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중 남자 주인공인 성남(김영호)은 나쁜가 하면 그래 녀석은 나빠 하고 이야기하기가 좀 그렇다. 반대로 녀석은 괜찮은 녀석이야 하고 말할 수 있는가 하면 또 그렇지도 않다. 녀석은 그냥 그저 그런 녀석이다. 때론 비겁하고 무책임하고 지저분할 정도로 집요하지만 나름의 원칙도 가지고 있다.
뜬구름을 그리는 방랑자 같은 무명 화가, 자기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는 이런 녀석도 연애 만큼은 중상위급이다. 책임을 지지 않으니 자유로울 수 있다는 건가. 젊은 유학생에 몸이 달아 있다가도 아내에게 돌아가서는 편안함을 느낀다.
여자 주인공인 유정(박은혜) 역시 그닥 비범치 않지만 얼굴만은 예쁜 여자가 가졌음직한 성격과 행동을 보여준다. 이 친구를 보고 있자니 홍상수가 이제껏 여자를 이정도로 깬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인정 사정이 없다. 그녀의 정체가 폭로되는 장면은 약간 심했다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성남이 유정에게 지분대다 결국 목표를 이루는 과정은 흥미롭다. 성남처럼 해서는 실패하기도 어렵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 녀석이 유정에게 들이대며 작업하는 과정을 보고 있자니 거의 교본으로 써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예의를 가지고 접근하여 갖은 관심을 보인다.여의치 않더라도 주변을 서성이며 기회를 포착한다.상대가 쉽사리 응하지 않더라도 포기하지 않는다.영 먹히지 않는다 싶을 때에는 정반대로 까놓고 들이댄다.심한 거절을 당한다 할지라도 역시 포기하지 않는다.상대를 터무니 없을 지경까지 칭찬해준다. 물론 외모 뿐만 아니라 역량에 대해서까지.물질도 중요하다. 여유가 생기면 팍팍 선심을 쓴다.상대의 약점을 발견한다 하더라도 이를 철저히 숨긴다.마지막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이 정도면 여자랑 사귀었으면 사귀었지 유부남은 싫다는 여자를 꼬실 수 있을까. 그거야 사람 나름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성에 대한 시도는 자괴감과 귀찮음을 이겨내지 않고서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홍상수 영화에 나오는 녀석들을 보면 뭐랄까 똘끼마저 느껴질 정도로 끈기의 소유자들이다.
영화 마지막에 주인공이 희한한 꿈을 꾸는데 홍상수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이응경의 꿈을 떠올릴 것이다. 이 부분 아직 무슨 의미일까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그냥 생각이 날 때까지 내버려둘 작정이다. 인터뷰나 다른 리뷰를 통해 알아차리는 것은 재미 없으니까.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점점 심플해지는 것 같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관객을 좀 더 끌어안으려는 시도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이런 단순함이 마음에 든다. 이 영화 '해변의 여인' 만큼이나 재미있는 영화다. 3/1에 중앙시네마에 있는 스폰지하우스에서 무대인사를 한다고 하는데 미리 봐서 아쉽다.
영화 속은 영화 밖보다 괜찮은 세계이다. 정말 초라하거나 추잡한 상황일지라도 베토벤 교향곡 7번 2악장의 그 처연한 음악이 영화 밖에서도 흘러준다면, 그렇다면 약간은 위로가 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