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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같은세상

박준규 |2008.01.28 16:44
조회 91 |추천 2
 광야같은 세상


 우리는 예배드리는 중 ‘광야같은 세상’이라는 말을 종종 접하게 된다. 으레 무심코 넘겼던 이 말은, 작년 2007년 나에게 많은 것을 고민케 하고 생각하게 했다.


 난 올해로 7년차로 접어드는 중등교사이다. 주변에서는 나를 부러워하기도 하고 ‘안정된 자’라고 놀림 아닌 놀림을 받기도 한다.  이런 안정된(?) 나를 가난케 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나에게 많은 숙제를 주셨고, 난 그 숙제 가운데 고민하고 힘들어 했다. 쉽지 않은 숙제 가운데, 난 풀리지 않는 딜레마라고 쉽게 단정짓고 타협하려 했으나 하나님은 그런 나를 그냥 두지 않으셨다. 우연찮게 드린 수요예배 가운데, 하나님은 나에게 답을 주셨다. 그 답이 바로 광야 같은 세상이다.


난 실업계 고등학교 4년을 근무하고 지금은 무늬만 인문계 고등학교인 쉽게 말해, 2차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담임을 맡고 있다. 지금의 학교로 전근 오기 전 난 ‘ㅈ’ 공고에서 가출한 남녀학생을 뒤엉킨 여관방에서 잡아오기도 하고, 새벽 2시까지 경찰서에서 경위서도 쓰기도 하며, 임신해서 낙태수술 받게 하는 남학생을 상담하고 무면허로 렌트카로 사고 낸 우리 반 학생의 일을 뒤치다꺼리하는 등 많은 일들을 경험하며 ‘이젠 어디에 가더라도 잘 할 수 있을거야! ,어딜 가든 여기보다는 낫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런 나의 안정된 생각을 철처히 부수셨다.

 

 우리학교에 오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중학교 성적이 80~90%이다. 그 중에는 실업고에 떨어지고 오는 애들도 상당수이다. 쉽게 말해 공부하기 싫어서 실업고를 간 학생들이 거기마저 떨어지고 우리학교로 왔다. 실업고 수준도 안 되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정상 수업하는 것 조차도 많이 힘들어 한다. 학교에서는 이런 학생들의 수준을 아는지 모르는지 공장에서 제품을 찍어내 듯 정규수업에 보충수업에 야간 자율학습까지 강제로 돌려버린다. 그리고 그 몫은 고스란히 담임에게로 돌아가버린다. 강제로 보충수업에 야자까지 많이 남기는 교사는 유능하고 열심히 한 것이고 숫자가 가장 적으면 게으르고 무능한 것으로 치부되고 만다. 인격적으로 애들을 만나고 상담하고 교육하고 싶지만 그렇게 하면 우리반은 늘 꼴찌를 면할 수 없다. 우리반이 꼴찌가 되는 날이면 부장, 교감, 교장까지 3 콤보로 눈치를 받고 책망을 받게 된다. 내 마음속에서는 늘 2가지 갈등이 일어난다. ‘어떻게 해야 하나? 그냥 쉽게 남들하는 것처럼 모질게 독하게 타작하고 잡을 것인가? 아니면 늘 게으르고 무능하게 보이며 인격적으로 할 것인가?’ 아이러니하게도 전자는 즉각 효과가 나타나며 후자는 1년이 지나도 쉽지 않다. 나중에 그 학생들의 머릿속에 기억될지는 모르나...... 후자모드로 지도하다가 내ㆍ외부의 압박이 거세지면 전자의 방식으로 타협을 하는 나 자신을 보게된다. 하지만 교육을 하면 할수록 그것은 이미 비교육인것이다. 아무런 의미도 없이 목적도 없이 학생들만 학교에 잡아두고 그 수만 채우면 난 교육을 잘 한 것이고 유능한 것이다.

 

 얼마전 신문에서 그랬던가? ‘영혼없는 공무원’이라고... 그 상황은 지금 우리 학교의 상황을 잘 반영해준다. 비교육의 방식으로 연명하던 중 난 끝내 생각의 종착역으로 다닫게 된다. ‘내가 여기서 무슨 짓을 하고 있나? 내가 이 짓거리(?) 할려고 선생님이 된게 아닌데...’ 작년 첨으로 난 교사로서의 회의를 느끼며 선생님이 된 것을 후회하고 무능한 나 자신이 한없이 못나 보였다.

 

하나님은 내 안의 가능성이 0이 되는 지점에서 나를 만나주셨다. 정확히 말하면 그 지점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기 시작했다. 수요예배를 드리던 중 목사님의 설교가운데 ‘광야같은 세상’이라는 말을 듣는 중에 난 나도 알 수 없는 눈물을 주르르 흘리게 되었다. 하나님이 나의 병든 마음을 만지신 것이다. 그 말은 나의 회의와 고통, 그리고 녹녹치 않은 내 삶을 정리해 주었다. 그렇다 세상은 광야인 것이다. 그토록 많이 들어왔는데 왜 내가 실감하지 못하고 대수롭게 여겼을까...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그들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하나님을 붙드는 것이었다.  그들의 가능성은 없는 것이다.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만 보고 나아가면 된다. 하나님과 함께 하기에 어쩌면 안정되고 풍요로운 가나안의 삶이 축복이 아니라 광야에서의 삶이 축복의 삶인 것이다. 그렇게 힘들어 하고 고민하면서도 난 진정으로 하나님께 그 문제를 내어놓지 않고 신뢰하지 않았다. 교만하게 나의 방법과 의지로 살아가고 결국 망신창이가 되었을 때 하나님의 음성이 나에게 들렸고 난 그곳에서 새롭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린 오늘도 광야같은 세상을 살아간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세상이 광야임을...... 우리가 광야인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 뿐이다. 그냥 하나님께 맡기고, 내려놓아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다.


 오늘도 내 앞엔 2가지 갈등이 놓여있다. 하지만 이젠 난 답을 알고 있다. 이 세상은 광야이다. 세상이 광야라는 것을 안(야다) 이상 난 더 이상 두렵지가 않다. 그 어떤 문제도 두렵지가 않은 것이다. 원래 세상은 광야였으므로......

그 어떤 어려움도 나에겐 의미가 없다. 광야같은 세상 속에서 난 하나님만 의지하면 되기 때문이다.


♬♪ 광야같은 세상에~~ 주만 의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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