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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야 문제는 아이디어야

박은하 |2008.01.25 04:22
조회 128 |추천 0

우리는 아무리 영어공부를 죽어라고 해 봤자

미국의 지하철역 거지보다 영어를 유창하게 할 수 없어.
그럼 어쩔 수 없으니 포기해야 하나?
아니지, 우리는 아이디어로 승부해야지.
중요한 건 영어로 말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영어로 말하는 내용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가 아니겠어?

한국 학생들이 회화수업을 못 들어서 영어를 못 한다고?
천만에. 문제는 아이디어야!

 

2007년 2학기 서울대학교 대학영어 수업에서 강사님이 하신 말씀이다. 나는 부끄럽게도 간만에 듣는 아침 수업에 적응하지 못하여 끝내 이 수업을 끝까지 듣지 못하였지만, 이 말을 들은 것만으로도 큰 가르침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그 이후로 외국어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다고나 할까. 발음에 대한 컴플렉스도, 완벽함에 대한 조급함도, 영어권 국가에서 태어나지 않은 데 대한 한(!)도 날려버릴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 후로 영어공부를 할 때면 문법이 무엇이고, 어떻게 쓸 것인가보다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전달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 영어가 좀 더 즐겁다. 결국 자기 아이디어를 내는 일이니까. 돌이켜보면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보다 어눌하게나마 기가 막히게 특이한 생각을 말하던 사람을 늘 북돋아 주신 이 분의 수업을 중간에 그만두었다는 것이 정말 후회스러운 노릇이다.

 

더욱 안타까운 건 인수위 사람들이 이 말을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요즈음 인수위가 내 놓는 교육개혁안을 보면 걱정스러운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지만, 특히나 영어교육과 관련해서 가장 심각하다. 그들은 섣부른 개혁을 표방할 게 아니라 자신들의 영어교육에 대한 근본적 가치관과 접근방식부터 되돌아 보아야 하지 않을까.

 

대학수학능력시험과목을 줄여서 학생들의 부담을 덜게 해 준다는 방안에 비판을 이미 한 바 있다. 어차피 상대평가인 제도 하에서는 부담이 전혀 줄지 않을 뿐더러, 다양한 과목의 기초지식이 결여되어 학생들의 사고력과 지식능력이 저하되는 이른 바 일본 여유교육 세대의 부작용이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여하간에, 인수위에서 수능과목 수를 줄이는 방안을 발표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외국여영역을 폐지하고 토익과 같은 별도의 영어시험으로 대체한다니. 이거 예상을 훨씬 뒤엎는다. 내가 수험생이라면 이렇게 말하리라.

 

바보들아! 할 게 더 늘어나는 거잖아!!!!

 

수험생의 부담이 극심해진다고 하더라도, 전 국민의 영어실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된다면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그러하지 못하다. 일 년에 4회 예정이라는 새로운 영어평가방식은 말하기와 듣기 위주로 구성될 것이라고 한다. 이 대목에서 강사님이 하신 말씀을 한 번 더 인용해본다.

 

"평생 How are you 만 하고 살 것이냐?"

 

그렇다.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은 사고력이지 How are you 가 아니다. How are you ?에 기계적으로 Fine Thanks라고 말하는 것이 버릇에 남아, 자동차 사고를 당한 상태에서도 상대방의 말에 Fine Thanks라 답했다는 실화는 우리 영어교육의 고질병을 지적하는 대표적 에피소드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간과한 것이 있다. 우리는 그 와중에도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영어 때문에 성장한 것이 아니며, 영어 때문에 망하지도 않는다. 일본과 독일이 영어강국이라 세계 수출품 1위인가. 일본 애니매이션이 영어로 만들어져서 미국시장 석권하는 게 아니지 않는가. 중요한 건 자국의 기술력과 문화적 토양이지.

 

독서교육은 이미 논술시장에 포획당했고, 수능 과목수는 줄이고. 영어의 경우도 수능 외국어영역의 다양한 지문들이 오히려 아이디어의 측면에서는 더욱 나을 거 같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안타까운 현실은 영어를 이처럼 아이디어의 차원에서 재미있게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끝끝내 입시에 목메여, 자신의 운명을 쥘 전투에 임하는 것처럼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디어는 개뿔. 안 싫어지면 다행이다.

 

그러니 수학, 과학 등 일반과목도 영어로 수업하자.

 

인수위에서 내 놓은 대책이란 이런 것인데 그 명분은 "영어를 공교육에서 해결할 수 있게 해 주겠다"는 것이다. 2010년. 고작 2년 후다. 대학에서도 영어강의는 말이 많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급속히 영어강의만을 도입하니 학생과 강사도 모두 혼란스럽고, 굳이 영어로 하지 않아도 될 강의들을 영어로 하니 강의의 질도 낮아지는 것이다. 이런 현실들을 외면하고 고등학교에 대입한다?

