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이 있는 집, 제품 디자이너 이미호의 열대야 하우스와 인테리어 조언.
그림 하나로 도시에 사는 목마름이 해소될 줄은 몰랐다. 일반 아파트보다 폐쇄적인 구조여서 주상복합을 좋아하지 않는 에디터는 디자이너 이미호 씨의 집에 한나절 머무르면서 신기한 산림욕 효과(?)를 얻었는데, 집의 유난히 산뜻한 컬러들이 생기를 주기도 했고, 그녀를 두 번째 만나는 것이고, 워낙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스타일이라서 취재 긴장감이 덜하기도 했고, 집 인테리어가 번쩍번쩍 화려하거나 몸 둘 바를 모를 만큼 똑떨어지는 모던 스타일은 아니어서 편하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주된 이유는 창 없이 벽으로 막힌 그녀의 주방에 도배된 ‘앞마당 벽지’ 때문인 것 같다.
생활인, 여자, 제품 디자이너
한 달 전 락앤락 ‘스마트세이버 핸디’라는 새까맣고 늘씬한 제품이 출시되었다. 운 좋게도 에디터는 그 상품의 디자이너를 만나 따끈따끈한 뒷담화를 듣게 되었다. ‘핸디형 진공 밀폐기에는 본래 두 개의 부품이 엇갈려 들어가기 때문에 지금처럼 일자형 디자인이 나올 수가 없어 부품을 일자로 쌓아 올리는 기계적인 문제부터 해결했다. 이 제품을 사용할 사람은 여자인데 여자들은 손이 작으니 한 손에 쏙 잡히도록 부품이 들어가는 부분 위는 잘록하게 만들었으며, 제품 설명서 읽기를 꺼려하니 설명서가 없어도 직관적으로 사용법을 알 수 있도록 잡은 상태에서 엄지로 꾹 누르기만 하면 작동하도록 설계했다. 그리고 자신처럼 바쁜 맞벌이는 쓸 때 꺼내고 다시 넣고 하는 것이 번거로운데, 쓰다가 그대로 놓고 나가도 거슬리지 않는 장식품 같으면 좋겠다는 데 생각이 이르러 인어 라인의 드레스를 입은 듯한 까만 색 핸디형 진공 밀폐기 디자인이 완성되었다’는 것이 제품 탄생의 전말이다. 브라보! 덕분에 우리는 인어 라인 드레스를 입은 여인의 허리를 감싼 채 비닐봉지의 공기를 쭉 빼서 신선하게 음식을 보관하고, 인어 아가씨를 식탁 위에 ‘나 몰라라’ 둔 채 외출을 했다 돌아와서도 주방이 어질러져 있다고 한숨 쉴 일이 없게 되었다.
제품 디자인 회사 ‘디자인K2L’의 이사인 그녀는 스스로 소비를 좋아하고, 새로운 물건에 흥미가 많으며, 인테리어에도 관심이 많다고 말한다. 그래서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이 아닌 생활의 편의를 담은 디자인을 내놓는구나 싶었더니, 제품 디자인 분야는 기계적인 부분까지 고려를 해야 하기 때문에 여자가 드물다고 한다. 진공 밀폐기 외에도 공기청정기, 칫솔, 밀폐 용기 등 사용감을 고려한 디자인 생활 용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살림하는, 여자, 제품 디자이너였기 때문이었던 것.
1 재활용 수납함은 코지올의 플라스틱 가방이다. 가방이니 들고 나가기 편하고 물로 씻을 수 있는 플라스틱 소재라서 맘에 들었다고 한다.
2 직접 디자인한 락앤락 ‘스마트세이버 핸디’와 그녀가 좋아하는 알레시의 안나 시리즈 생활 용품들이 오브제처럼 놓여 있다. 스타벅스의 크리스마스 컵은 몇 년째 재미 삼아 모으고 있는 중.
내 집을 위한 자유로운 상상
‘헬리콥터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푸른 하늘이 있는 거실과 파란 꽃 초록 꽃 만발한 안방, 사랑스러운 소프트 핑크 컬러의 드레스 룸, 비행기 속에서 공부하는 느낌이 들 것 같은 구름 벽지 서재 등 38평 주상복합의 각 공간은 마치 동화책을 넘기는 느낌을 준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나 스타일리스트가 고친 집과는 다르리라는 에디터의 기대가 맞아떨어졌다.
집을 고칠 생각을 하면 흔히 잡지나 카페, 영화 속의 어떤 집 등에서 시안을 얻는데 그녀는 입주할 집을 둘러보면서 머릿속으로 상상만 했다. 그리고 그 느낌에 충실하게 모든 자재를 선택했다. ‘주방은 창이 없으니 막힌 벽에 창이나 마당, 문이 있는 벽지를 붙이자. 실사나 기계적으로 찍어낸 것 말고 붓 터치가 있는 자연스러운 느낌이 더 편안할 것 같다. 서재는 방이 작고 책장까지 넣으면 갑갑할 테니 자유로운 느낌을 주자.’ 결국 그 자유로운 상상에 맞춰 물건을 찾느라 바쁜 디자이너는 매주 주말 논현동을 헤매며 20일 계획이었던 공사가 한 달 반이 되어서야 끝냈다고 한다.
