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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dio]소리로 만나는 아프리카

이장연 |2008.02.12 12:48
조회 28 |추천 1
[Radio]소리로 만나는 아프리카

기획,제작 – 경계를 넘어 ( http://www.ifis.or.kr )
제작지원 – 다음세대재단( http://www.daumfoundation.org )

인류의 문명이 시작된 곳이자 10억에 가까운 사람들이 사는 광활한 대륙. 아프리카!

당신은 아프리카를 어떤 이미지로 기억하고 있나요?
얼룩말과 사자가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곳, 혹은 각종 분쟁과 기아, 독재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자는 곳 정도가 전부가 아닌가요?

서구 세계가 비서구적인 세계를 '야만'과 '신비'라는 두 개의 서로 극단적인 이미지로만 기억하듯,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 또한 아프리카에 대해 '아름다운 대 자연'과 '혼란과 가난의 검은 대륙'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죠.

그러나, 과연 이것이 아프리카의 참모습일까요?

그 동안 우리는 아프리카인들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그들이 간직했던 꿈과 희망, 그들의 삶과 문화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관심도 부족하지 않았나요?

자, 이제 아프리카에 대한 그 동안의 무관심과 고정관념을 탈탈 털어버리고,
경계를 넘어와 함께 아프리카 음악에 어깨와 엉덩이를 들썩이며,
아프리카의 참모습을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나보아요^^



[방송 듣기](총 20회 방송예정)

1회: 아프리카는 무엇일까?
http://www.ifis.or.kr/bbs/board.php?bo_table=media_radio&wr_id=35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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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일: 2008년 1월 3일 목요일

[방송 내용]

소리로 만나는 아프리카 첫 시간입니다. 먼저, 이번 꼭지를 준비하면서 들었던 가장 근본적인 의문점은 과연 아프리카가 무엇일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아시아가 무엇이냐, 과연 아시아의 수많은 나라들을 하나로 연결시켜 주는 것이 무엇이냐고 했을 때, 선뜻 ‘이거다’라고 대답하기가 어려운 것처럼 아프리카도 마찬가지 인 것 같습니다. 물론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아프리카 밖의 우리들이 아프리카 하면 떠올릴 수 있는 여러 가지 공통된 이미지들, 밀림과 초원, 원주민, 가난, 식민주의, 기아, 노예무역, 분쟁 등등이 있겠지만, 그것들이 과연 진정한 아프리카의 정체성, 참모습일까, 우리의 무지가 낳은 편견이 아닐까 하는 질문을 던져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바로 그렇게 우리가 모르는 세계와 사람들에 대한 무지와 편견을 되짚어 보고 깨는 것, 그것이 이번 를 준비하게 된 계기겠죠. 그리고, 아프리카란 무엇일까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20회를 진행하는 동안 우리 스스로 답을 찾아볼 과제인 것 같습니다.

자, 그럼 오늘은 첫 시간이니만큼 앞으로 우리가 알아나가고 듣게 될 아프리카의 소리, 음악들의 맛보기로, 각자 다른 색깔과 맛의 음악 세 곡을 준비했습니다. 먼저, 저희가 에서 처음으로 들려드릴 아프리카의 소리는 바로 이런 소리입니다.

