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선과 악의 이분법’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굳이 거창하게 신과 악마의 대립구도를 갖고 있는 서양 종교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이 세상은 모두 아군과 적군을 구별하며, 결국 내 편은 ‘정의’가 되고 반대편은 ‘불의’가 되어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반대편의 입장에서 생각해볼때, 그들이 자신들을 정의가 아닌 불의라고, 선이 아닌 악이라고 생각할까요?
대부분 그들이 옳은 일을 행하고 있으며, 반대편이 나쁜 일을 행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며,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서로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현대사회에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판단하기는 정말 지난(至難)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영화 [아메리칸 갱스터(American Gangster)]는 이렇게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복잡한 현대사회에서의 정의(正義)란 과연 무엇인지 깊게 생각하게 만들어 주는 영화입니다.
1970년대 미국 뉴욕 맨하탄 할렘구역의 보스 이 어느 날 사망합니다.
그의 운전사이자 충실한 부하였던 는 의 대를 이어 할렘을 장악하고, 마약을 팔며 부(富)를 축적합니다.
유달리 가족에 대한 애정이 강했던 그는 자신의 자리가 어느 정도 확고해지자 가족들을 할렘으로 불러들이고, 이탈리안 마피아처럼 혈연관계로 맺어진 탄탄한 조직을 구축합니다.
또한 범죄 사업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 베트남으로부터 마약을 직접 들여오며 중간유통과정을 없애 훨씬 순도가 높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블루 매직’ 이라는 마약을 판매하여 막대한 이윤을 남기게 됩니다.
한편 정직하고 강직한 형사 는 끈질긴 집념으로 범죄조직을 추적, ‘블루 매직’을 유통하는 의 꼬리를 잡게 되고, 그를 체포함과 동시에 부패경찰을 뿌리 뽑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합니다.
그런데 와 의 사생활을 살펴보면,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는 명실상부한 마약왕(王)입니다.
목적을 위해 살인도 거리낌 없이 행하고, 사람을 폐인으로 만드는 ‘블루 매직’을 유통한, 명백한 범죄자이지만, 그의 사생활은 지극히 모범적이었습니다.
그의 보스였던 처럼 추수감사절에 빈민들에게 칠면조를 나눠 주는가 하면, 가정에서는 성실한 가장의 모습을 보여주고, 일요일에는 어김없이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그의 모습은 평범하고 모범적인 시민의 모습이었습니다.
반면 는 정직하고 강직한 형사였지만, 당시 부패한 경찰들 속에서는 ‘미운 오리 새끼’의 모습을 벗어날 수 없었고, 타고난 바람둥이여서 아내에게 버림받고, 아들마저 뺏길 위기에 처한 꼬일대로 꼬인, 엉망진창인 사생활을 보여줍니다.
범죄자이지만 가정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모범적인 가장의 모습을 보여준 , 그리고 범죄자를 소탕하는 형사이지만 가정에서는 버림받은 ....
이 두 명의 아이러니(irony)한 캐릭터는 대립각을 이루고 필생의 적수인 듯 보이지만,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는 이 혼돈의 시대에서 - 1960년대에서 1970년대의 미국을 혼돈의 시대라고 표현해도 과언은 아닐 듯 합니다 - 결국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서로의 이익을 위해 손을 합치게 됩니다.
는 를 통해 경찰 내부를 장악하고 있던 부패한 경찰들을 모조리 소탕하는 성과를 얻게 되고, 는 에게 협력한 대가로 감형을 받게 된 것입니다.
과 는 정말 완벽한 연기를 선보이는데, 특히 은 밖에서는 잔혹무비하며 냉정하지만 가족에게는 헌신을 다하며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하는 이중적인 사내의 모습을 완벽하게 표현해내어 관객들의 찬사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절정의 연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감독은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뒤떨어지지 않는 감각을 발휘, 군더더기 없는 연출로 관객들을 드라마에 몰입하게 만들고, 두 배우로부터 최고의 연기를 이끌어내며 거장의 면모를 과시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마약에 ‘블루 매직’ 이라는 이름을 붙여 브랜드 전략을 세우고, 생산자와 직거래를 통한 유통과정으로 가격은 저렴하고 품질은 우수한 상품을 만들어 소비자의 신뢰를 얻어낸 방식은 지극히 자본주의 시장경제 원칙에 충실하며, 또한 지극히 미국적인 사고방식인 것입니다.
만약 가 미국에, 특히 미국의 할렘에 있지 않았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아마 그가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제대로 된 환경에서 자랐다면 절대로 범죄의 길로 들어서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돈 몇 푼 쥐어주면 죽은 전우의 시체가 담긴 관에 마약을 숨겨주고, 군용기로 미국까지 친절히 배달해준 군인들, 그리고 의 뇌물을 받기위해 하이에나처럼 달려드는 부패한 경찰들....
이런 지극히 미국적인 사고방식이 에게 범죄의 기회와 방법을 마련해준 것이고, 이런 부패한 사람들 모두가 ‘아메리칸 갱스터’인 것입니다....
사족(蛇足)....
감독의 차기작 [바디 오브 라이즈(Body Of Lies)]와 [노팅햄(Nottingham)] 두 편 모두에 가 출연하는데, 기대가 되면서도 궁금합니다.
전작 [어느 멋진 순간(A Good Year)]부터 네 편 연달아 와 작업을 하게 되는 것인데, 이 두 사람이 왜 갑자기 친해진 걸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