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휴가를 나오자마자 가 본 곳은 남대문.
그 처참한 현장을 직접 보고 싶었다.
TV에서 본 지 단 하루 지났을 뿐인데 그 주변으로 크게 장벽을 둘러치는 공사가 이미 반 정도는 진행되고 있었다.
가리려는 건지, 아니면 뒤이어질 복원 공사에 방해되지 않게 하기 위함인지는 모르겠지만.
임시 장벽 위로 빼꼼히 보이는 누각의 잔해.
광장을 빼곡이 메운 사람들. 누군가가 크게 틀어 놓은 상여곡 소리.
벽으로 가려진 앞에 차려진 제사상, 국화 화환, 향냄새, 꽃을 놓고 절하는 사람들.
상복을 입고 대금을 부는 사람.
취재하느라 바쁜 언론인들.
남대문의 시체 앞에서까지 '이명박 정부 퇴진하라'며 시위하고 있는 끈질긴 인간.. 보다는 찰거머리들.
혀를 차는 어르신과 그 옆에서 남대문의 시체를 배경으로 다정히 셀카 찍는 연인들.
어디선가 들려오는 욕설.
무명 한복을 입은 채 무표정한 얼굴로 되도록 눈에 잘 띄게 노력하며 퍼포먼스 하듯 문화재지킴이 어쩌고 하는 행사 홍보물을, 혼자서, 마치 '진작에 내 말 듣지 그랬어' 하는 듯 과장된 컨셉으로 설치하는 사람.
바람, 칼바람. 영하 15도의 추위.
이 아수라장 한가운데 군복을 입은 채 못 박힌 듯 몇 시간은 서 있었나 보다. 한파에 눈 앞이 깜깜해질 때쯤 대형 크레인이 들어올리는 누각의 단청 목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아름다웠다.
불에 타 무너진 잔해마저도 아름다웠다. 남대문.
누군가는 방화범을 가열차게 욕한다. 방화범 혼자 모든 잘못을 다 했다는 듯 욕설은 점점 심해진다.
누군가는 문화재를 개방했다는 이유로 정부를 욕한다. 우리 문화재에 우리가 가 닿을 수 있게 해 놓은 걸 두고 욕한다.
누군가는 진화 방법을 조목조목 설명해 가며 소방당국을 탓한다. 온 세상이 화재 전문가 행세다. 정작 일선에서 뼈가 굵은 전문가 집단인 소방당국만 빼고. 그 전문가님들이 화재 진압을 도와준 적은 없는 걸로 안다.
누군가는 경비업체를 욕한다. 이럴 줄을 '미리 알았어야' 한댄다.
누군가는 심지어 목격자들을 욕하기까지 한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은 이것이 모두 남의 죄라 단정해 놓고 뻔뻔한 얼굴로 마음 편히 나름의 퍼포먼스를 보이며 안타까움을 과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선 초기에 건설된, 소실되자마자 갑자기 국민의 언어 속 '남대문'에서 '숭례문'으로 바뀌어 불리고 있는 그 문. '건물'이 아니다. 그건 상징이자 국가의 자긍이었다. '국가'라는 단어에 경기 일으키는 '훌륭하고 똑똑하신' 젊은이들은 뭐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국가의 실재를 부정하는 이들이라 할지라도 남대문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부모 같음'을 느끼곤 하지 않았을까? 워낙 상징적인 존재 아닌가. 민족의 어버이.
길고 긴 세월 동안 많은 일을 겪어 왔다. 수 차례의 큰 전쟁을 겪은 존재였다. 숱한 외적을 겪어 오면서도 지금껏 당당히 건재해 왔다.
이미 일어난 사태를 두고 남의 탓을 하기란 참으로 쉬운 일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숱한 외침(外侵)에도 끄덕없던 남대문이 정작 자신이 지켜 온 한국인의 손에 무너졌다는 사실이다. 남대문을 살해한 것은 한국인이다. 부모를 화형에 처한, 우리 한국인이다. 그 안에 나도 있고, 당신도 있다.
자식의 손에 불태워진 남대문은 그 마지막 모습마저 숨막히게 아름다웠다. 마치 '나는 괜찮다'며 되려 우리들을 위로하고 있는 듯.
눈물마저 얼어붙을까 두려워 눈꺼풀 안에 간직한 채 나는 그 자리를 떠나야 했다. 눈물토록 아름다운 남대문의 시체는 여전히 그 자리에 누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