1번 곡 : http://www.youtube.com/watch?v=eYY4WhdlS2c&feature=related

어떠셨세요? 방금 들려드린 곡은 아프리카 서부에 위치한 말리의 세가 씨세(Sega Cisse) 란 분의 젬베(Djembe) 연주 중 일부분이었는데요, 젬베는 아프리카의 수많은 타악기 중에서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악기죠. 올 해 이미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의 세가 씨세는 아프리카에서 많은 타악 연주가들을 양성해온 젬베의 대가(master)로 추앙받는 인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미 알아차리셨겠지만, 이 곡만 해도 녹음시설이 잘 갖춰진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것이 아니라 어느 마을에서 주민들과 함께 춤을 추면서 직접 연주하는 모습을 담은 것입니다. 이처럼, 아프리카의 음악은 애초에 단순히 듣고 감상하는 예술로서가 아니라 삶의 일부분, 아니 삶 그 자체를 표현하는 일종의 언어로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즉, 다른 대륙에서처럼 귀족들이나 엘리트들이 독점하는 예술로서의 음악, 세련된 기교와 특별한 재능을 필요로 하는 음악 같은 것은 없었다는 거죠. 물론 음악을 통해 오락을 즐기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구체적인 목적을 가진 언어로서 누구나 음악의 작곡자이자 연주자, 가수이자 동시에 관객의 역할을 했었습니다.

예를 들어, 무당들이 하는 음악은 정신 세계와 현실 세계를 이어주는 통신 수단으로 기능했었구요. 부족과 부족끼리, 사람과 사람끼리 서로 소통하는 통신과 신호의 수단으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질병과 죽음을 슬퍼하는 음악, 출생과 결혼을 축하하는 음악, 소년, 소녀, 남자, 여자를 위한 노래, 통나무 운반이나 방아질 같은 힘든 노동의 부담을 덜어내기 위한 노동요 등 주제와 목적에 따라 다양한 음악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평소 족장에게 감히 할 수 없는 이야기나 부족의 의사 결정에 대한 찬성이나 반대를 표현하는 정치적인 도구로도 음악이 사용되었습니다. 아무래도 말로 하는 것보다 노래와 음악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 상대가 듣기에 훨씬 덜 공격적이었으니까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우리가 아프리카 음악 하면 흔히 둥둥두둥 하는 북소리만을 연상하게 되는 데요. 아까 들려드린 젬베 연주처럼 아프리카 음악에서 북을 비롯한 타악기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프리카 사람들은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생활 속의 재료들을 가지고 다양한 악기들을 만들어 연주했었습니다. 나무 소리판위에 줄기을 엮은 하프와 같은 소리를 내는 음비라(mbira)란 악기도 있었구요. 막대기로 호리병박에 줄을 매단 현악기도 있었고, 소의 뿔이나 코끼리의 송곳니로 만든 관악기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프리카를 인류의 문명이 시작된 대륙이라고 하는데, 음악과 악기에 있어서도 이런 아프리카의 악기들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악기들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자, 시간이 흐르고 흘러 아프리카에 서구의 식민주의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아프리카는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소위 ‘근대’와 마주치게 됩니다. 그에 따라 원하든 원치 않던 수백 년 간의 식민 지배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됐고, 아프리카의 음악도 당연히 서구의 근대적인 음악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겠죠.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아프리카 민중들에게는 삶이 곧 음악이었으니까 삶이 바뀌면 음악도 바뀔 수 밖에 없는 거죠.

짧은 시간에 그 변화의 과정을 일일이 설명 드리는 건 불가능할 것 같구요. 아무튼, 아프리카가 근대화된 서구 문명을 만나 오늘날엔 이런 음악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2번 곡 : Amor di um Mindjer (비딘테)

이 곡은 서아프리카에서도 서쪽에 위치한 기니비사우 출신의 비딘테(Bidinte)란 뮤지션의 Amor di um Mindjer(뜻은 저도 몰라요 ㅠ.ㅠ.)입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이 곡을 들으시고 “뭐야, 이건 아프리카 음악이라기보다는 그냥 깔끔한 재즈곡이잖아?” 하고 생각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맞습니다, 재즈곡 맞고요. 창법이나 여자 백보컬의 목소리, 그리도 뒤에 작게 깔린 타악기 소리를 제외하고는 우리가 흔히 듣는 재즈곡과 별반 다를 바 없지요.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갈 점 한 가지는 재즈의 뿌리는 바로 아프리카 음악이라는 거죠. 재즈 뿐만 아니라 블루스, 힙합, 알앤비, 삼바, 살사, 탱고 등이 모두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리듬에 서양의 팝음악이나 캐리비안, 라틴 아메리카의 리듬을 접목시킨 아프리카의 자식들입니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아프리카의 음악이 서구에 의한 근대화의 영향을 받아 바뀌었다기보다는, 서구의 식민화와 노예 무역 과정에서 아프리카 음악이 바다를 건너 서구와 다른 대륙의 음악과 리듬을 변화시켰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죠. 음악이 족발은 아니니까 원조 논쟁은 그리 무의미 하겠지만, 굳이 따진다면 우리가 오늘날 흔히 듣는 수많은 대중음악들의 뿌리는 상당부분이 아프리카에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겁니다.