사실, 집을 인테리어하려고 몇 명의 개조 전문가를 만나봤지만 기둥을 허물거나 주방의 위치를 방 쪽으로 빼는 등 굳이 필요 없는 구조 변경을 제안하곤 했다. 그래서 남편과 둘이 사니까 아일랜드 식탁의 길이를 줄이고, 현관에 신발 신으면서 열쇠를 올려놓으려고 턱을 만들고, 아늑해 보이도록 중문을 다는 정도의 공사를 하고 집의 인상을 결정하는 외장재에 열중해 진짜 ‘내 집’을 만들어냈다.
3 거실에서 바라본 현관. 카르텔의 스툴과 선이 아름다운 콘솔이 놓여 있다. 맨 앞의 투명한 화병은 이마트에서 1만원 주고 구입한 것이라고. 눈이 보배다.
4 현관에 들어서면 “지지배배” 새가 노래한다. 둘이 사는 집이라 어두운 집에 혼자 들어올 때가 많아 빛에 반응하는 새 장식품을 구입했다. 스툴은 겨울 부츠 신을 때 편하라고 둔 것. 중문의 단조 라인도 그녀가 직접 그려 주문 제작.
생활 용품을 고르는 기준
그녀의 집은 호텔처럼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지만 심심하지는 않다. 디자인적인 생활 용품들 때문이다. 자신이 디자인한 진공 밀폐기부터 두 팔을 번쩍 드는 알레시의 와인 오프너, 리듬감 있는 곡선 라인의 빨간 의자 ‘비너스 체어’, 재활용품 수납용기조차 디자인을 넣은 플라스틱 비비드 컬러의 가방이다.
그런데 그녀가 물건을 고를 때 디자인만큼 보는 것이 기능이라고 한다. 거실에 놓인 소파는 내장재가 육면체 모양으로 낱낱이 떨어진다. 즉, 사람이 늘 앉는 부분과 엉덩이가 잘 닿지 않는 곳의 쿠션을 주기적으로 바꿔주면 소파가 한쪽 부분만 푹 꺼질 일이 없다. 주방의 스틸 주전자는 원터치로 주둥이의 뚜껑을 여닫을 수 있고, 침실의 플로어 스탠드는 갓 부분만이 아니라 몸통 부분에도 조명이 들어오고, 발로 눌러 끌 수 있을 만큼 큰 스위치가 맘에 들어서 구입했다. 아일랜드 식탁 위의 조명도 갓을 분리해 물로 씻을 수 있다기에 선택한 것이다. ‘디자인+기능’이라는 일할 때의 기준은 본인의 생활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5 거실 천장에 하늘 벽지를 바르고 팬을 단 것은 남편이 원했던 바. 팬의 몸통 부분에 조명이 들어오는데 이 역시 그녀의 기능을 생각하는 쇼핑 기준이 적용된 것이다.
6 서재는 딱딱한 분위기가 되기 쉬워 유화 느낌의 구름 벽지를 발랐다. Mademoiselle Filou라는 익살스러운 이름의 파리 조명이 달려 있고, 책장 문에 자동차 손잡이가 조르르 달려 있어 마치 움직이는 것 같다. 남편의 ‘내 방은 재밌게’라는 주문에 충실했던 결과.
제품 디자이너의 인테리어 조언
강렬한 컬러로 생기 있는 모던 하우스를 완성한 집주인은 사람들은 원색을 쓰면 유치하고 격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데 컬러는 강하지만 수채화, 유화 느낌의 자연스러운 디테일을 고르면 편안하고, 쉽게 질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 가구 등으로 원색을 눌러주는 매치를 할 수도 있다고 한다. 사실, 인테리어에서 가장 신경 쓸 부분은 소품과 가구라 덧붙인다. 구조 변경과 바닥재, 벽지 등에 많은 예산을 쓰고 정작 소품이나 가구는 이미테이션을 구입하거나 디자인을 고려하지 않고 고르면 인테리어를 망친다는 것. 벽지는 가구가 들어오면 많은 부분이 가려지고, 나머지 외장재는 이사 갈 때 뜯어갈 수도 없지 않냐며 웃는다. 또 한 가지 그녀가 꼭 알려주고 싶다며 고속터미널에서 맞춘 커튼 이야기를 꺼낸다. 겉커튼 속지를 2겹 암막으로 넣으면 커튼 집에서는 싫어하지만 겉의 실크 원단이 바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방음 효과도 커진다며 사람들에게 꼭 알려주라고 거듭 강조한다. 마지막 조언까지, 정말 생활을 중심에 두는 ‘여자, 제품 디자이너’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7 그녀가 머릿속에서 상상했던 수채화 느낌이 나는 벽지는 양옆의 그린 톤과 어우러져 마치 꽃동산 같다.
8 그린, 플라워 프린트, 한국 고가구. 인테리어를 완성한 후 가구를 찾다가 친정어머니의 한국 고가구를 가져왔는데 의외로 방의 원색 컬러와 잘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