 

인수위의 이 방안은 "영어를 공교육에서 해결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공교육을 받을 기간동안 어떻게든 해치울 수 밖에 없도록 해 주겠다"는 엄포에 지나지 않는다. 수학, 과학과 같은 어려운 과목은 지금도 사교육이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이를 영어로 한다면 불을 보듯 뻔한 결과이다. 수학, 과학 과외에 이어 극심한 영어과외. 부담은 이중으로 들고, 수학은 수학대로 모르겠다. 우리 말로 알기 쉽게 정확하게 가르쳐주는 것이 보통교육의 이상 아니던가.

 

대체 우리는 무리까지 해서 왜 이래야 하나

 

사교육 문제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영어로 미적분을 이해할 수 있는 학생이라면 굉장한 인재겠지만 전 국민이 모두 이럴 수도 없고, 이래야 할 필요도 없다. 누군가는 정말 How are you만 할 줄 알면 그만인 것이고, 누군가는 학술영어가 필요하고, 누군가는 비속어와 은어까지 넘나드는 드라마 잉글리시가 필요한 것이다. 평생에 영어가 필요없다면 안 하면 그만이다. 영어공부 이전에 자기가 왜 영어를 공부해야 하는 지 목표가 우선이니까 말이다.

 

글로벌 시대에 한국에 투자하러 온 외국인이 길 몰라서 길 물어볼때 국민들이 대답하지 못하면 부끄러워서 설마 전 국민에게 영어교육 시키겠다는 것인가. 걱정마라. 그 정도 큰 손들은 월가에서 컴퓨터만 까딱이면 그만인 것이며, 한국 오면 리무진 택시 타고 들어올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정녕 부끄러운 건 국민들이 스스로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채 이유도 모르고 영어에 목 매는 거 아닌가.

 

영어교육에 대한 투자는 결코 글로벌 한국을 위해서가 아니다. 영어 잘 하면 어쨌거나 출세하는 동네가 한국이니까, 그래서 제 옆 짝보다 잘 살기 위해 한국인들은 영어에 올-인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나. 대입가산점, 입사가산점. 그리고 이제 고등학교 성적까지. 싱가폴, 인도 등과 비교하는데 영어권 식민지 국가였던 나라들과 영어실력을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그러면 왜 필리핀하고 비교하지 않는 건지 묻고 싶다. 국민들 영어 거의 못 한다는 독일은 왜 빼 놓는가. 일본은 영어컴플렉스가 심한 나라긴 하지만, 정작 맥도날드를 '마구도나루도'라고 읽어도 일본경제에는 아무 지장도 없다. 유럽에 나가면 영어보다 중요한 언어는 독일어이며, 중남미에 가면 스페인어가 최우선이다. 이들 나라어는 배우고 싶어도 사실 지방의 경우는 특히나 학원조차 찾기 힘들다. 즉 글로벌은 핑계이며, 영어는 국내에서의 일종의 계급을 가르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게 현실적일 것이다. 당연히 외국문화에 접근성 강하고, 사교육을 많이 동원할 수 있는 쪽이 독점한다.

 

그러니까 영어교육의 강화는 오히려 기득권의 '자기 꿀단지 지키기'에 지나지 않는다.

 

글로벌 한국과 아무 상관 없으며, 그저 교육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한참 가격하다 확인사살을 한 방 날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대다수 이러한 체제에 아무런 득을 보지 못할 우리들은 이런 꼭두각시 놀음에 놀아나지 말자.

 

아까도 말했다. 문제는 아이디어라고.

 

글로벌 한국의 경쟁력은 다양한 분야의 아이디어에서 나오는 것이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을 발하는 개성있는 인재들이다. 이를 영어로 옮겨서 영미문화권(전 세계가 아니다) 속에 퍼트리고자 한다면, 그럴 수 있는 인재 몇몇만 제대로 양성하면 그만이다. 

 

실제 국민들의 영어실력 향상에 도움되지도 못하고, 사교육비는 증가하고, 국가경쟁력을 오히려 떨어뜨리기만 하는 실용정부의 전혀 실용적이지 않는 구상. 제발 그만두어야 하지 않을까. 무한도전은 아무리 무모하다 한들 도전할 수 있는 것에 도전하는데, 인수위의 도전은 아무리봐도 '미션 임파서블'이다. 애초에 계급재생산의 혐의를 지울 수 없는 이 불가능한 데 도전했다 생기는 사회적 비용은 대체 누구더러 지불하라고 할 거기에 이토록 무모한가.

 


근본부터 잘못된 이런 영어교육따위 밀어부쳤다가는 나의 수강신청철회와는 차원이 다른 후회를 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한데. 문제는 아이디어인데, 미래 세대를 파괴할 아이디어만 내 놓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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