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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

NSDAP군의 사진에 보이는 십자가와 성당에서 나오는 히틀러

독일 루터교단 NSDAP 지지 대회, 1933년, 친위대 전용 교회

(신부와 히틀러) (교황과 히틀러)
우리는 이제 거짓말을 인정해줄만큼 인정해주었다.
이제 우리는 진실을 파헤쳐야한다.
숨겨지고 왜곡되고 파묻힌 역사를 세계사와 국사에서
조사하고 찾아내어 역사의 위인들과 사람들을 재평가해야한다.
독일은 원래 영토인 알자스와 로렌지방을 프랑스에게
떼주어 지금까지 프랑스의 땅으로 되어있고,
그 당시 루르지대는 프랑스에게 그 천문학적인 1320억마르크를 제 때 갚지 못했
다는 이유로 루르 공업지대를
총칼을 사용하여 무력으로 빼앗았고, 시위대를 무력으로 해산시켰다.
또한 폴란드의 단치히도 원래 독일의 영토이지만, 지금까지 폴란드 땅으로 되어있으며,
단치히를 자유도시로 만들자는 히틀러의 의견을 묵인하였으며,
영국에게 평화협상을 시도한 히틀러는 묵인당했다.
또한 됭케르크, 즉 덩커크에서 약 30만명의 영국군인들을 철수시키도록 놔두었
다.
그리고 히틀러는 영국과는 싸울 마음이 없기 때문에 평화 협정을 원했지만
다 철수시킨 뒤, 처칠은 계속 싸우겠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히틀러와 영국의 폭격전이 있을 때, 히틀러는 폭격을 중지하면 중지하겠다
고 요청했지만
처칠은 이를 단호히 무시하고 거절했다.
연합군에 의해 비무장 상태로 학살당하고 죽은 숫자만 무려 500만 이상이 된다.

Sir Hartley Shawcross - 영국 법무장관 (前 뉘른베르크 재판 연합국 검사)
“한걸음, 한걸음씩, 나는 유럽에서 공산주의의 목표가 대단히 음험하고 치명적인 것이란 확신에 이르렀습니다.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나는 소련군의 검사들과 함께 나치의 침략행위와 만행을 처벌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나는 히틀러와 독일국민이 전쟁을 원치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던 것은 우리 영국이었습니다. 소위 ‘힘의 균형’이라는 우리의 외교원칙과, 특히 루즈벨트를 감싸고 있었던 "미국인들"의 영향력 하에서 독일을 파괴할 목적으로 말입니다. 우리는 전쟁에 개입하지 말라는 히틀러의 탄원도 무시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히틀러가 옳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에게 우정과 협력을 제시했던 히틀러를 무너뜨린 1945년 이후로 우리는 소련이라는 거대한 적과 맞서고 있습니다. 호전적인 공산세력의 침략행위가 계속되고 있는 지금, 나는 히틀러를 침략자로 규탄했던 내 자신에 대해 수치심과 모욕감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 Speech at Stourbridge; Associated Press, March 16, 1984

"나는 독일을 시궁창에서 구해내 다시 한번 유럽의 정상에 우뚝 세운 그의 정치적 명민함과 과단성에 경의를 표한다."
- 버나드 쇼

"나는 그의 이름을 크게 말하기에도 모자란 사람이며, 그의 생애와 행적은 어떤 감상적인 논의로 다룰 수 있는 차원의 것도 아니다. 그는 인류를 위해 싸운 투사였고 만국에 복음을 가져다준 예언자였다. 그는 가장 고귀한 순도의 정화력을 가진 인격체였고 그의 운명은 사상 초유의 야만이 세계를 휩쓸고 있었던 무렵에 솟아 올랐으며, 또 그 야만에 의해 스러져갔다. 우리 유럽인들에게 아돌프 히틀러는 그런 인물로 기억될 것이다. 그의 가장 가까운 추종자들인 우리는 지금 그의 죽음 앞에 머리를 조아린다." - 크누트 함순

"우리가 그를 사랑했던 이유는 그가 우리의 지도자이거나 영웅이어서가 아니었다. 그의 기상은 하늘에 닿았고 그의 말 한마디는 우리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의 성소를 움직였다. 그럼에도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당신이나 나와 같은 한 인간으로 남았다. 이것이 우리가 그를 사랑했던 진정한 이유였다."
- Baldur von Schirach