이렇게 아프리카의 소리는 오늘날 비단 아프리카 뿐만 아니라 전세계 곳곳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당연히 아프리카 출신의 음악인들도 유럽, 미국 등지에서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리는 음악을 들려주고 있구요. 아직 아프리카 음악이 생소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에서도 아프리카 음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몇 년 전에는 한국에서도 쿰바야 라는 아프리카 타악 그룹이 생겨났다고도 하죠. 저희 에서도 쿰바야의 음악을 한 번 들려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음 시간부터는 아프리카 출신의 주요 음악인들을 한 명 한 명 소개하면서 더불어 그 나라의 어제와 오늘에 대한 이야기도 같이 풀어볼 예정입니다. 그리고 다시 처음의 질문, 아프리카가 과연 무엇이냐 하는 질문과 관련해서, 지리적으로는 아프리카 대륙에 위치해 있지는 않지만, 서구 식민주의자들에 의해 노예로 끌려갔던 아프리카의 후손들과 그들의 문화, 음악에 관한 이야기도 이번 시리즈에서 잠깐 다뤄보는 시간이 있을 겁니다.

그래서 이번 시간의 마지막 곡으로, 아프리카의 음악이 바다를 건너가 대중화된 대표적인 장르인 레게 음악 한 곡을 들려드리면서 오늘 첫 회를 닫도록 하겠습니다. 밥 말리 이후 가장 성공한 레게 뮤지션이란 평을 듣는 블랙 우후루(Black Uhuru)의 ‘Guess Who's Coming to Dinner'입니다.

3번 곡 : http://videoreggae.blogspot.com/2007/11/black-uhuru-most-successful-reggae-act.html


2회: 영혼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진통제, 유수 은두르(Youssou N’dour)
http://www.ifis.or.kr/bbs/board.php?bo_table=media_radio&wr_id=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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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일 : 2008년 1월 7일

[방송 내용]

오늘은 그 두 번째 시간으로 흔히 비서구 출신으로는 밥 말리 이후에 가장 성공한 음악인으로 꼽히는 세네갈의 유수 은두르(Youssou N'dour)의 음악들을 준비했습니다.

사실 저희가 를 준비하면서 애초 기획안에는 유수 은두르를 소개하는 시간의 제목을 ‘영혼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진통제’라고 갖다 붙였었습니다. 애초에 이런 제목을 정할 때는 ‘유수 은두르란 뮤지션이 몇 년도에 어디서 태어나서 어떻게 음악활동을 했는데, 그가 태어난 세네갈이란 곳은 이런 나라고, 그의 음악의 사회적인 배경은 이렇고, 또 과정에서의 에피소드가 있으면 잠깐 소개하기도 하면서, 정말 이국적이면서도 감미롭고 그의 음악은 아프리카 뿐 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과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있다 어쩌구 저쩌구...’ 이런 식으로 진행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저희도 이 기획을 준비하면서, 자료도 찾아서 읽으면서 공부도 하고, 전혀 모르던 음악도 처음으로 접해보고 그러는데요, 이제 겨우 두 번 째 꼭지를 하면서 벌써 이 방송을 준비하는 저희도 참 생각이 짧고 단순하고, 우리가 아프리카에 대해서, 아니 우리를 포함한 비서구적인 사회의 문화를 이해하고 판단하는데 있어서 일종의 뭐랄까요, 편견이랄까요 인식의 한계랄까요 그런 것들을 가지고 있었구나 하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에 대해서는, 그래도 이 꼭지가 음악을 들으면서 진행되는 꼭지니까, 일단 유수 은두르의 곡을 한 곡 듣고 이야기를 이어나가도록 하지요. 첫 곡으로 준비한 곡은 2005년 미국의 그래미 시상식에서 월드뮤직 앨범상을 받았던 앨범 ‘Egypt'에 타이틀곡으로 수록된 곡 '알라(Allah)'입니다.

