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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ssroads

송상희 |2008.01.22 00:13
조회 54 |추천 1


Robert Johnson. 어지간한 음악팬이라도 '누구더라?'라며 고개를 갸우뚱거릴지 모를 이름이다. 몇 해 전 에릭 클랩튼의 헌정 앨범 발매로 인해 지명도가 조금은 올라갔을 이름이고 대중음악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음악은 못들어봤어도 이런저런 자료에서 한번쯤은 접했을 이름이며 블루스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겐 또 제법 친숙할 이름일테고  흔한 이름+흔한 성의 조합으로 인해 '그 로버트 존슨이 이 로버트 존슨인가?' 싶은 이름이기도 하다. 송강호의 팬이라면 넘버3에서 보여준 그의 국보급 연기를 떠올릴 법도 하다("헤이 존슨? 유? 유 로버트 존슨? 나 최영의야!")

 

1911년 태어나 1938년 질투가 심한 여자친구에게 독살당하기까지 27년의 짧은 인생동안 총 41가지 버젼의 자작곡 29곡을 남긴 전설 속의 블루스 뮤지션, 에릭 클랩튼은 그의 음반을 하얗게 되도록 듣고 또 들었다고 병아리 시절을 회상하고 있으며 어지간한 블루스 뮤지션 치고 그의 곡 한두개 리메이크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Lightnin' Hopkins나 Robert Lockwood Jr., 또 백인인 John Hammond Jr. 등 그의 연주를 제대로 흉내낸것만으로도 한 시대를 풍미하며 명인 소리를 들었던 뮤지션들까지 있었을 정도의 존재감을 갖는 뮤지션, 미시시피 델타 블루스와 1%도 관계가 없을듯한 주다스 프리스트의 글렌 팁튼마저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하는 바로 그 뮤지션, 하지만 지글거리는 LP에서 복원된 전설적인 노래와 기타연주 외에 단 1초의 영상도 전해지지 않으며 기괴해보이기도 하고 슬퍼보이기도 하는 2장의 흑백사진만이 남아있는 신비의 뮤지션이 로버트 존슨이다.

 

 

블루스가 모든 현대 대중음악을 통틀어 가장 긴 역사를 가지고 있고 20세기 초반의 음원까지 CD로 복각된 것을 고려하면 로버트 존슨이 블루스계에서 차지하는 역사적 위치가 '선사시대'급이긴 해도 '탄생설화'에 이를 정도는 아니건만 Blind Lemon Jefferson이나 Leadbelly, Big Bill Bloonzy, Lonnie Johnson 같은 19세기 말 출생의 선배들이 있음에도 그의 이름에서 유독 느껴지는 경외감과 신비스러움은 비단 그의 보컬이, 가사가, 작곡이, 그리고 무엇보다 신기의 기타연주가 가지는 무게감만으로 다 설명될 수 없는 영역의 것이다. 그렇다. 로버트 존슨은 십자로(Crossroads)에서 만난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최고의 음악실력을 얻었다'라는 미스테리한 소문의 주인공이다.

 

 

고전 블루스 음악 팬이라면 제법 가슴이 찡할법한 로버트 존슨의 레코딩 모습(물론 대역재현, 목소리나 슬라이드 주법 등 고증이 꽤 그럴듯하다)으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줄리어드 음대에서 클래식 기타를 전공하지만 블루스기타에 대한 동경에 가득찬 소년(랄프 마치오)의 모험 이야기이다. 다른 영화들과 차별되는 점이라면 그 소년이 찾아나서는 것이 엄마나 시체나 우연히 발견한 지도에 나온 보물이 묻힌 장소 따위가 아니라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로버트 존슨의 미발표곡'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소년의 모험에는 한때 로버트 존슨과 함께 활동했다는 늙은 블루스 하프 주자(물론 가공의 인물이다. 로버트 존슨이 남긴 레코딩에는 로버트 존슨의 목소리와 기타 외에 어떤 악기도 포함되어있지 않다)가 함께하는데 이 흑인 영감님이 애송이 백인 기타리스트에게 뱉어내는 핀잔들이 거친 삶을 살았던 실제 블루스 뮤지션들의 인터뷰와 너무도 닮아있어 블루스 팬들이라면 각별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펜더 텔레캐스터를 주무르는 랄프 마치오의 제법 그럴듯한 손놀림과 함께 흘러나오는 기타소리는 실제로는 이 영화의 음악을 맡은 라이 쿠더(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솜씨이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영화 내내 흥겨운 블루스 음악이 넘쳐흐른다. 영화 막판 악마에게 영혼을 판 기타리스트(실제 프로 기타리스트인 Steve Vai가 출연해서 가공할 테크닉을 선보인다)와 랄프 마치오가 '영혼'을 걸고 벌이는 기타 배틀은 이 영화의 백미인 동시에 '정통 블루스기타연주와 변칙적인 연주가 맞짱을 떠서 변칙연주가 이기고 그걸 또 클래식기타로 눌러 이긴다'는 승패의 공식(영화 내용과는 정반대의)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드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 장면을 보면 마치 랄프 마치오가 연주하는 블루스는 악마에게 영혼을 판 나약한 인간의 음악, 스티브 바이의 광적인 연주는 악마의 음악, 그리고 랄프 마치오가 역전승을 이끌어낸 클래시컬 속주는 천상의 음악으로 묘사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블루스를 동경하는 소년과 블루스의 전설을 몸소 써내려갔던 노인의 버디무비이자 로드무비에 라이 쿠더의 기막힌 음악, 로버트 존슨의 전설까지 더해지니 블루스 팬들에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간혹 랄프 마치오의 손동작이 소리와 안맞는다고 핀잔놓기엔 풋풋하면서도 고집어린 그의 캐릭터가 몹시도 사랑스럽다(이때 벌써 20대 중반이었지만 워낙에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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