Leon Degrelle - 독일 친위대 장군
"국가사회주의자들이 反기독교적이며 기독교인을 박해했다는 얘기는 유태인들이 퍼뜨리는 거짓말에 불과하다. 비록 총통를 비롯한 많은 黨지도자들이 매주 일요일 예배에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그들 대부분은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기독교인으로 성장했다... SS대원의 대다수가 루터교 등의 신교도나 카톨릭이었으며 이들의 40퍼센트가 정기적으로 일요일 예배에 참석했다. 이런 목적을 위해 친위대원들만의 교회와 군목들까지 있었다."
- Persiste et signe: interviews, 1985
벨기에 태생으로 신앙심이 남달랐던 디그렐은 렉스당을 창설하여 벨기에의 청년 反共운동을 주도했다. 독일이 소련과 개전하자 35세의 나이로 동부전선에 자원한 그는 1944년 프랑스와 벨기에, 스페인 자원병들로 구성된 무장 친위대 28사단의 사단장이 되었다. 많은 무훈으로 기사십자장을 받은 디그렐은 전후 스페인에 망명하여 1994년 사망했다.
Lord Rothemere
“나는 영국의 모든 젊은이들에게 독일의 나치정권이 지금까지 이룩한 성과를 주의깊게 연구할 것을 권한다. 이에 있어 나치독일을 증오하는 자들의 거짓말과 흑색선전에 귀를 기울여서는 안될 것이다. 독일의 나치정권을 가장 격렬하게 공격하는 일부 언론은 실제로 러시아의 소비에트정권에 대해서는 침이 마르도록 찬사를 아끼지 않는 집단임을 알아야 한다.
그들이 떠들썩하게 시작한 “나치스의 만행” 선전캠페인을 통해 알려진 사례들이 허무맹랑한 날조극이라는 것은 독일을 방문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우리 나라의 배가 더 되는 독일과 같은 나라에서 유태인에 대한 그러한 폭력사건은 몇차례 일어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선동가들은 고립된 몇몇 사건을 일반적인 것으로 침소봉대하여 마치 나치정권이 피비린내나는 폭정을 자행하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퍼뜨리려 한다. 나치스가 집권하기 전까지 독일민족은 빠른 속도로 그들 국가내부에 존재하는 이질적인 요소에게 종속되어 가고 있었다. 바이마르 정권 말기 독일의 관료층에는 1차대전 전보다 20배나 많은 유태인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독일에 대한 애국심과 책임감보다는 국제적으로 다른 국가의 유태인들과 더욱 공고하게 연대되어 있었던 이들 유태인은 독일정부의 모든 요직에 파고들었다. 장관은 독일인이었는지 모르나 그들 뒤에서 정책을 결정하고 국민에게 뉴스를 전달했던 사람들은 모두 유태인이었다.”
- The Daily Mail, London, July 10, 1933

위 1번 사진, 2번 사진, 3번 사진
`1. 아우슈비츠 수용소 병원
2. 수감자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아우슈비츠)
3. 아우슈비츠 수용소 식물원
그리고...

아우슈비츠 수용소 동물원

아우슈비츠의 한 작업실

- 아우슈비츠 수용자인 유대인을 치료해주는 의사 -

아우슈비츠의 간호원들
"만약 독일의 국가정책이 유태인 안네 프랑크와 그녀의 아버지를 죽이는 것이었다면 그들은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비록 안네 프랑크와 그녀의 가족사가 비극임은 분명하나 그들의 이야기는 독일이 의도적으로 유태인을 말살하려 했다는 주장과 일치하지 않는다. 전쟁 전 유태인에 대한 독일정부의 주안정책은 국외이민이었고 전쟁발발 직후에는 게토에, 그리고 1943년 이후로는 강제수용소에 수용하는 것이었을 뿐 유태인의 인종적 말살을 노린 genocide가 아니었다."

