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굿바이 마이 프렌드]와 [의뢰인]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브래드 렌프로가 세상을 떠난지 1주일도 안되서 또 하나의 슬픈 사건이 아침부터 영화팬들을 안타깝게 합니다. 호주출신의 연기파배우 히스 레저가 현지시간으로 어제 오후 뉴욕 맨하튼 자신의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불과 28살의 한창 나이로 팬들과의 작별을 고한 히스 레저. 현재까지 그의 사망원인이 정확하게 밝혀지진 않았지만 경찰측에선 약물과다 복용쪽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하는군요. 가뜩이나 국내도 그렇지만 할리우드 또한 최근들어 젊은 나이에 요절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직 28살밖에 안된 배우에게 연기파배우라는 말을 하기는 좀 그렇지만 연기에 대한 남다른 그의 열정을 생각하면 이 연기파라는 수식어는 굳이 나이를 먹은 배우들에게만 붙일 수 있는 수식어는 아닌듯 합니다. 비슷한 나이대의 다른 배우들과 달리 항상 작품선정에 많은 고민을 해왔으며 편한 길을 마다하고 어찌보면 일부러 힘든 길을 택해왔던 히스 레저. 오늘은 그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를 기억하려 합니다.
호주 퍼스 출신인 히스 레저는 유년기시절부터 연극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호주 tv 등에서 많은 활약을 합니다. 10대 후반에는 하키팀에서도 선수로 활동한 전력이 있는데, 그 때 그 팀의 구단주가 히스 레저의 아버지였다고 하는군요. 1997년 미국으로 이주한 히스 레저는 1999년 줄리아 스타일즈가 주연을 맡았던 영화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라는 로맨틱 코메디로 데뷰를 합니다. 덥수룩한 머리로 베일에 쌓인 터프가이역으로 인상깊은 연기를 선보여 일약 할리우드의 차세대 배우로서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게 됩니다. 그 후 차기작으로 출연한 영화가 멜 깁슨이 주연을 맡았던 전쟁물 [패트리어트]에서 멜 깁슨의 아들역으로 나와 왠지 연약해 보이면서도 은근히 강렬함이 느껴지는 배역을 훌륭하게 소화합니다.

10 things i hate about you (1999)

the patriot (2000)

monster's ball (2001)

a knight's tale(2001)
이렇듯 데뷰부터 순조로왔던 히스 레저를 일약 할리우드이 꽃미남 배우로 만든 것은 바로 [기사 윌리엄]이라는 코믹 액션 역사물인데요, 이 영화를 통해 히스 레저는 처음으로 단독 주연을 맡아 앞으로 그의 시대가 도래할 것임을 예고합니다. 물론 이 영화는 흥행에서도 어느정도 재미를 봤으며, 저 또한 그의 작품들 중에선 이 영화를 제일 먼저 봤는데,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왜 할리우드가 이 생소하기 그지 없는 배우에게 주연을 맡겼는지 영화를 다 보고나니 이해가 갔던 기억이 납니다. 이 영화의 성공 후 어찌보면 히스 레저로서는 앞으로의 탄탄대로가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약간 이상한 행보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같은 해에 공개되었던 영화 [몬스터 볼]에서 였습니다. 영화속에서 사형집행관으로 나오는 빌리 밥 손튼의 아들역으로 나왔던 히스 레저는 많지 않은 분량에 출연하지만 꽤나 진지하면서도(이전엔 볼 수 없었던), 충격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부분은 영화를 직접 보고 판단하시길.

the four feathers (2002)

the order (2003) - 국내 공개명 the sin eater

ned kelly (2004)

lords of dogtown (2005)
그 후 히스 레저는 물론 활동은 꾸준히 하지만 그동안 알고 있었던 청춘스타의 이미지는 온데간데 없이 너무 이른 나이에 주류권에서 멀어져갑니다. 2002년에 공개된 전쟁물 [포 페더스], 2003년에 공개된 미스터리 공포물 [씬(the order)]], 2004년 출연작인 [네드 켈리], 2005년 초에 출연했던 [독타운의 제왕들] 등 매해 꾸준히 활동은 하지만 영화들이 하나같이 흥행에서 참패를 했거나 제한상영식으로만 공개되어 북미 관객들은 물론이고 국내 관객들에게도 요즘 히스 레저가 활동을 하는지, 쉬고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그 존재가 미미해져 갔습니다. 그렇다보니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배우로서 조로증세를 보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낳았었는데요, 비록 영화들은 일반 관객들에겐 실패한 작품들로 기억되지만 가만히 하나하나 따져보면 그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려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작년말 [골든 에이지]를 발표했으며 과거 전편격인 [엘리자베스], [벤디트 퀸] 등 화제작들을 연출해 온 세자르 카푸르가 연출한 [포 페더스], [미스틱 리버], [LA 컨피덴셜], [페이백], [컨스피러시], [맨 온 파이어]등을 통해 각본 및 연출가로 명성을 날렸던 브라이언 헬게랜드 연출작인 [씬(the order)], 과거 호주에 있을 때 함께 작업한 경력이 있는 호주출신의 감독 그레그 조단의 실존인물을 바탕으로 한 드라마 [네드 켈리], 그리고 선댄스 영화제 감독상 출신인 여성감독 캐서린 하드윅이 연출한 스케이드 보더들의 이야기 [독타운의 황제들] 등 하나같이 심상치 않으며, 앞길이 창창해 보이던, 20대 초중반의 배우가 선택한 영화들이라고는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 작품들입니다. 하지만 이 당시 분명 히스 레저는 대중들의 관심에서 어느정도 벗어나긴 했지만 그 스스로는 연기에 대한 내공을 충실히 쌓을 수 있는 기회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casanova (2005)

