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장에 꽂힌 책 한 권을 후루룩 넘기다 쪽지를 하나 발견했다.
지금은 강의시간이라는 이야기.
너무 지루하다는 이야기.
빨리 점심시간이 되어서 나를 만나고 싶다는 이야기.
사랑한다는 이야기.
동글동글한 글씨체 그녀의 글씨.
옛 사랑이 주었던 쪽지를 발견했다.
이렇게 말하면 세상 어디서나 일어나는 그저 그런 흔한 일 같지만
발견한 당사자에겐 그럴 수가 없는 법이다.
살면서 보았던 어떤 멜로영화보다 가슴이 절절해지는 법.
그녀는 자주 이런 쪽지를 건넸다.
그래서 점심시간이 가까워오면 나는 가슴이 두근두근 했었다.
이따가 만나면 오늘도 강의시간에 쓴 걸 건네주겠지?
그럼 난 수업이나 제대로 들으라고 놀려야겠다.
그럼 삐진 척 하겠지? '다신 쪽지 안 줄 거야' 눈을 흘기겠지?
기대하지 않았다가 받는 선물은 기뻤지만 그렇게 기다리다 받는 건
기다리는 두근거림까지 더해져서 그야말로 행복했었다.
기뻤다.
행복했다.
말을 하지만 그렇게만은 아니었다.
그녀와 함께 있을 땐 늘 말이라는 게 참 시시했다.
말로 뭘 표현 한다는 건 너무 노골적이어서 재미가 없었고 때론 너무 저차원적이란 생각까지 들곤 했다.
물론 내가 대단한 시인이면 한 줄로 멋지게 표현할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그 때 내가 생각할 수 있는 표현이란 건 그녀는 냄새가 참 좋다거나,
헤어진 후 밤에 그 쪽지에 그려진 하트만 보아도 그녀의 냄새가 코끝에 맴도는 것 같다거나,
그녀가 웃을 땐 등줄기에도 세포가 있다는 걸 느끼게 됐다거나,
그녀가 눈을 가늘게 뜰 때는 내 목구멍을 간질간질 했다는 겨우 그런 식의 표현들.
행복했다.
기뻤다.
그렇게 말하지만 그렇게 만은 아니었다.
쪽지를 발견한 것은 반가웠고 애틋했다.. 애틋했다.
그렇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다.
아프기도 했고, 울렁거리기도 했고, 우습기도, 가물거리기도.
그 때가 언제였던가.
기억을 더듬다가 막 해가 바뀐 것을 생각해냈어.
어제까진 세살이었을 우리 이별이 이제는 네 살.
우리 같이 찍었던 사진들도 아직 살아있다면 이제는 네 살 .
다 묻고, 다 없앤 그 모든 것들 중에
용케도 살아남은 작은 종이조각 하나가 어느새 내 책장 안에서 네 살이 되었더라고,
[사랑을 말하다]<EMBED style="LEFT: 104px; WIDTH: 2px; TOP: 1170px; HEIGHT: 1px" src=http://mfiles.naver.net/66b5518b9cc2aa1c334e/data17/2007/4/10/115/talk-6670-zoazoa3221.wma width=2 height=1 type=octet-stream autostart="true" invokeURLs="false" allowScriptAccess="never" allowNetworking="internal" EnableContextMenu="fal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