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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떼"한테 돈 벌기

이양자 |2008.01.20 11:58
조회 234 |추천 0

 

                             '악어떼'한테 돈 벌기

 

 

 

역사는 반복한다. 그렇지만 주체는 바뀐다. 10년 전 IMF 외환위기와 비슷한 상황이 터졌다. 이번엔 미국이다. 지금 미국 금융은 몹시 어려운 처지에 몰렸다. 반면 10년 전엔 변방이던 나라들이 힘을 갖게 됐다. 그래서 역사는 재미있고, 공평하다.

"국제 금융기관들, '한국서 한몫 챙기자!'"

정확히 10년 전, 이런 기사가 조선일보에 실렸다(98년 1월17일 3면). 온 나라가 부도 위기에 몰렸던 시절이었다. 기사는 "메릴린치 등 세계적 투자은행 실무자들이 대거 한국 시장 조사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채권 은행들을 '악어떼'라고 비유하고 있다.

그 후 10년이 지나, '악어떼' 중 하나가 한국에 손을 벌렸다. 메릴린치한국투자공사(KIC)로부터 20억달러를 투자받기로 한 것이다. 이를 놓고 월스트리트저널은 '구제금융(bailout)'이란 표현을 썼다. 10년 사이 양쪽 입장이 뒤집혀 버렸다.

10년 전 위기 때, 미국은 앞장서서 한국을 도와주었다. 그 과정에서 미국 금융회사들이 우리의 궁색한 처지를 이용해 큰돈을 벌었다. 이젠 미국이 유동성 고갈에 빠져 SOS(구조신호)를 치고 있다. 반면 한국 금융회사들엔 투자할 여윳돈이 있다.

지금 미국 금융은 온통 난리다. 세계의 돈줄을 쥐락펴락하던 거대 은행들이 줄줄이 경영난에 빠졌다. 씨티그룹이 196년 만에 최대 적자를 냈고, 금융회사들 주가는 반토막 났다.

미국 금융의 고전은 당연히 세계 경제에 악재(惡材)다. 한국 경제도 타격이 크다. 미국발(發) 악재가 나올 때마다 주가가 폭락하고, 금융시장이 춤을 춘다. 미국 경제가 침체되면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으로선 대책이 안 선다.

그러나 한편으로 '기회'이기도 하다. 미국 금융회사들이 유동성 수혈(輸血)을 위해 헐값에 자기들 주식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내에선 돈을 댈 수 있는 곳이 없다. 그래서 손을 벌린 곳이 중동과 아시아다.

중동의 오일머니는 신이 났다. 극진한 환대를 받아가며 미국에서 '금융쇼핑'을 즐기고 있다. 싱가포르·중국의 국영 펀드며, 일본 은행들도 쇼핑에 가세했다.

미국의 대형 은행·투자은행들 주식이 평상시 같으면 상상도 못할 값에 넘어가고 있다. 알짜배기 자산들을 '땡 처리'로 팔았던 10년 전 한국과 비슷한 신세다.

여기에 한국 금융도 숟가락을 얹었다. KIC의 메릴린치 투자는 의미가 크다. 한국 금융 사상 최초로 세계 금융의 본산인 월스트리트에 국산 자본을 투하한 것이다. 앞으로 KIC는 주주 자격으로 메릴린치의 노하우와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조건도 좋다. 메릴린치로부터 연 9%의 배당을 받다가 3년 뒤 지분 3.1%로 전환한다는 조건이다. 미국 시중금리의 2배 이상 받는 셈이다. 게다가 시가(時價)보다 더 싸게 샀다고 한다. 메릴린치 사정이 그만큼 다급했다는 얘기다. 거래를 성사시킨 KIC와 재경부가 모처럼 큰일을 해냈다.

물론 투자가 성공으로 끝난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미국 경제가 망할 리 없다고 친다면, 성공할 확률이 상당히 높다고 봐야 한다. 그런 것을 알면서도 미국 금융회사들은 싼값에 주식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그 가슴 아픈 심정을 우리는 잘 안다.

사들일 수 있는 '쇼핑감'은 미국에 널려 있다. 부실화된 연체채권을 싸게 매입해도 좋고, 지방의 중소형 은행을 통째로 인수하는 것도 방법이다. 지금은 미국이 워낙 급해서 그렇지, 형편이 좋아지면 문이 닫힌다. 빗장이 걸리기 전에 우리가 10년 전 당했던 그대로 하면 된다.

남의 불행을 즐기자는 얘기가 아니다. 중동이나 싱가포르처럼, 우리도 기회가 왔을 때 활용하자는 것이다. 가끔은 '악어떼'한테 돈도 좀 벌고 그래야 세상은 재미 있다.



박정훈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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