 시간이 되어도 무슨 일인지 비행기는 이륙하지 않은데다 비행기 안의 열기는 무더워지고 항상 비행기를 탈 때마다 느끼는 그런 중압감에 출발 전부터 지쳐간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오기 시작한다.
한 시간 정도 시간이 흐른 뒤 드디어 비행기는 이륙하였다. 관제탑에서 신호가 떨어지지 않아서 출발이 지연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첫 단추를 잘못 꿰어서인지 이 이후로 비행기를 타는 족족 지연의 징크스에 빠져들었다.
비행기에서 본 서해 / 첫 대만, 둘째 터키에 이어서 세 번째로 서해를 건넌다. 상공에서 보는 것이라 그런지 더욱 푸르게 빛났다.
지끈거리던 머리도 어느 정도 지나자 안정을 찾게 되었고, 기내식으로 인해 활기를 찾게 되었다. 물론 간단한 영어를 사용해야 했지만 말이다. 몇 번 비행기를 타본 적이 있지만 비행기에서 농협김치의 포장이 부풀어 오른 것은 처음이었다. 사진을 찍지 못한게 못내 아쉬웠다.
항공기는 서해바다를 지나 중국 본토를 지나갔고 3시간 정도가 지나면서 중국의 산과 들이 항공기 밑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중국 성도가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3시간 30분 드디어 첫 여행지라고 할 수 있는 성도에 도착하였다. 중국시간으로 5시 15분경, 한국 시각으로는 6시 15분, 1시간의 시차가 적용된다.
공항 리무진부터 함께 해온 다른 일행 분들의 도움으로 우리는 성도 변두리에 있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에서 숙식을 하기로 하였다. 두 대의 택시로 나눠 타고 이동하였다. 인구 1,300만의 대도시인데다 러시아워에 걸려 길은 자주 정체되었다.
처음으로 와보는 성도, 옛날 유비가 촉나라를 세우면서 수도로서의 기능을 하였던 역사적으로 유래 깊은 도시 그렇지만 나에게 성도의 첫 느낌은 일단은 우중충한 날씨, 금방이라도 비가 솟아질 듯 하면서도 비는 오지 않고 습도까지 높으면서 불쾌지수를 높게 만드는 썩 기분이 좋지 않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그래서 그런지 난 중국에 머물면서 성도의 맑은 하늘은 물론이고 해조차도 한번도 보지 못하고 중국을 떠나왔다.
50분 남짓 걸려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하였다. 오는 동안 성도의 발전된 모습도 보긴 했지만 여전히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활개를 치고 있었고 택시는 우리 나라의 70,80년대의 모습으로 지저분하고 낡아서 더욱 후덥지근한 50분의 시간이었다.
숙소에 들어가자 주인인 한국인 젋은 부부가 우릴 반겨주었으며, 이곳에서 숙식하고 있던 몇 명의 한국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25일까지 숙식하기로 하였고, 일단 내일은 성도 주변을 돌아보기로 하였다. 그리고 22일부터 3박 4일간 구체구와 황룡을 중국 여행사 패키지로, 25일 복귀하여 26일 티벳 여행을 떠나기로 하였다. 다행히도 3박 4일간의 구체구와 황룡 여행은 주인이 주선해주었다. 티벳 여행을 처음에는 기차를 이용하려고 시도를 했지만 이틀이나 걸린다는 시간적 제한점과 표를 구하기 힘들어서 결국 항공기로 티벳으로 들어가기로 하였다.
또한 이곳에서 이번 여행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 특히 티벳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되었다. 고산증으로 버티기가 힘들다든가, 고산증이 걸리면 바로 복귀해야 된다는 것등, 그들은 선 경험자로서 우리들에게 은근히 자랑겸 겁을 주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것들이 대부분이 쓸데없는 기우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청도맥주/성도에서 나오는 맥주라고 한다. 가격은 우리나라의 3/1 수준이다. 술을 좋아하는 나였지만, 고산증세에 대한 염려로 여행 내내 술은 거의 하지 못했다.
주인의 안내로 방을 배정받았는데 다른 네 분은 한 방을 이용하였고, 나만 따로 2층에서 다른 사람들과 6인용 침실을 이용하였다. 나는 이 곳 성도에서는 계속 같은 방 728호를 사용하였다. 이 방은 권석자 선생님에게 상당한 의미를 안겨주었다. 이에 관한 얘기는 후에 지면을 이용하여 쓰기로 하겠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숙소 주변의 대형 마트에서 시장을 보았다. 이 날 나는 이 대형 마트를 2번이나 찾게 되었다. 우리 나라의 대형 마트와 다를 바가 없었다. 굳이 다른 점을 찾는다면 계산을 하고 나가는데 점원이 영수증에 도장을 찍어준다. 무슨 이유인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양 교장선생님께서 저녁 식사를 준비하셨는데 된장찌개가 일품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이 된장찌개는 나에게는 활력소가 되었다. 더욱이 한국이 아닌 타국인 중국에서 먹는다는 자체가 더욱 그러하였다.
2007. 7. 20 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