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토성에서 태어난 사람의 이야기부터 해보자.
"거기는... 굉장히 추워. 생각만 해도 머리가 돌아버릴것 같지"
라고 신음하듯이 말했다...
"게다가 인력引力이 굉장히 강해"
라고 말하며 그는 토성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했다.
"껌을 뱉었다가 그 껌 쪼가리가 발에 떨어져서 발등이 부서진
녀석까지 있지. 지, 지옥이라구."...
"태, 태양은 아주 작아. 홈 베이스 위에 올려놓은 귤을
외야에서 보는 것만큼이나 작다구. 그래서 항상 어두운 거야."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왜 모두들 떠나지 않지? 좀 더 살기 좋은 별도 많이 있을텐데?"
나는 그렇게 물어보았다.
"나도 모르지. 아마 자기가 태어난 별이기 떄문일거야.
그, 그런거라구. 나도 대학을 졸업하면 토성으로 돌아갈거야..."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다 자신의 시스템에 맞춰 살아간다.
그것이 내 것과 지나치게 다르면 화가 치밀고,
지나치게 비슷하면 슬퍼진다. 그뿐이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양의 일을 정확히, 그것도 가능한
양심적으로 하는게 내 방식이었다. 아우슈비츠에서 일했더라면
틀림없이 인정받았을 것이다. 문제는 나에게 맞는 장소가
모두 시대에 뒤떨어져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구태여
아우슈비츠나 2인승 뇌격기로 거슬러 올라갈 것까지도 없다.
이미 아무도 미니스커트 같은 건 입지 않고,
잰 앤드 딘의 노래 따위는 듣지 않는다.
"여기서는 안 되는 이유가 뭐냐고 왜 묻지 않죠?"
"나도 그 심정을 알 것 같으니까"
"제이, 그러면 안 돼요. 그런 식으로 모두가 묻지도 말하지도
않으면서 서로를 이해해봤자 아무런 해결도 없어요.
이런 말은 하고 싶지 않지만...., 나는 너무 오랫동안
그런 세계에 머물렀던 것 같아요."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건
아주 예전에 죽어버린 시간의 단편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도 얼마 안 되는 그 따스한 추억은
낡은 빛처럼 내 마음속을 지금도 여전히 방황하고 있었다. 그리고 죽음이 나를 사로잡아 다시금 무의 도가니에 던져 넣을 떄까지의
짧은 한때를 나는 그 빛과 함께 걸어갈 것이다.
3도 인쇄, 하이든 G단조 피아노 소나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송어 옆에 아스파라거스 통조림과 커다란 물냉이, 레몬 수플레
------------------------------------------------------
"길가에서 강도를 만났을 때
돈이 아까워 목숨을 내놓는 바보는 없다.
살기 위해 강도에게 돈을 빼앗긴 우리는 주머니가 텅 비었기에 늘
공허하다. 그래서 무언가에 몰두하고 누군가를 사랑한다.
그렇지만 사랑도 일도 텅 빈 주머니를 완벽히 채우지 못한다.
살기 위해 돈을 빼앗긴 텅 빈 주머니,
이것이 불안과 허무의 근원이다.
그런데 그 주머니는 괴물이어서 우리가 성급하게 채우려 들면
오히려 심술을 부린다. 삶의 지혜는
이 요술주머니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있다."
(by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라캉)
삶의 한복판에 뻥 뚫린 우물, 결코 채울 수 없는 우물 때문에 우리는
환상을 만들지 못하면 살 수 없다...
환상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면 우물의 깊은 나락에서
다시 지상으로 올라올 수 없다...
깊은 우물을 어루만지던 나른한 슬픔, 그 한없는 허무 가운데
가느다란 불빛이 있다...
혁명을 외쳤지만 실패할 수밖에 없던 학생운동과
한 여자를 사랑했지만 죽음으로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기억들은 그의 과거지만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는 현실이다.
둘다 환상이지만 현실이요, 기억이지만 여전히 그의 삶을 지배한다.
그러기에 학생운동의 부조리한 현장을 빠져나와
나오코와 나눈 사랑을 그는 아주 먼 곳에서 일어났던 이야기처럼
듣고 싶어한다. 죽은 나오코는 그가 피와 살이 있는 어느 누구와도,
열정을 부을 수 있는 다른 무엇과도,
교류하지 못하도록 그를 가로막고 있다.
어둡고 차가운 창고 속에서 누가 전원을 찾았고 스위치를 올려
밝은 생명을 불어넣었던가. 바로 '나'였다.
삶이란 그리 무거운 것이 아니었다.
혁명도 사랑도 가벼운 것이었고
그것이 우리를 살게 만드는 힘의 원천이었다.
우물이 여기저기에 함정을 드리운 현실에서 텅 빈 주머니를
채울 주체는 '나'이지만 그것은 무거운 혁명이 아니라
일상의 부드러움과 이해라는 가벼움이었다.
무거움은 우리를 사로잡아 고착시킨다.
그러나 가벼움은 불완전함의 영원한 반복이고,
그것이 삶이요 사랑이다. 그가 본 환상
의 실체는 칙칙한 해골이었다. 불완전함의 반복은 환상의
실체를 볼 줄 알면서 동시에 그 환상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핀볼을 찾는 입구는 동시에 그것에서 벗어나
다시 시작하는 출구였다.
삶이란 불완전함의 반복이다.
삶의 운전대를 잡고 완벽한 음악을 들으면
그는 자살하고 싶어질 것이다. 완벽함은
텅 빈 주머니를 단 한번에 채워버리는 죽음이기 때문이다.
삶은 우물의 함정이 파인 땅 위를 걷는 불완전함의 반복이다.
(권택영 _ 경희대 교수,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