1번 곡 : http://blog.naver.com/you8726?Redirect=Log&logNo=60035178351

첫 곡으로 유수 은두르의 '알라'를 들려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곡을 듣고 나서 의아해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어, 이건 아프리카 음악이 아니라 중동 쪽 음악처럼 들리는걸?’ 하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흔히 아프리카 하면 소위 ‘검은 아프리카’ 특유의 빠르고 힘있는 음악만을 연상하지요. 그런데 아프리카를 지리적으로 크게 나누면 사하라 사막을 기준으로 해서 사하라 사막 이북과 이남으로 나누는 것처럼 당연히 음악도 사하라 사막 이북의 북부 아프리카와 이남의 중남부 아프리카 음악으로 크게 구분이 됩니다.

중남부 아프리카의 음악이 첫 시간에 들려드렸던 타악 연주처럼 흑인 문화 고유의 색깔이 아주 짙게 배어나오는 반면에, 북부 아프리카 음악은 아프리카 흑인들의 음악과 아랍 쪽의 음악이 서로 혼재되어 있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지리적으로도 아랍 쪽과 가깝고 종교적으로도 이슬람 국가들이 많습니다. 물론 유수 은두르가 태어난 세네갈은 아프리카 서쪽 끝에 위치해 있어서 중동과는 아주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지만, 국민들의 95%가 11세기부터 전파된 이슬람을 믿기 때문에 문화적으로 아랍과 아주 비슷하죠. 그래서, 음악도 아랍권의 음악적 색채가 많이 묻어나오는 겁니다. 제목부터도 ‘알라’잖아요.

유수 은두르는 1959년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에서 태어났습니다. 불과 12살의 나이에 음악활동을 시작할 정도로 음악 신동 축에 끼었던 은두르는 세네갈 전통음악에 미국식 재즈와 소울, 락과 아프로-쿠반 음악 등의 영향이 섞이며 발전한 음악을 일컫는 음발락스(mbalax)의 선구자로 불립니다. 그가 세네갈 전통음악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 이유는 어머니가 ‘그리오’라는, 세네갈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음악인이자 노래로 기도를 이끄는 사람이자 지나간 역사를 이야기해주는 세습음악인 가문 출신이었던 점도 작용했고, 또한 오랫동안 서구의 식민지로 살아오면서 서구인도 아니고 아프리카인도 아니게 되어버린 세네갈 사람들의 정체성 혼란을 극복하려는 ‘흑인으로서의 문화적인 긍지, 흑인으로서의 자각을 촉구하는’ 네오폴드 세다르 상고르 초대 세네갈 대통령의 ‘네그리튜드 운동’의 영향도 있었습니다.

아무튼, 그런 그가 유럽과 미국에까지 널리 이름이 알려진 데는 1980년대에 지금의 자신의 밴드인 ‘수퍼 에뜨와 데 다카르’란 밴드를 결성하고 피터 가브리엘, 스팅 같은 서구의 유명 팝음악인들과 같이 작업을 하면서부터였습니다. 그 덕분에 ‘프랑스 찍고 영국 돌아서 미국시장에서까지’ 유명세를 타게 된 그는 이제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음악인'으로 대접받게 된 거죠.

