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詩))에 중독되었다.
“그건 소리없이 있던 나를 건드리더군” -로르카 시(詩) 중에서-
그러니까 딱 10년 전. 재수시절 종로학원에서 전국 모의고사를 풀 때였다.
언어영역 시간, 다들 쫒기며 시간 안배를 하며 정신없이 지문을 읽고 문제를 푸는 시간.
문학지문에서 그 시를 만났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 시인 이름도 낭만적인 데 시 제목은 왜 이리 아름다운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로 시작해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로 끝나는 시.
그러니까 공포스러운 죽음을 자기가 원래 왔던 하늘나라로 돌아가는 희망으로 만드는 시.
이승에서의 삶은 하루 낮에 끝나는 소풍 같게 만드는 시.
갑자기 재수생의 우울함과 진로에 대한 고민과 인생의 구김살이 사라지면서 여유가 생기더니
나의 눈은 언어영역 시험지가 아닌 창 밖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때도 공교롭게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이었다.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하얗고 내 마음은 노란 나비가 되어 이미 모의고사 시험장을 떠나 창밖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시는 나를 수험의 구속에서 해방시키더니 이번에는 자신에게 중독 시켰다. 중독은 구속과는 달라 나는 중독되며 황홀해 했다.
기왕 순수한 영혼의 천상병을 만났으므로 순수의 극한까지 가 결벽증에 몸부림친 윤동주의 시를 구해 읽었다.
“서시”를 읽으며 나 역시 잎새에 이는 바람 소리에도 괴로워하고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위해 기도했다.
그렇게 내 영혼은 시에 중독되어 시인이 되고 있었는데 부모가 보기엔 하나뿐인 아들이 재수생활로 미쳐가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대학지원 때가 되어 법조계 집안에서- 그래봐야 몇 명 없지만-부모님은 법대진학을 바라셨지만
나는 윤동주의 후배가 되어 시 쓰며 여행 다니며 소풍 같은 인생 즐기며 가겠다는 부처가 해탈했을 때, 공자가 70이 되었을 때,
도연명이 귀거래사(歸去來辭)할 때의 주장을 했다.
당시만 해도 순수와 열정이 공존하던 시기였기에 시에 중독된 나의 영혼은 거의 뽕을 맞은 경지였다.
의도대로 문과대에 입학하고 국문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중독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나의 시적 감수성은 점점 무뎌졌다.
시보다는 현실의 자극이 더욱 강했던 것이다. 결국 순수는 채색되고 열정은 식어갔다.
그리고 현실에 타협하다 시를 쓸 수 없게 되더니 요즘은 읽기도 힘들어졌다.
10년이 지난 지금 내 앞에는 시집 대신 주식과 재테크, 처세에 관한 책들이 놓여있다.
하지만 이것들을 보고 중독이라 할 수 있을까. 쓴 웃음만 나온다. 그래서 나는 괄호 안에 시를 넣고 10년 전 얘기를 쓴 것이다.
적어도 시를 사랑했던 사람으로서 글은 진실해야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게 내게 얼마 남지 않은 양심일 수도 있다.
‘항산(恒産)이 없어도 항심(恒心)이 있어야 군자’라는데 그 말은 사실 틀린 말이다.
누군가에게 기생하거나 누군가를 착취하며 사는 사람한테나 가능한 얘기.
그래도 내게는 돈 걱정 안 할 순수는 없지만 다시 간절히 중독을 바라는 열정은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