the brothers grimm (2005)
그리고 그가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온 작품은 [개같은 내인생], [길버트 그레이프], [초콜릿]의 명감독 라세 할스트롬의 [카사노바]와 역시 [브라질], [트웰브 몽키스]의 명장인 테리 길리엄 연출작 [그림 형제-마르바덴 숲의 전설]이었습니다. 물론 두 영화 모두 영화속 히스 레저의 캐릭터가 약간은 코믹스러운 부분이 있었고 역시나 흥행에서도 인상적인 성적을 올리지 못해서 아쉽게도 그가 다시 팬들곁으로 돌아왔다는 것 이상으론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국내에선 [그림형제]가 먼저 개봉하고 [카사노바]는 [브로크백 마운틴]이 성공하면서 공개가 되어 현지의 반응과 국내 반응이 약간 엇갈리기도 합니다. 쉽게 말하면 [브로크백 마운틴]의 후광을 어느정도 업고 개봉한 영화가 바로 [카사노바]인 셈입니다. 그리고 히스 레저의 연기생활에 있어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작품 [브로크백 마운틴]이 공개됩니다. 아마 이 작품이 없었다면 이토록 그가 떠난 것을 슬퍼했을까. [브로크백 마운틴]이 없는 히스 레저를 상상할 수 있을까.




brokeback mountain (2005)
단순히 이 영화로 인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라갔다는 것은 일종의 덤이며, 공동 주연을 맡은 제이크 질렌할과 함께 히스 레저는 아름다운 풍광, 그리고 너무나도 인상적인 음악들과 어울려 절대 잊을 수 없는 명연기를 펼쳐보입니다. 다소 감정적이며 솔직하고, 저돌적이었던 잭 역의 제이크 질렌할과 달리 기쁨과 슬픔, 그리고 설레임과 아쉬움을 꾹꾹 참아냈던, 그렇기 때문에 더욱 아파해야만 했던 에니스의 모습을 정말이지 눈물나도록 실감나게 연기합니다. 사랑해도 사랑한단 말을 못하고, 그 누구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었던 에니스의 슬픔. 잭이 남겨놓은 피묻은 와이셔츠를 보면서 "jack, i swear.."를 읊조리던 모습은 히스 레저라는 배우를 기억하는 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candy (2006)

i'm not there (2007)

the dark knight (2008)
그 후 [캔디]라는 호주영화와 밥 딜런의 생애를 그린 영화 [아임 낫 데어]에 이어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올여름 최고의 기대작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역으로 출연해 많은 화제를 모았었습니다. 배트맨역을 맡은 크리스챤 베일보다 오히려 더욱 화제를 모았던 조커역의 히스 레저. 과연 과거 조커역을 맡았던 명배우 잭 니콜슨의 명성을 이어갈 것인지로 기대가 가득했는데, 아쉽게도 이 영화가 결국엔 그의 유작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의 인터뷰 기사를 보니 그가 이 [다크 나이트]에 출연하게 된 배경엔 그가 이제껏 연기했던 그 어떤 캐릭터보다 강렬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조커라는 캐릭터에 반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한 데뷰작부터 운이 좋았으며 일찌감치 스타의 반열에 올라섰지만 쉽지 않은 영화만 골라서 출연해 온 그의 심상치 않은 이력은 그가 모 잡지사와 인터뷰했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기사 윌리엄]의 성공 후 그에게 수많은 청춘물의 출연제의가 있었는데,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프로젝트(가벼운 청춘물)에 싸인하느니 차라리 빈둥빈둥 노는 게 낫다고 했다는군요. 어찌보면 나이에 비해 너무 조숙한 생각을 했던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만큼 실제연기에 대한 그의 남다른 사고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헤더 그레이엄 나오미 와츠 제이크 질렌홀 미쉘 윌리암스