(Henry Morgenthau, Jr)
헨리 모겐소 2세 유태인 미국 재무장관
“30년전쟁이 끝난 뒤 그러했듯이 독일을 다시 한번 허허벌판 황무지로 만들어 버려야 한다.”
(The Morgenthau Diary)
카임 바이츠만 초대 이스라엘 대통령
“우리는 이 전쟁이 우리의 전쟁이라는 것을 부인하지 않으며 이 전쟁이 유대민족의 해방을 위해 치러지고 있는 것임을 고백함에 있어 아무런 두려움도 없다... 모든 나라를 합친 것 보다 더 강력한 전선을 형성하고 있는 민족은 우리 유태인이다. 우리는 단지 이 전쟁에 우리의 경제력만을 지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단지 우리의 뛰어난 프로파간다 능력으로 이 전쟁을 치르는데 필요한 도덕적인 명분을 제공하는데 그치는 것도 아니다. 승리의 관건은 우리가 얼마나 적을 그들의 내부로부터 무력화 시킬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예를 들면 레지스탕스 운동 등을 통해서 말이다. 이런 면에 있어 우리야말로 적군의 요새안에 들어가있는 트로이의 목마라고 할 수 있다. 유럽에 있는 수십만의 우리 유태인 동포들은 우리의 적을 멸하는데 있어 1차적인 몫을 담당할 요소이다. 우리의 전선은 바로 그곳에 있으며 그들의 활약은 최종적 승리에 대한 가장 값진 기여가 될 것이다.” (Speech on December 3, 1942, in New York City)

Sir Oswald Mosely
“오직 영국인의 노동으로 창출되는 영국인의 富와 여신은 영국 중앙은행(Bank of England)을 통해 유태인들에 의해 독점되고 있으며 또한 국제고리대금업으로 착취한 돈으로 그들은 지금 우리 조국을 비롯한 서구문명을 파괴하고 있다. 영국국민, 영국의 산업가들, 영국의 노동자들, 그리고 대영제국 전체는 국제유태인의 득세와 권력을 위해 끊임없이 희생되어 왔으며, 우리 나라의 국제무역시스템, 양당정치제도, 그리고 외교정책이 오늘날과 같은 체제로 유지되는 까닭도 오직 유대인이 그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국제 유대자본은 대영제국을 지배하고 대영제국을 통해 세계를 지배한다.”
1939년 9월 독일은 베르사이유 조약에 의해 상실한 舊영토를 둘러싼 분쟁 끝에 폴란드를 침공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폴란드의 국경을 보호하고 나치독일로부터 유럽의 평화를 수호한다는 명분 하에 독일에 선전포고했다. 그러나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과 동시에 동부로부터 폴란드를 침공한 소련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고, 1939년 11월 소련이 다시 핀란드를 침공했을 때에도 양국은 무반응으로 일관했다. 독일에 대한 선전포고를 철회해달라는 히틀러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연합국은 독일의 서부국경에 병력을 집결시켰고 1940년 봄 독일군이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통해 英-佛 연합군에 선제공격을 가하여 영국군의 덩케르크 탈출을 끝으로 두 주만에 프랑스를 함락시켰다.

비버브룩 卿 영국 언론재벌
“지금 영국에는 히틀러의 집권 후 독일에서 건너온 유태인 2만명이 살고 있는데 이들은 모두 영국이 독일과 평화적인 합의에 이르는 일에 훼방을 놓고 있습니다. 유태인은 이 나라 언론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정치적 영향력은 지금 우리를 전쟁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 Beaverbrook papers, House of Lords record office
Emil Ludwig 유태인 역사가 (佛)
“히틀러는 그 어떤 전쟁도 일으키지 못할 것이다. 대신 그는 강요된 전쟁에 휘말리게 될 것이다. 올해는 아니더라도 오래 지나지 않아...”
- Les Annales, June, 1934
Joseph Trimble 유태인 변호사 (美)
“영국, 소련, 프랑스의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요직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바로 이스라엘의 아들들이다. 이스라엘의 세 아들은 곧 나치 독재자를 지옥으로 보낼 것이다.”
- American Hebrew, June 3, 1938
리츠-스미글리 폴란드 육군원수
“폴란드는 독일과의 전쟁을 원하며 독일이 원치않더라도 독일은 이 전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 The Daily Mail, August 6, 1939
CENTRAL BLAD VOOR ISRAELITEN 네덜란드 유대계 일간지
“물론 팔레스타인을 포함하여, 아메리카 대륙과 유럽, 영국, 프랑스, 러시아, 북아프리카, 남아프리카에 살고 있는 우리 유태인은 최후의 그날까지 對 독일 절멸 전쟁을 전개해나갈 것이다.”
- September 13, 1939
Schalom Asch 유태인 작가 (佛)
“비록 유태인들이 참호에서 육체적으로 여러분과 함께 싸우고 있지는 않지만 정신적으로 우리는 여러분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 전쟁은 우리의 전쟁이며 여러분은 우리와 함께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 Les Nouvelles Litterairres, February 10, 1940

