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ust, 그것은 곧 이율배반적인 또 다른 믿음으로 이어진다.
최소한 나에게 있어 '사랑'이란 가치는 마치 독실한 기독교 신자들에게 '하나님'만큼의 절대적이며, 거부할 수 없는 필연적 존재였었다.
허나 22년 동안 절대부동적이고 굳건 할 것만 같았던 '사랑'이란 석상은 세 달 남짓 짧은 기간의 경험들에 의해 서서히 무너져갔다.
결국 세 달간의 흔적들이 사랑, 이별, 추억, 그리움을 주제로한 수식어와 치졸할 만치 아름답게 포장된 글들로도 합리화 되지 못하게 되었고, 끝내 그것에 대한 신성한 믿음은 더럽고 추악한 것으로 체내에서 배설되어질 존재로 타락해버렸다.
분명 우리의 관계는 적어도 내 절대적인 믿음안에서는 합리화 될 수 있었고, 존재할 수 있었다. 즉, 사랑에 관련된 추잡한 몸짓들 까지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었으며, 헤어짐 그 후에도 넌 내 안에서 존재 할 수 있었다.
.... 그러나 미련하고 무지에서 나온 절대믿음은 헛점 투성이었고, 마치 너는 적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는 맹수, 전투사만큼이나 그 약점들에 대해 잔인하다 못해 공포스러울 정도로 물고 늘어졌다.
그렇기에 나는 언제나 너에게 있어서 약자였으며, 너에게 더욱 집착 할 수 밖에 없었다.
'스토커'
관계가 없어진 우리 사이에 남겨진 내 새로운 '타이틀' 이었으며, 내 믿음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물론 그런 태도들로 내가 얻을 것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정해진 결말에 점점 두려워 지기도 했다. 받지 않는 전화를 몇번이고 반복해서 걸며 끝끝내 기대했던 것은 아마도 네가 아니라 너를 부정함으로서 나를 찾고자 했던 것이었을 것이다.
....
3개월..
그 기간에 대한 결말의 정의는
'섹스', '욕망', '스토커', '더러움'
.. 그리고 서로의 존재에 대한 부정과 무너진 믿음 단지 그 뿐 일 것이다.
굳이 하나더 추가하자면 무너진 믿음 속에서 피어난 이율배반적인 지독히 더러운 새로운 믿음정도일까나?
Trust, 그것은 곧 이율배반적인 또 다른 믿음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