한때 행복했던 히스 레저, 미쉘 윌리암스 커플
인터넷 무비 데이터 베이스(imdb)에 공개되어 있는 히스 레저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우선 그의 이름인 "heath"는 영화 [폭풍의 언덕]에서 남자 주인공의 이름인 "heathcliff"에서 따 온 이름이며, 미쉘 윌리암스를 만나기 전까지 호주에 있을 때 출연했던 드라마 "roar"에서 만난 리자 제인, 그리고 [오스틴 파워]의 헤더 그레이엄과 사귀었었으며, 영화 [네드 켈리]를 통해서 만난 나오미 와츠과 약 3년 정도 깊은 관계였다고 합니다. [브로크백 마운틴]을 통해 만난 미쉘 윌리암스(영화속에서도 아내역으로 나온다)와의 사이에 마틸다라는 딸을 하나 두었는데, 그 영화에 함께 출연했던 제이크 질렌홀이 마틸다의 대부라고 합니다. 평소에 미쉘 윌리암스를 자신의 "소울 메이트"라고 칭할 정도로 깊은 애정을 보였던 히스 레저였는데, 마틸다를 낳은 후 두 사람은 결국 헤어졌으며, 지금의 사건을 접하니 더욱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그의 캐스팅 비화도 몇가지가 있는데요, 올리버 스톤 감독의 대작 역사극 [알렉산더]에 원래는 히스 레저가 알렉산더역을 맡기로 했었는데, 차후에 그 배역이 콜린 페럴에게도 돌아갔으며, 주윤발이 출연했던 영화 [방탄승]에선 숀 윌리암 스콧이 맡았던 배역이 원래는 히스 레저에게 갈 뻔 했는데, 그가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올랜도 블룸과 함께 출연했던 [네드 켈리], 그리고 제임스 코스모와 출연했던 [포 페더스]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이 올랜도 블룸과 제임스 코스모는 후에 [트로이]에 함께 출연하며, 한때 제 2의 맷 데이먼이라는 찬사를 들었던 히스 레저는 후에 맷 데이먼과 함께 [그림형제]에 출연합니다. 또한 [물랑 루즈]로 유명한 바즈 루어만 감독의 2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한 영화에 출연제의를 받았지만 [다크 나이트] 출연때문에 거절했다고 하며, 소문에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함께 출연했던 제이크 질렌할도 [다크 나이트]에 출연한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그가 아닌, 그의 누나 매기 질렌할이 출연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히스 레저가 정신적으로 가장 의지하며, 가장 믿는 친구는 [링]과 [토크]에 출연했던 마틴 헨더슨이라고 합니다.

어차피 사람이란 건 언젠가는 죽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각자의 주변이나 여러 매체 등을 통해서 알게된 친숙한 얼굴이 죽으면 당연한 순리이긴 하지만 그래도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런데 도저히 우리와 이별을 할 나이도 아니고, 그럴 시기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돌연 우리와 이별을 고하는 경우는 잠시동안 사람을 멍하게 만듭니다. 물론 가족이 죽은 것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너무나도 사랑했던 특정 인물의 돌연한 죽음은 많은 팬들을 공황상태로 만들어 놓기에 충분합니다. 할리우드는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최근 몇년간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한 배우들을 종종 보게되는데요, 서두에도 이야기했듯이 아직 그의 정확한 사인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무슨 이유에서든지 그의 때이른 사망소식은 아침부터 가슴속을 무척이나 우울하게 합니다. 앞으로도 우리에게 보여줄 것이 더 많은 나이에 그동안의 작품만으로 그를 기억해야 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슬픈 일입니다.
가끔 엄청난 개런티를 받으며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을 보면 저런 사람들이 무슨 고민이 있을까 싶기도 한데, 그들의 내면을 파고 들어가면 결코 돈이라는 것이 행복의 지표가 될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깊은 외로움,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끝없는 싸움. 그저 팬들에겐 화려한 모습으로만 비춰지는 그들도 어차피 인간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평소 히스 레저라는 배우에 대해서 많이 안다고는 하지만 결국 그가 이렇게까지 되는 동안 어떤 아픔이 있었는지에 대해선 그 누구도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어찌보면 보통의 우리들보다 더 불쌍했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직업을 사랑했으며, 영화를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자 했던 히스 레저. 대체 무엇이, 어떤 고통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아침부터 답답한 심경을 토로할 곳이 없군요. 이제는 영원히 아픈 사랑에 눈물을 흘리던 에니스의 모습으로 기억될 히스 레저. 마치 먼저 떠난 잭을 따라간 에니스같은 기분을 느낀 것은 비단 저 뿐일까요. 부디 하늘 나라에 가서는 행복하길 바라며,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굿바이 에니스"

히스 레저(Heath Ledger)를 추모하며 (1979-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