디어도어 카우프만 유태인 작가 (美)
“그들이 반나치주의자건, 공산주의자건, 유태인에 대한 애정을 가진 자이건 간에 모든 독일인은 살려둘 가치가 없는 인간들이다. 그러므로 전쟁이 끝나면 2만명의 의사를 동원하여 하루에 25명씩 독일인들의 생식능력을 제거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3개월 이내로 독일에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남지 않게 될 것이며 독일민족은 60년 안으로 완전히 멸종될 것이다.” (Germany Must Perish, 1942)
Rabbi Felix Mendlesohn 유대교 지도자 (美)
“2차세계대전은 유대교의 근본을 수호하기 위한 전쟁이다.”
- Chicago Sentinel, October 8, 1942
Rabbi Manfred Reifer 유대교 지도자 (獨)
“혁명은 우리의 소행이었다. 우리는 영원한 신의 선민을 자처하며 항상 민중의 선봉에 서서 그들을 이끌어 왔다. 우리는 전 세계의 프롤레타리아들에게 그들의 성경책인 ‘자본론’을 선사했으며 민중의 열정을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독일에서 태어난 유태인 칼 맑스는 전 세계 자본주의*에 대한 전쟁을 선포했고 또 다른 유태인 라쌀은
독일의 민중을 조직했다.
유태인 에두아르 번스타인은 공산주의 이념을 대중에게 유행시켰고 칼 리쁘끄네히트와 로자 룩셈부르크는 스팔타쿠스단의 폭력혁명을 주동했다. 유태인 쿠르트 아이스너는 바이에른에서 독일 최초의 소비에트 공화국을 선포했고 그 정부의 처음이자 마지막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독일민족은 이 모든 것에 대항하여 떨쳐 일어났다. 독일인들은 단지 그들 민족과 후세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이는 비난의 대상이 될 이유가 없다.”
- Czernowitz Allgemeine, September 2, 1933)
Pierre Creange 유태인 언론인 (佛)
“독일은 必殺의 증오로 싸워야할 유대교의 적이다. 오늘날 유대교의 목표는 全독일국민에 대한 무자비한 군사행동이며 독일국가의 절멸이다. 우리는 독일과의 무역중단, 독일의 해역봉쇄, 그리고 남녀노소를 막론한 모든 독일인들에 대한 보복을 전세계에 요구한다... 독일과의 싸움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릴 필요도 없다. 이스라엘이 공격받았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을 수호하자! 깨어난 독일 앞에 우리는 깨어난 이스라엘을 제시한다. 그리고 세계는 우리를 지켜줄 것이다.”
- Epitres aux Juifs, 1938

Guenther von Blumentritt 독일 육군소장
영국군과 프랑스 잔여 병력을 생포할 수 있었으나 이들 병력의 영국 탈출을 허락했던 히틀러의 덩케르크 정지명령에 대해 영국의 저명한 역사가 Liddell Hart는 독일군 장성 블루멘트리트의 다음과 같은 증언을 인용했다: “영국군의 궤멸이 눈앞에 있는 시점에서 총통은 대영제국의 위대함을 칭송하는 말로 우리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는 대영제국의 존재는 세계질서를 위해 필수적이며 영국이 이 세계에 가져온 문명에 대해 얘기했다. 그는 어깨를 움츠리며 대영제국은 대게 잔혹한 군사적 정복의 결과로 만들어졌으나 인류의 역사 속에서 그러한 일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영제국을 카톨릭 교회와 비교하며 세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양자의 존재는 꼭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가 영국에게서 바라는 것은 오직 영국이 대륙에서의 독일의 입장을 인정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이 독일의 舊식민지들을 반환해주면 좋은 일이나 그렇지 않다해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으며, 만약 영국이 지구 어디서 곤경에 처해있다면 독일이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도울 것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 Basil Liddell Hart, The Other Side of the Hill, 1948
DAILY EXPRESS 영국 일간지
"유대는 독일에 전쟁을 선포한다 - 전 세계의 유태인이 단결하다"


조셉 괴벨스
"우리를 절멸하려는 연합국들 배후에 국제유대인이 있다는 진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 전쟁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유대인은 흑암의 권세로 그들에게 항거하는 국가들을 파괴하고 전 세계를 기만하여 인류를 어둠 속에 감금하려 한다. 말하자면 유대인은 계층과 이데올로기의 차이, 그리고 각국의 국익과는 상관없이 모든 연합국들을 한데 묶어두고 있는 접착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동일한 유대적 뿌리를 지니고 있으며 한 나무의 다른 두 가지처럼 결국에는 똑같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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