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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명쾌할 순 없다.

박지영 |2008.01.14 23:14
조회 36 |추천 0

텔레비전에서는 '인간극장'이 방영중이었다.


 


전북 장수군의 어느 시골 외딴 집에 살고 있는 노모와 그의 아들에 관한 내용이었다. 족히 여든은 넘어 보이는 노모 - 점점 나이가 들어가다 보면 어느 지점부터인가는 정신연령이 반비례 곡선을 그리며 하향하는 것은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 와 그 곁에서 지극 정성으로 보살피며 '효'라는 것을 행하는 아들자식의 이야기.


 


이 아들 겉모습을 보아하면 낡은 개량 한복 같은 것을 걸쳐 입고, 머리도 정리가 안된 모양새에 몇 나절 면도도 하지 않은 것 같은,  영낙없는 시골 아저씨다. 하지만 말하는 모양새며, 잘 닦지 않아 뿌연 것 같은 안경알 사이로 칼칼하게 빛나는 그 눈빛 등 왠지 모르게 풍기는 기운이 단순한 시골 아저씨라기엔 예사롭지 않은 구석이 있었다. (후에 뒷조사를 좀 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는 오랜 동안 사회운동을 해온 소위 '지식인'이었다. 역시 보이는 것을 뛰어넘는 후광이, 그들에겐 존재함을 다시금 절감한 대목이다.)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를 휠체어에 앉히는 과정에서 아들이 슬쩍 장난질을 걸어본다.


 


어이쿠, 어머니, 왜이리 무거우세요? 예~?


 


그러고는 이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뵌다.


 


마른 나무처럼 건조하고 주름진 입술 안으로 과연 건재한 치아가 남아있기는 한 걸까 의구심을 일게 하는, 그 입을 오물거리며 대답하는 이 노모의 말이 더욱 가관이다.


 


 


사흘이나 먹은 게 쌓여서 그려.


 


세상만사 모진풍파 다 겪고 달관한 無의 표정.


 


 


나는 일찍이 이보다 더 위트있고 명쾌한 대답을 들은 적이 없다.


 


 


 


 


며칠 전이다.


 


나의 근무지에서 일직 및 연수 등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한 짐 가득 싸매고 자취집으로 향할 참이었다. 처음엔 정말이지 혼자 가볼 심산이었다. 터미널에서 자취집까지 - 도보로 10분여의 여정이다 - 들고 가기엔 적잖이 무거운 양이었지만 조금 무리를 한다면 못들 것도 없는 무게였다. 그동안 돌쇠 마냥 밥을 먹어댔던 것도 모다 이런 데 발휘하려고 비축했던 참이었다고, 간만에 꽤나 그럴싸한 다짐을 하려는 내 자신에게 힘을 실어본다.


 


그러던 차에 나의 부친께서 말씀하시길,


'짐이 많으면' 데려다 주겠노라, 며 달콤쌉싸름한 제의를 건네셨다. 그깟 짐 조금 때문에 부친을 번거롭게 하긴 싫다,는 실로 오랫만의 효심이 고개를 치켜들 찰나!


 


여든 넘은 노모를 애지중지 모시는 그 귀농한 아들자식이, 마늘 까는 소일거리로라도 노모에게 '생의 의의'를 부여해주려 했던 그 기특한 효심.


나 또한 지금이야 말로 더욱 극진한 효심을 발휘할 때라고 말도 안되는 합리화를 시켜버렸던 것이다.


그 억지스런 합리화란 바로, 나른한 오후 집에 앉아 계시느니 이 딸내미 바래다 주는 겸, 카랑한 날씨 속의 드라이브도 즐길 겸, 겸사겸사 소일거리라도 하시는 편이 부친께도 좋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어찌 됐든 얄팍한 합리화로 포장된 효심을 안고 드라이브 - 라고 해두자 - 가 시작되었다.


한참을 달리는데 도로 옆 광활한 논 위 하늘로 때늦은 철새떼 한무리가 비행을 하고 있다. 그러는 데 어느 순간 도로 위로 줄지어 뛰어들어 낮고 위험한 비행을 하더니 이내 도로 건넛 논 위로 날아간다.


 


순간 놀란 마음에


 


어휴, 깜짝이야. 저 새들이 죽으려고 작정을 했군.


 


라는 나의 말에 부친의 말씀이 이어진다.


 


절대 차에 부딪혀서 죽는 일은 없다. 수천 수만 마리의 철새 떼가 군무를 이루며 도로 위를 낮게 비행한다 해도, 저들 나름대로의 철저한 계산과 질서정연함으로 비행하기 때문에 그럴 일은 없지.


.... 로 이어지는가 싶더니, 그들의 삶을 다소 철학적으로 관조하기까지 하신다. 부친 특유의 화법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순간, 아차 싶다.


 


언젠가부터 내가 나이를 먹어감과 동시에 부모님의 나이가 점점 더 들기 시작하면서부터 삶의 미미한 부분들을 내게 질문해오기 시작했다.


 


이건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거냐?


어라? 이게 그게 아니었나? 그럼 이럴 땐 어떻게 하는 거냐?


 


등등의..


 


그런 질문에 나는 나름의 가르침을 전수하면서 좀 자만했던 것 같다. 아니 많이 자만해 있었던 것 같다.


그게 잔소리든 가르침이든 끊임없이 내게 뭔가를 말하던 부모님에게서,이제는 내가 어느 한 부분이나마 당신들을 한 수 가르칠 수 있음에 쾌감을 느꼈던 걸까.


가소롭다.


알량하고 짧은 지식으로 부모님을, 그 삶을, 연륜을, 철학을 간과하려 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나의 가장 명쾌한 멘토는 다름아닌 내 부모였음을 고백해야 할 것 같다.


당시의 끊임없는 잔소리, 그 잔소리의 끊임없는 반복.


복습의 힘이었던가.


어렵고 힘든 상황에 닥쳤을 때, 혹은 내가 무언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고 느꼈을 때 불현듯 생각나는 말들은 모두 소소한 당신들의 말씀이었음을.


어쩌면 가장 단순했던 그 가르침이 가장 크고 명쾌한 가르침이었다는 걸 새삼 깨닫는 요즘이다.


 


 


어쩐지 부모에 대한 얘기를 늘어놓자니 괜시리 말이 많아지는 나이가 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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