자, 이 시점에서 우리가 한 번 가져볼 만한 의문은, 아프리카나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같은 이른바 비서구 국가들의 수많은 음악인들, 예술인들이 어떤 과정으로 ‘세계화’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은 결국은 서구의 음악자본, 특히 미국과 영국의 대중음악계가 ‘재발견’하고 ‘인정’해주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있다는 겁니다. 아, 그렇다고 해서 유수 은두르가 전혀 실력도 없고 음악도 형편없는데 운좋게 서구 음악인들의 눈에 띄어 유명세를 타게 됐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제가 음악 전문가는 아닙니다만, 음악인으로서의 유수 은두르의 실력을 폄하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똑같이 아프리카에서 음악을 해도 누구는 서구 음악인들과 자본의 눈에 띄면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음악인’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하는 현재의 구조를 이야기하는 거죠.

음악을 듣는 수용자 입장인 저희들, 대중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미국과 영국에서 안 알아주면 콧방귀도 안 뀌다가도 ‘미국에서 그래미상 받았다더라.’ ‘유럽에서는 아프리카의 목소리라고 부른다더라’ 하면 ‘우와, 대단하네. 들어봐야지’ 하는 식인 겁니다.

이건 비단 음악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학문, 심지어는 사회운동에도 해당되는 심각한 ‘서구 의존증’인 것입니다. 그럼 여기서 이야기는 잠시 중단하고, 음악 한 곡 더 듣고 가지요. 아프리카 음악인이면서도 아프리카 인들의 취향과는 관계없이 서구 대중음악계와 대중들의 취향에 따라 ‘아프리카 출신 음악인의 대표적인 음악’이 되어버린 곡입니다. 유수 은두르와 네네 체리가 같이 부른 ‘7 Seconds'를 두 번 째 곡으로 들려 드리겠습니다.

2번 째 곡 : http://blog.naver.com/patima78?Redirect=Log&logNo=80005881946

여러분들은 어떠세요? 이 곡이 과연 아프리카의 대표적 음악인이 부른 노래로 들리십니까? 제게는 그냥 흔히 들을 수 있는 깔끔한 팝 음악으로만 들릴 뿐이네요.
마지막으로, 아프리카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습니다만, 한 번쯤 다같이 생각해볼 점이라는 생각에서, 한국의 음악원 교수인 주성혜 교수란 분의 글의 일부를 읽어드리면서 오늘 두 번째 시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전통음악의 현대화’는 어느 새 ‘우리문화의 세계화’라는 구호로 바뀌었고 ‘월드뮤직’이 ‘크로스오버’를 대신하여 새로운 유행어가 되고 있다. ‘혼종’은 이러한 세계화 시대에서 이질적인 문화적 주체들이 만나는 화해의 아이디어로서 환영받는다. 타인과의 대화전략으로서, 그리고 지리적 경계가 무의미해진 정보시대의 문화적 취향으로서 음악적 혼종은 오늘날 우리 주변의 곳곳에서 흔히 발견되는 현상이다...

그럼에도 우리들의 세계화 작업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어느 창작뮤지컬은 국내에서의 비난에 아랑곳하지 않고 ‘본고장’에서 격찬을 받았다는 문구로 당당하게 ‘작품성’을 주장하고 미국의 음반산업이 주도하는 ‘월드뮤직’은 문화식민주의적 혐의로부터 자유로운 채 탈서구의 해방구인 양 환대를 받는다.

‘우리문화의 세계화’ 구호 안에서 재력 있는 서구시장의 주인들은 여전히 예술적 생산물의 심판자로 존재하고 서구의 취향은 아직도 우리의 모범이곤 한다. 꽹과리와 장구가 동원되고 한국인의 혈통을 가진 작곡가와 공연자들이 참여하더라도 서구인이 인정함으로써만이 비로소 이루어지는 ‘세계화’에는 진정한 문화주체로서의 우리사회가 설자리가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간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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